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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23. 2024

2월 23일

사순절 8일

"위험이 있는 곳에서 구원도 자라난다"


(이 책이 쓰여지기) 200년 전 휘들린이 한 말이란다.


이것이 생태적 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수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77.


"신뢰, 관계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78.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우리는 사랑의 신비주의,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배운다. 이 생태적 인식과 더불어 우리 삶의 의미가, 사랑의 기쁨이, 죽음의 비밀이 드러난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또 다른 형태의 삶이 있을 뿐이므로,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다. 죽음이 없다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삶, 덜 파괴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연은 파괴하지 않는다. 변화시킬 뿐이다. 78, 79.


______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 것들, 약하고 고통스러운 이의 신음하는 것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견디는 것은 힘들고, 아프다.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이 내 피붙이라면 초연하게 지켜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인간 세상이 오늘과 같이 경쟁과 약탈 구조가 아니라, 그야말로 동네가 한 아이를 키우는 세상이라면, 이웃과 환경, 국가가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떠나보내거나 남아있는 게 덜 힘들 것이긴 하다.


그러나 참 그런 세상은 참 요원하다. 오죽하면 펄벅이 자신의 사후 자신의 자라지 않는 아이가 좋은 시설에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돈을 목적으로 글을 썼을까!

여전히 홀로 남겨질 어린 것, 약한 것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더욱 신뢰할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에 힘쓰는 이들이 도리어 남겨진 이들이라니. 소수의 신앙인 외에는 다수가 교회 밖 사람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나친 치료, 다만 죽음을 연기하려는 치료가  죽음을 피하고 싶은 지나친 욕심, 늙기를 피하려는 과한 노력이 만연하다.


어쩔 수 없는 인생 오후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다.

죽음이란 남겨진 이들 안에서 다른 형태로 살게 되는 삶의 변형임을 깨닫는다.

내 안에 엄마가, 아버지가, 할머니가 살아계신다.

청개구리의 어미도 그 자식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예수가 또한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서 부활한다. 그러나 청개구리가 제 어미가 남긴 말을 어떤 식으로 들었는지 ㆍㆍㆍ

생각할 게 많다.

오늘은 남편이 병원가는 날, 늘 마음이 편하다가 병원가기 하루 이틀 전부터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닐이 갈수록 콩닥거림이 덜해간다.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는가가 삶을 만들어간다.


어린 것들에게 사랑하는, 죽은 이가 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고 하는 것은 위로가 되고,

더욱 마음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또한 소중한 깨우침일 테다.


우리 세대는, 나같은 사람은 많은 걸 누렸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지만, 솔직히 아직 어린 것, 태어날 어린 것들, 신음하는 생태계를 위해서는 사람이 늘지 않으면 한다. 국가를 이야기한다. 국가가 사람을, 생명을 생태계를 결코 앞설 수 없다.


내기 옳은지, 그른지 모른다.

위험이 있는 곳에서 구원도 자라난다고 하지만, 오늘 그 위험은 무엇이며, 구원이란 어떤 것일지!


오늘과 내일 병원 데이트다.

원고 투고는 다음 주에나 시도해보련다.


어제 김성수 목사님께서 <책과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하루들>은 제목으로 너무 긴 것 같다며 부제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셨다.

제목에는 일기라는 게 드러나면 좋겠다고. <인생 오후 일기>라고 하면 어떨까? 김연수의 <시절 일기>가 있듯. 어차피 원고가 채택된다면(과연 채택될 수 있을까?) 출판사가 관여하겠으나, 일단은 제목이 있어야 하니.

제목을 짓는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아간다.


"일기"

유가족  혹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는 유품이다.


관심분야라서,

작가를 신뢰해서,

출판사를 신뢰해서,

혹은 우정 때문에,

책을 산다.


생전 처음 <작가정신>이 모집하는 서평단에 지원했다. 결과는 26일.


만일 된다면?

(내거 아닌 남편의) 연금생활자가 도서비를 줄일 수 있고, 내가 골라 있는 독서의 좁은 범위를 벗어날 수 있고, 도무지 자신 없는 '서평'이라는 영역에 처음 발을 내딛는 모험을 저지르는 것이다. 내게는 낯선 '모험'






































사순절 8일

"위험이 있는 곳에서 구원도 자라난다"


(이 책이 쓰여지기) 200년 전 휘들린이 한 말이란다.


