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5일 남편병원에 가서 기다리는 동안 작은딸이 카톡을 보내왔다. 갑자기 마음이 쫄았다. 그 아이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일 텐데. 나는 여간 마음이 무너지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나는 출판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이런 것도 모르냐고 야단치는 것 같다. 큰사위에게 원고를 보낸 것도. 그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데, 착해서 그냥 받았을 텐데. 부담을 줬다고 야단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인데, 사실 나도 후회하고 있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식하게 읽고 쓰기만 했다. 어쩌다 좋은 인연을 만나 출판사 제의를 받고 책이 두 권이나 나오니, 어느새 나를 과대평가했다. 그런 내가 우습다.
나는 글을 왜 쓰는 걸까? 굳이 왜 그걸 출판하려는 걸까? 몸으로 살지 못하는 걸, 글로 쓰며 있는 체하는 내 허영과 거짓을 마주했다. 그런데도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시청했다. 앞으로는 ‘글’ 대신 ‘몸’이고 싶지만 가능하지 않음을 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오랜만에 낮아진 마음이 한편 안심하며 잠을 청했다.
잠자는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오늘 아침 7시가 넘어 깼다. 이런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다. 마음이 가장 낮아지면 이런 일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 하고 부른다. 그 안에 내 모든 게 들어있다. 얼마나 편한가!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면 그럴까! 기억에 의하면 어느 정도로 큰 다음에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엄마에 비유되지만 다르다. 엄마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엄마인 내가 안다. 어제는 내 정신세계가 마치 유리같이 부서지더니, 오늘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오후엔 <복음과상황> 펠로우십 모임에 가기로 한 게 우스웠는데, 오늘은 다시 괜찮아지며 모임에 갖고 갈 도토리묵을 쒔다. 그리고 다시 딸이 매섭게 지적한 말을 생각하며, 출판사에 낼 기획안과 – 시놉시스란 소설을 생각해 제시한 것이며 기획안을 쓰면 된다 – 글을 어떻게 교정할지, 제목을 어떻게 할지 생각이 가득하다. 게다가 다시는 글을 쓰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사라지고, 가여운 - 내가 가엽게 생각할 뿐이다 - 남편에 대한 글도 쓰고 싶어진다. 혹 내가 딸을 잘못 끼운 건 아닐까 했는데, 잘 자란 것같기 하다. 그 아이 만의 역할이 있는데, 따뜻하고 부드러움이 아니라, 내게는 없는 나는 그럴 수 없는 냉철하고 비판적인 면이 필요하다.
사순절 기록을 오늘 쉬는 게 참 좋다. 나 스스로 세운 계획이긴 하지만 자유롭지 않다. 나는 그런 체질이 아닌 듯하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 <만들어진 예수 참사람 예수>(존 쉘비 스퐁|한국기독교연구소)와 <더 이상 하늘에 계시지 마시고>(버나드 엘러|대장간)을 읽고 있다. 아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를 설명하는 부분이 다가왔다.
“불룸하르트는 인류 진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이 ‘기독교’라고 확신했다. 그는 기독교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한 실제적인 일 대신에 이기적이고 자기 만족적이며 피안적인 종교성만을 부추기는 의식과 종교행위로 가득한 일요일 종교를 말한다. 그는 예배 형식과 자기 구원, 내세엠반 집중하며 삶의 진정한 변화와 하나님나라의 정의를 도외시하는 허울뿐인 기독교를 한탄했다.”
어쩌다 <생태주의자 예수>, <만들어진 예수 참사람 예수>, <더 이상 하늘에 계시지 마시고> 신앙 서적만 읽고 있다. 부족하다. 소설을 붙잡을 때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