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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15. 2024

2월 15일

사순절 2일


"예수는 결코 제도적인 교회의 지식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로지 삶의 변화가 주된 문제였다. 예수의 관심은 교회나 위계질서가 아니라 생태계와 치유였다. 예수가 보기에 하나님을 광신하는 위계실서는 하나님을 망각한 권력자와 마찬가지로 흉물스럽다. 나아가 나사렛 출신의 이 젊은이가 제거된 것도 하나님을 광신하는 성직자들과 하나님을 망각한 정치가들의 성스럽지 못한 동맹의 결과였다. 예수는 자신의 친구들이 이 세상에서 마치 음식에 필요한 소금처럼, 반죽에 필요한 누룩처럼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때 이 세상은  "삶의 충만함"(요한복음 10:10)과 사랑의 맛을 찾게 될 것이다."

" 참 예수는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제도화된 종교를 꿈꾸지 않았다. 그가 꿈꾼 것은 정신적 생태적 삶의 방식이며, ....  자연과 우주, 인간과 동물과 식물, 그리고 예수가 아버지라 불렀던 분과 나아가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 자기의 본래 자아와 좋은 관계를 매는 것!" (중략) 이 아버지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나타내주는 구절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신다"(마태복음5:45)  <생태주의자 예수> 17.

"환경의 위기는 내면 세계의 위기다. 우리의 외적인 위기는 오직 내부로부터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예수 학교와 붓다의 학교에서 배운다. 생태적 예수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우주적 지성, 창조적 지성은 모든 짐승과 식물들을 필요로 하고 그것들을 원하고 사랑하는 것과 꼭 같이 바로 당신을 원했노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앎이야말로 모든 정신적 성장의 기반이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의 토대를 파괴하는 외적인 성장에 더이상 서로잡히지 않는다.

오늘날 무한한 외적 성장은 모든 나라의 경제의 근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에 무한히 성장하고 번성하는 것이라곤 암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 결과가 나타났다. 암으로 죽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암적인 경제는 우리네 살림살이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무한 성장은 내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중략)  생태적 예수는 외적 성장에서 내적 성장으로 가는 길을 우리이게 보여준다. "  18, 19.




책을 읽으며 골수이식 치료가 생각난다.  강력한 항암치료로 제 몸 안의 골수를 완전히 제거하고 다른 사람의 골수를 받는다. 그 결과 골수 이식을 받은 사람은 혈액형까지 바뀌어 골수 제공자의 혈액형과 같아진다. 강력한 항암치료를 견디기 어려워 치료 과정에서 죽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쉽지 않는 치료다.  치료 후 한달간 무균실에서 지내고 퇴원 후에도 각별한 주의를 하며 1년 내지 3년 간은 감염을 피하기 위해 무균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몸을 지켜내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삶, 예수에 대한 교회의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을 따르는 삶으로 돌아서는 삶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꼭 골수이식을 받는 삶처럼 느껴진다. 강력한 항암치료가 매우 힘들지만,, 예수처럼 하나님을 광신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망각한 정치가들에 의해 내쳐지고 죽게 될 수 있지만, 새로운 골수를 이식받아 내적 형질이 바뀌는 삶.


유신진화론 (창조신화론)  논쟁이 한창이다. 몇 주전 오랜 교우들과의 만남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 다잉도 중요하잖아요. 기독교가 신학적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굳이 신학이 그런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계의 입장이 있을 테고 교회도, 혹은 개인 누구라도 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입장을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학이 다른 학문의 우위에 있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불가능해요."


신학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신학은 절대적인 학문이 될 수 없다.

늘 사이에서 확장되고 깊어지면 될 뿐이다. 완결판은 없다. 어느 학문에도. 우리는 그 사이에서 결정하고 우리 자신을 확장해간다.


단정하고 견고해지며, 좁고 얕은 광신자가 되어갈 수도 있다.


어제는 카나다에 있는 작은오빠 부부가 한국에 나왔다. 5남매  부부가 모였다. 과식했고 많이 떠들고 많이 웃었다.

오늘은 과식한 것을 생각해 음식을 절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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