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3주, 조산 위험에 대처하는 마음에 관해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안정을 취해야 해요
-선생님 저는 무리하지 않는 게 뭔지 모르겟어요 무리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저도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좋은데...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조심하세요
어리둥절한 채로 진료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도 아마 답답한 건 마찬가지겠지. 지난 금요일 산부인과 정기 검진 날이었다. 자궁경부 길이가 2.2cm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인 즉, 조산 위험이 있다는 것. 23주 시기 평균 길이는 3.5~4.5cm정도이고, 2.5cm이하일수록 조산 위험이 높아진다. 병원마다 처방이 조금씩 다른데 이 정도일 때 입원을 권하는 곳도 있다. (경부 길이가 짧다고 전부 조산하는 것은 아니며, 자궁수축 등이 동반될 때 더 위험하고, 경부 길이가 원래 짧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추적 관찰이 필요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거였다.)
임신 18주부터 자궁경부 길이가 짧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3.5cm였고 이는 해당 주수 평균인 4.0~4.5cm에는 못 미치지만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그때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다. 주치의는 배가 뭉치거나 피가 나거나 밑이 빠지는 느낌이 들면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때도 나는 배가 뭉치는 거나 밑이 빠지는 느낌이 당최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며칠 뒤, 밤중에도 뇌가 꺼지지 않는 날이었다. 간혹 그런 날이 있다. 마음에 뭔가 남아 있거나 골치 아픈 프로젝트나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다 보면 머릿속이 한밤중에도 빛나는 서울의 항공사진처럼 환한 날이.
그날의 문제는, 머리가 돌아가는 내내 배가 아프다는 거였다. 뇌는 모터처럼 돌아가고 불안 신경까지 활짝 열려서는 점점 더 배가 아프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게 됐다. 명상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스트레칭도, 차마시기도 다 듣지 않았다. 두세시간 동안 배가 아팠다. 배가 뭉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배가 좀 딱딱하긴 했지만 이게 그 느낌인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평소 다니는 병원의 분만실에 전화를 걸었다. 긴급히 진료받아야 할 임신부는 응급실이 아닌 분만실로 간다. 분만실 당직 간호사는 옆으로 누워서 한 시간 정도 있어보고 그래도 아프면 오라고 했다. 한 시간이 더 지나도 아팠다. 결국 남편을 깨워 병원으로 갔다. 새벽 다섯시였다.
작은 방에서 수축 검사를 먼저 했다. 자궁에 수축이 주기적으로 오면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다. 주기적 수축은 분만의 신호다. 다행히도 수축은 없었다. 그다음엔 수술실 같이 생긴 분만실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다. 당직 의사놈이 들어와 확인했는데 아기가 조금 밑으로 내려와 있지만 괜찮다고 했다. 경부 길이는 2.8cm로 줄어 있었다. 밑으로 내려와 있지만 괜찮다고? 우리 선생님은 조심하랬는데..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아직 큰일 날 정도는 아닌가보다 했다.
내가 그 당직의를 굳이 의사놈이라고 적어야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초음파 사진을 뽑아 설명하면서 그 당직 의사놈은 “미국 같으면 병원 올 생각도 못 하는데 한국이 병원비가 싸서 (이런 일로)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 엄마들이 일을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는 영양가 없는 소리를 했고 “산모가 괜히 너무 걱정해서 그렇다”는 흰소리를 했다.
적어놓고 보니 실제보다 점잖아보여서 더 부아가 치미는데, 그때 분위기를 담아 전하자면 결국 별 문제 없는데 호들갑 떨어서 이 사단이 났고, 엄마가 일을 하는 게 문제라는 소리였다. 나는 일단 긴장은 풀렸지만, 기분이 매우 더러워졌다. 그렇지만 새벽 여섯 시의 피로를 핑계로, 한마디도 쏘아붙이지 못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분에 못 이겨 엉엉 울었다. 그 의사놈은 나중에 알고보니 병원장이었다. 내가 만났던 모든 의료진은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무슨 병원장이 그따윈가 싶었다. 만성 무좀과 가족들의 외면으로 평생 고독하게 고생하라고 마음속으로 저주했다.
이 일이 있은 다음에 간 정기 검진의 결과가 2.2cm였던 것이다. 주치의는 정말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3.5에서 2.8로, 2.8에서 2.2로 또 줄어 있었으니까.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나는 안개속에 버려진 것 같은 기분만 들었다. 누워 있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주치의는 “그게 도움이 될 거다”라고 했다. 그와중에 주치의에게 깨알같이 새벽 분만실의 일을 일러바치기도 했다. 주치의는 “그럴 때 빨리 와야 한다”는 말로 위로를 대신했다.
이름도 붙여주고 성별도 알고 함께할 삶을 수도없이 생각해봤던 뱃속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내가 너무 무리해서 일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일단 또 눈물이 났다. 임신을 하고서는 확실히 자주 우는데, 이는 너무 낯설지만 과거 나의 차가운 이성이 갑자기 등장해 눈물을 막을 순 없다. 그냥 자주 우는 임산부란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맘카페를 검색해보니 ‘눕눕’한다고들 했다.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거의 누워 있는다고. 맘카페는 경험 빅데이터의 보고이지만 카더라의 바다이자 연구되지 않은 소용돌이 같은 곳이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우리동네 산부인과)을 보니 너무 누워만 있다가 혈전이 와서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의사가 쓴 칼럼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가벼운 산책은 해야 하고 누워 있더라도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전히 오리무중 같았지만.. 뭔가 여튼 안정을 취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하고 누워 있는 건 도움이 되지만 눕눕만 하는 건 안 되고..뭐 어딘가 적정선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임신 23주였다. 20주부터 34주 사이에 분만을 하면 조산이라고 한다. 적어도 11주는 버텨야 조산을 면하는 거였다. 물론 요샌 기술이 좋아 일찍 나온 아기들을 잘 살려낸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지금 1kg도 안 되는 빨갛고 연약하고 작은 생명이 밖에 나와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걸 무슨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없는 게 가장 좋은 거였다.
