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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26. 2024

2월 26일

사순절 10일

예수의 시대나 지금이나 정치, 경제, 종교 지도자들이란 자신들의 권위가 무시당하는 것을 도무지 참지 못한다. 여성적 성향이 강한 생태주의가 남성이 주도하는 경제학에 대해 그런 것처럼, 생태적 예수는 가부장제에 -  교회 가부장주의도 마찬가지! - 강력한 도전이 된다. 낡은 경제 원칙을 고수한 체 세계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국제적 콘체른(다국적 기업집단)의 의장석에는 대개 지긋한 남자들이 앉아 있다. 반면 여성들은 이런 남성들에게 소규모 운동을 조직하여 맞선다. 유기농 산물을 구입하는 등 작은 실천을 전개한다. 예수는 가부장적 사회의 한복판에서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창조적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을 믿는 종교를 되살렸다. 예수의 하나님은 생명을 낳는 분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양수에서 헤엄치고 있다.


"우리는 우주적 은총의 양수 속에서 살고 있다."_메튜 팍스


이 이미지를 명상하면 우리 안에서 깊은 기쁨과 사랑의 생명. 력이 분출한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물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1969년 우주비행사 러스티 슈바이커르트. 그는 우주비행 중 밧줄을 몸에 매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 우주의 고요함 속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그때 그는 개인적, 정치적 회심을 했다. 새까만 어둠을 배경으로. 보석처럼 빛나는 '어머니' '지구'를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이 보석 안에 그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 그의 가정, 친구, 음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치 산모가 갓난아이에게 하듯 이 보석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전형적인 반공주의자, 전형적인 미국 군인으로 폭격기 조종사였던 그는 그 깨우침의 순간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분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를 예감 할 수 있었다. 공산주의의 구름 따로 있고 자본주의의 구름이 어디 따로 있던가? 그때 그의 눈에 국가는 없었다. 다만 하나의 세상, 놀랍도록 아름다운 별이 있었을 뿐이다. 슈바이커르트가 우주공간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깨달음에는 대략 4000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예수가 말하는 완전함이란 도덕적 완전함이 아니라, 전일성과 온전함을 향한 노력이다. 완전한 공감의 능력을 의미한다. 예수는  비단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게도 공감을 갖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창조물 아닌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피조물에게 공감하시듯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91~93)


____


여전히 여성안수를 부정하는 교단이 있다.

여전히 전쟁을 지지하며, 국가간, 지역간, 정치적, 종교적 갈등, 제더 갈등의 한 복판에서 생명을 경시하고 여전히 인간중심, 비장애인 중심주의 편에 서는 차별을 부추기는 교회가 허다하다.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은 생명을 파괴하거나 이용하는 분이 아니다. 도리어 생명을 보전하고 낳는 분이다. 차별없는 세계로 피조세계를 서로 공감하는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다.

그분에게는 그야말로 국가라는, 남자와 여자라는,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별 없이 보기에 좋은 하나의 피조계가 있을 뿐이다.


전쟁 소리,

무기를 만드는 소리,

무기판매를 위해 협상하는 소리,

숲을 파헤치는 소리,

더 많은 고기를 더 싸게 먹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신음소리,

도축장에서 나는 소리,

어느 곳에나 줄지어선 고기식당에서 들리는 지글지글 소리,

낡은 건물을 폭파하는 소리,

땅을 파는 소리,

건설현장의 쇠소리와 노동자가 떨어지는 소리,

차별에 신음하는 소리,

옥상과 고공트레인에서 떨어지는 소리,

곳곳에 생명이 떨어지는 소리,

나도 가끔 그 떨어지는 생명을 꿀꺽 삼킨다.

아니 매순간.


사실 나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육식을 하는 것, 과식을 하는 건 먹는 이와 생태계 모두에게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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