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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17. 2024

2월 17일

사순절 4일

라틴어 meteria(물질)는 mater(어머니)에서 비롯됐다.


“현대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물질 경시와 물질 남용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머리를 구름에 처박고 어머니인 이 땅을 무슨 셀프서비스 상품이라도 되는 듯 들어먹는 기술이 아니라 다시금 물질적으로 살아가는 기술이다.” _ 안젤리카 알리티 (<생태주의자 예수> 30)


안젤리카 알리티에 의하면 물질 경시와 물질 남용이란 가부장적 문화, 남성 원리에 의해 주도되는 문화, 섬멸전, 즉 남자 대 생명의 전쟁이었으며, 아버지인 조국이 어머니인 땅 위에 군림하려는 시도였다. 가부장제 몰락의 마지막 단계는 백인들의 문명이 지구 전체에 피해를 줬다.




안젤리카 알리티의 말이 정말 맞다.

농약이나 제초제는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람을 살상하는 데 사용했던 물질이다. 전쟁 산업이 망하지 않고 유지되도록 고안된 전쟁의 유물이다. 모든 곤충과 풀을 박멸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더 강력한 생물 억제제, 살충제, 제초제를 만드는 산업이 육성되었다. 화학 살충제가 익충을 죽이자 그 자리를 질병과 내성이 강해지는 해충이 차지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지난 30년간 유독성 살충제로 인해 벌의 75%가 사라졌다. 합성 비료는 토양이 지연적으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토양 유기체들을 죽임으로 토양의 침식과 토질 악화를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물을 오염시켜 생명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있다. 거대한 수산업 시스템은 생물의 종 75% 이상을 멸종시켰다. 수온이 올라가고 바다의 먹이사슬도 파괴되면서 탄소를 흡수하고 대기 온도를 식히는 기능을 바다는 더는 지난날처럼 할 수 없다. 모든 해양 생물의 25% 이상에게 서식처를 제공하는 산호초 대부분이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다. 유전자 변형기술로 생산된 먹거리로 우리 인간이 비만과 영양부족을 동시에 겪고 있으며, 지나친 육식을 제공하기 위한 축산업은 동물들을 비롯해 지구의 생명이 곳곳에서 신음하게 한다. 서로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함께 살아가는, 창조 때부터 보기 좋았던 세상은 보기 힘들다. (<몸을 돌아보는 시간>(조희선

사자와어린양) 203~208 참고)


지구의 생명체는 다섯 번째의 사멸을 겪었다. 다섯 번째는 6천 5백만 년 전 공룡이 멸종된 시기다. 기후변동, 운석 침입, 진화경로 이탈이 원인이었으며 그때마다 모든 종의 65~95%가 제거되었다.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여섯 번째 사멸은 우리에게 그 책임이 있다. 25년 전 이 책이 쓰여질 때 매일 70~150종의 생물이 사멸되었다. (<생태주의자 예수> 30, 3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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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예수는 이런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예수가 이해한 ‘종교’(religion=다시 묶다)는 우리 자신을 아버지 · 창조자 · 세계 · 자연 · 생명과 다시 묶는 것이다. 우리가 이 ‘religion’을 하나님 · 자연 · 생명과의 연결로 이해한다면 여기에는 하나의 윤리적 의무가 뒤따른다. 즉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과 모든 생명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존하고 창조세계의 보존을 도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이것은 우리가 유일하게 이성의 능력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도 ‘생각하는’ 인간 Homo Sapient과 근본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무인 것이다.” 생명의 그물을 직조한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전체 그물을 구성하고 있는 이음줄의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물에 가한 행위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예수는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자연을 노래할 줄 아는 위대한 시인이었다. 사십일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 복음서는 생태적인 예수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이천년 전 예수가 살았던 곳은 주민 대다수가 농부나 수공업자였다. 이천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외적인 진보를 위한 욕망을 발전시켰으나 내적인 진보와 정신적 진보에 관한 한 너무나도 무식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우리는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잊어버렸다. (<생태주의자 예수>32, 33)




가슴 아프고 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하나님을 광신하지만, 실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칭 기독교인의 상당수는 너무 무식하다. 우리  모두 모르는 게 많다. 인간의 산계이기도 하다.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실은 학문의 빗장을 진 채 자기 안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신학이, 교회가, 무지하고 제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인간이 만든 기술은 이제 사람을 소외시키고 스스로 인격을 가진 존재가 되어 스스로 발전한다. 이 기술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 다른 종을 소외시키고, 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데서 벗어나 연결하고 연결되어야 한다.

몸과 물질의 회복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이다.

몸을 돌아보고, 물질 세계를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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