일단 당장 일주일을 쉬고, 그다음에도 경과가 안 좋으면 병가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다른 건 걱정 말고 그러라고 했다. 4월부터는 출산휴가에 들어갈 생각이었어서 이미 가계 소득에 관한 이야기를 연말에 마쳐뒀는데, 두세달 앞당겨져도 괜찮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유자녀 선배들에게도 징징댔다. 쉬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뭔가 죄책감이 든다고.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명쾌했다. 뭔 죄책감이야 맘 편히 먹고 그냥 쉬어. 엄마 쉬라고 아기가 효녀네. 나도 일 생각만 했었는데 가 부질없더라.
그런데 쉰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도통 편치 않았다.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앞날부터 걱정됐다. 낯설었다. 평생을 사회인으로 스스로를 인지하고 트레이닝해왔는데, 갑자기 가정에 속한 여자로, 엄마로, 그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의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이라는 정체를 들키고 만 것 같았다.
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예전 사람들은 어떻게든 버텨서 막달까지 다녔을 텐데, 내가 너무 나약하게 구는 걸까? (그럴 수도 없고 그게 될 리가 없는데도) 내가 좀 더 참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 해 10월부터 맡고 있던 매니징 업무는 꽤 재미가 있었고 잘하고 싶었다.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 그걸 놓아야 한다니, 아쉽기도 하고 막연히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검진 당일 오후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팀장님은 내 말을 듣자마자 0.1초만에 “당장 쉬어야 한다”고 하셨다. 타협의 여지 없이 명쾌한 주문이었다. 인생을 길게 보면 그 정도 쉬는 기간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며, 그 정도 쉬고 돌아와도 크게 변해 있지 않더라,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는 축복이다, 당장 몸부터 챙겨야 한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팀장님은 평소에도 이런 이슈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예상치 못 한 반응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더 단호하고 명쾌해서 나까지 덩달아 ‘그래야만 한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긴 휴직이 시작됐다. 출산, 육아휴직까지 쭉.
인수인계 파일을 만드는데, 내가 안고 있던 일이 참 많았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던 분들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내 일을 떠맡게 된 동료들에게도 미안했다. 하지만 동료든 같이 일하던 콘텐츠제공자든 다들 그런 걱정하지 말고 당장 일을 넘기고 쉬라고 했다. 일은 어떻게든 돌아간다고. 그리고 진심으로 나와 아기의 건강을 빌어줬다.
내가 이 팀에서 일하는 2년 반 동안 두 명의 선배가 둘째를 낳는 걸 봤고, 두 명의 동료가 아빠가 되는 걸 봤다. 그때의 나도 생각해보면, 출산으로 인한 공백기의 일을 넘겨받아야 했을 때 같은 마음이었다. 일은 어떻게든 돌아갈 것이므로 하루 빨리 넘겨주시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시길, 그리고 건강히 순산하고 돌아오시길 빌었다.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해, 나도 미련 갖지 않고 후다닥 정리해 넘겼다. 미안해하기보다 고마워하기로 한다.
이번주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아기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임신 중에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봄이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와 도움 속에서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와중에 새벽의 분만실 당직 의사놈 같은 빌런들도 가끔 만나겠지만 마을의 다른 어른들이 또 지켜주고 도와줄 것이다.
그동안 빨리 시간이 지나서 봄이를 빨리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큰일 날까봐 봄이와 관련해서는 ‘빨리’라는 부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한다. 충분히 잘 자라서 때가 됐을 때 건강하게 만나자는 마음으로 여유를 담아 심호흡한다. 그러면 내 마음도 해질녘 고요한 호숫가처럼 편안해진다. 너는 봄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는 따뜻하고 화려한 5월에 주인공처럼 꽃길 걸어 오면 되는 거야.
사진은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봄이 모자와 신발. 퀼트 경력이 한 20년 되신 시어머니는 가방 이나 파우치 같은 것쯤은 뚝딱 만들어주신다. 이불커버나 쿠션커버, 장식용 퀼트도 며칠이면 완성. 팔아도 팔릴 것 같다. 요즘엔 뜨개질에 입문, 봄이 모자와 신발을 두 벌 만드신 뒤엔 애착인형을 만드시는 것 같다.
모자와 신발을 뜬 실은 사실 내가 몇 년 전에 뜨개질을 해보려고 사뒀던 실이다. 모티브 한 번 만들고 몇 년 보관하다가 최근 이사하고서 다시 눈에 띄었으나 영 안 쓸 것 같아서 어머님을 드렸는데, 뭔가 사부작사부작 하시더니 만들어주셨다. 내가 산 실로 만들어서 더 의미 있다며.
이야깃거리는 이렇게 탄생한다. 엄마가 사놓은 실로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셨어. 난 이런 따뜻한 이야기가 별로 없는 가정에서 자라서, 어머님의 의미부여가 내 과거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들게 하면서도 뱃속 깊은 곳까지 따뜻하다. 봄이가 좋은 마을의 식구가 되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