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문명이 자라고 있다는 상상

임신 23주, 아기가 뱃속에서 ‘논다’는 것에 관해

by hee
#조카들 #너네뭘뜯고노는거야 #바구니에왜앉는거야 #귀여움 #오늘아님

왜 뱃속에서 잉어가 움직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일본 정원에 있는 연못에서 노니는 잉어 같다. 크게 팔딱거리는 건 아닌데 움직임은 묵직하고, 빠르진 않지만 물살에 충분히 영향력이 있어서? 태동 말이다.

몇 주 전부터 뱃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퐁퐁 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스윽 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장이 움직이는 건지 가스가 찬 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다가, 최근 들어서는 확실히 뱃속 생물의 움직임이란 걸 느낄 수 있게 됐다.

이게 더 세지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좀 무섭다는 사람들도 있다. 밤에 많이 움직여서 잠자기가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막달의 임산부가 자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클립을 봤는데, 정말 눈에 띌 만큼 강하게 여러 번 움직인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움직임이 평소보다 강해서 실제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태동이 시작되고서 좋은 점은 이게 정말 특별한 경험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임신의 전 과정이 그렇긴 하지만, 나는 매일 아기의 존재를 실제로 느끼는데 남편은 전혀 느끼지 못 한다. 태동이 느껴져서 남편을 불러 만져보라 하면 또 움직이질 않는데, 이럴 때 어쩐지 우쭐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은 뱃속에 대고 말을 많이 한다. 영향력을 미치려는 게지. 나는 보이지 않는 뱃속의 아기에게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아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하. (왜 경쟁하는 거지..)

아기가 뱃속에 있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물론 많다. 가짓수로 따지면 어려운 점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와 심리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의 가짓수를 대등하게 비교해 사안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때때로 어려운 일들도 즐겁게 해낼 수 있는 존재다.

태동은 실제로는 임신 10주~12주쯤 시작되지만 임신부가 느낄 수 있는 건 20주 전후라고 한다. 17, 18주에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19주쯤엔 ‘긴가민가’ 했고 20주쯤부터는 확실히 느꼈다. 이쯤에는 태아의 태동 빈도가 일주일 에 200회는 된다고 한다.

아기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가끔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 우르륵 우르륵 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신경적인 반응일 테지만, 인간은 원래 태초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야기 입히길 좋아했고 나또한 바로 그런 자들의 후손이기에 괜히 생각한다. ‘뭔가 신났나?’라고.

실제로 이 태동을 두고 어른들은 애기가 뱃속에서 ‘논다’고 표현한다. 그 단어를 두고 태아가 뱃속에서 정말로 노는 걸 상상해보자면, 정말 너무 귀엽다. (전혀 그럴 리 없겠지만) 장난감 블록이라도 쌓는 거 아냐? 초콜릿 공장 같은 게 있고 움파룸파를 키우고(?) 있을지도. 뱃속에 아기 나라의 문명이 번성하고 있을지도 몰라.

태동은 일종의 생존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존재감을 알리는 방식. 실제로 의사들도 태동이 일정 시간 동안 느껴지지 않으면 병원에 오라고 한다. 뱃속에 살아 있는 것을 품고 있는 건 날마다 신기한 경험이다.


사진은 조카들 노는 모습. 뭔가...베개같은 걸 뜯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