이것이 생태적 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예수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77.


"신뢰, 관계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78.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우리는 사랑의 신비주의,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배운다. 이 생태적 인식과 더불어 우리 삶의 의미가, 사랑의 기쁨이, 죽음의 비밀이 드러난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또 다른 형태의 삶이 있을 뿐이므로,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다. 죽음이 없다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삶, 덜 파괴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연은 파괴하지 않는다. 변화시킬 뿐이다. 78, 79.


______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 것들, 약하고 고통스러운 이의 신음하는 것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견디는 것은 힘들고, 아프다.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이 내 피붙이라면 초연하게 지켜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인간 세상이 오늘과 같이 경쟁과 약탈 구조가 아니라, 그야말로 동네가 한 아이를 키우는 세상이라면, 이웃과 환경, 국가가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떠나보내거나 남아있는 게 덜 힘들 것이긴 하다.


그러나 참 그런 세상은 참 요원하다. 오죽하면 펄벅이 자신의 사후 자신의 자라지 않는 아이가 좋은 시설에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돈을 목적으로 글을 썼을까!

여전히 홀로 남겨질 어린 것, 약한 것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더욱 신뢰할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에 힘쓰는 이들이 도리어 남겨진 이들이라니. 소수의 신앙인 외에는 다수가 교회 밖 사람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나친 치료, 다만 죽음을 연기하려는 치료가  죽음을 피하고 싶은 지나친 욕심, 늙기를 피하려는 과한 노력이 만연하다.


어쩔 수 없는 인생 오후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다.

죽음이란 남겨진 이들 안에서 다른 형태로 살게 되는 삶의 변형임을 깨닫는다.

내 안에 엄마가, 아버지가, 할머니가 살아계신다.

청개구리의 어미도 그 자식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예수가 또한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서 부활한다. 그러나 청개구리가 제 어미가 남긴 말을 어떤 식으로 들었는지 ㆍㆍㆍ

생각할 게 많다.

오늘은 남편이 병원가는 날, 늘 마음이 편하다가 병원가기 하루 이틀 전부터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닐이 갈수록 그런 증상도 가라앉는다.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는가가 삶을 만들어간다.


어린 것들에게 사랑하는, 죽은 이가 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고 하는 것은 위로가 되고,

더욱 마음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또한 소중한 깨우침일 테다.


우리 세대는, 나같은 사람은 많은 걸 누렸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지만, 솔직히 아직 어린 것, 태어날 어린 것들, 신음하는 생태계를 위해서는 사람이 늘지 않으면 한다. 국가를 이야기한다. 국가가 개인과 생태계보다 결코 앞설 수 없다.


내기 옳은지, 그른지 모른다.

위험이 있는 곳에서 구원도 자라난다고 하지만, 오늘 그 위험은 무엇이며, 구원이란 어떤 것일지!


오늘과 내일 병원 데이트다.

원고 투고는 다음 주에나 시도해보련다.


어제 김성수 목사님께서 <책과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하루들>은 제목으로 너무 긴 것 같다며 부제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셨다.

제목에는 일기라는 게 드러나면 좋겠다고. <인생 오후 일기>라고 하면 어떨까? 김연수의 <시절 일기>가 있듯. 어차피 원고가 채택된다면(과연 채택될 수 있을까?) 출판사가 관여하겠으나, 일단은 제목이 있어야 하니.

제목을 짓는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아간다.


"일기"

유가족  혹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는 유품이다.


관심분야라서,

작가를 신뢰해서,

출판사를 신뢰해서,

혹은 우정 때문에,

책을 산다.


생전 처음 <작가정신>이 모집하는 서평단에 지원했다. 결과는 26일.


만일 된다면?

(내거 아닌 남편의) 연금생활자가 도서비를 줄일 수 있고, 내가 골라 있는 독서의 좁은 범위를 벗어날 수 있고, 도무지 자신 없는 '서평'이라는 영역에 처음 발을 내딛는 모험을 저지르는 것이다. 내게는 낯선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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