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일기
"혼자 남겨지면 너는 어떻게 살 것 같아?"
"네가 내 입장이라면 남은 날을 어떻게 살 것 같아?"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다. 덕분에 그런 날의 삶이 조금은 더 구체화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모델링하며 산다.
아마도 나는 내가 그동안 읽거나 만나거나 한 사람들, 그들의 삶에서 형성된 가치를 모델링하며 살아가게 될 거다.
이러한 모델링은 어쩌면 내용을 바꾸어나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방향성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만일 내가 혼자 남으면?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무척이나 흔들리고 상당히 괴로울 것이다. 많이 무너질 것이다. 많이 울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책을 읽을 것이고 끄적거릴 것이다. 요즘에 와서야 나도 어떤 사람들처럼 나 혼자서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무척 외로움을 탈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집을 개방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고립형 인간인 나는 세상과의 관계를 이어 나갈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내 곁에 있었으나 떠난 나의 남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그는 내 안에서 부활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
집에서 나갈 때와 들어올 때, "여보 나 갔다 올게.", "나 다녀왔어."라고 그날 있을 일과 그날 있었던 일을 입으로 중얼중얼 거리며 마치 그 사람인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소리 내어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함께 살아나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움직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며, 실까? 고심하던 책을 결국은 주문했다.
남은 날을 그리며, 치우치지 않고 살아갈 길을, 모델링할 인물과 사건들, 그리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빽빽하게 담긴 책이다.
#콰이강의다리에조선인이있었다
#조형근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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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다》도서관에서 빌려 책을 읽는 내내, 살까? 말까? 망설이며 읽게 되는 책이다.
세계체계이론, 반(semi)주변부 인간들의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 그러나 그 안에서도 마주하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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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뒤죽박죽 얽히지 않은 사건들이 없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세계사 안에서 선과 악으로, 한 사람이 그 선과 악에 연루되어 있다.
이 책 안에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인들이 같은 식민지로 끌려가 일본에 종사한 '포로 감시인'만 만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알만 한 각계의 인사들을 만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잊혀지지 않는 책인데,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
압록강을 건너 이미륵, 고서적 주인을 통해 그를 만난 전혜린을 통해 그가 알려졌고, 그가 백장미단을 이끌다 처형된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의 맏이인 잉계 숄이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증언한 책 《하얀 장미》 즉,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전신(?)을 번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륵은 독재정권 시대에 하얀 장미를 번역했고, 후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다른 이가 번역했다.
후버와 이미륵 두 사람의 우정을 기리며 그래펠핑시와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 국외소재문화재단이 함께 해 세운 이미륵의 동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있단다.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 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힘(과학)에 대한 동경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숭배로 바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술은 삶(그리고 죽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반면,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과학자들의 동기는 유용성이나 편리함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_ 사이먼 싱
조형근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다》(한계레출판) "과학의 우리를 구원할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