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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선 Feb 27. 2024

2월 27일

사순절 11일

아래 글은 이미 오래전 기록된 것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8월의 인도양. 맑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우리는 바닷속을 고기들처럼 헤엄쳐 다닐 수 있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황홀한 생명의 세계가 펼쳐진다. 수많은 산호초들.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들에 휩싸였다. 수천의 고기떼가 푸르른 바다 빛을 저마다의 빛깔로 반사해내는 수중 사원이었다. 아마도 인간이 그 존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 혹시라도 깨어질까? 두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생태적 질서. 바다 밑에는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거북복, 톱니농어, 나비고기, 바늘돔, 검은쥐치, 한벌홍감펭, 청-백-흑띠를 두른 자그마한 청소부물고기, 바다거북, 쥐가오리, 도미, 도화돔, 온갖 종류의 달팽이들, 이 모든 것 뒤에는 오색 창연하게 빛나는 산호정원이 있다. 그야말로 바닷속의 향연이다. 우리는 사주에 사는 작은 상어, 크고 검은 가오리도 보았다. 크기가 2미터 50 50센티미터나 되는 거대한, 그러나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나폴레옹피시, 그 밖에도 다양한 수중 생물도 눈에 띄었다. 각양각색의 생물이 이 다른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물안경을 벗어던지고 높은 충동을 느꼈다. 물고기들은 갖가지 형태로 무리를 이루어 춤을 추었다. 열대우림이나 바다밑 모래밭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이렇게 충일한 생명력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지갯빛 아름다움을 창조한 분은 필경 이 피조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존재일 것이다. 달리는 상상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의 다양성 속의 일치를 깊은 신비로 체험한 사람은 그 사실을 애써 믿으려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다. 저 바다가 살아 있으니 우리도 살아 있다는 것을. 이러한 앎 속에서 그는 감사 겸손, 삶의 기쁨과 사랑,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한 번이라도 그 바다 깊은 곳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바다를 지키기 위한 일에 뛰어들 것이다.


지금은 그 가운데 많은 것이 죽어 버렸다.


예수에게 있어 하나님은 '현실적인 현실'이었다. 하나님은 전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실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임을 개별적인 것들 속에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기에게 기저귀를 채우고 책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거룩함이란 온 마음을 기울여 살고 일하고 사랑하는 것, 온 마음을 들여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려 깊음이 없고서는 올바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파괴만이 남는다. 사려 깊게 살지 않으면 우리의 가능성에 못 미치는 삶을 사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속이고 생명을 모욕하는 것이다.

(93~99)




"온 마음을 기울여"


오늘부터 다시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시간을 잃는 건 아닐까? 은근히 염려했다.

절로 2시 30분. 일찍 일어나 해야 할 일을 몇 가지 했고, <생태주의자 예수>를 읽었다.

각종 생명의 이름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 감각을 잊지 않아야겠다.

정혜윤의 <삶의 발명>(위고)에 등장한, 보지 못했지만, 흑두루미부터 거북알까지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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