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1주 일기
임신을 하면 내장이 짜부라지는 기분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왜냐면 정말로 내장이 짜부라지기 때문이다.
임신에 관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이 사실이었다. 일차적으로, 포궁이 커져서 다른 내장이 짜부라지는 시뮬레이션 영상*에 충격을 받았고, 둘째로, 어째서 이 당연한 물리적 법칙을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포궁은 아랫배 아랫쪽에 계란 만하게 있다가 임신 후기에는 임신 전에 비해 길이와 폭이 약 6배, 무게가 약 20배 증가한다. 아기는 그냥 쬐끄만 점이었다가 수박 크기만큼 커진다. 지금 임신 8개월차인 내 뱃속에는 배추 크기의 아기가 들어 있다. 태동도 원래 아랫배쪽에서 느끼다가 이제는 배꼽쪽에서까지도 느껴진다. 장이 밀려올라가고 있다는 증거다.
평화로이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위장, 대장, 폐, 방광 같은 내장 친구들은 어느날 거대 포궁의 습격을 받는데… 그러면 당연히 터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이상 거대 포궁에 밀려 짜부라지는 게 이치 아닌가? 그런데 왜 이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 했고, 그토록 충격에 휩싸였나 정말 의문이다.
이 때문에 임산부들은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것뿐 아니라 숨이 금방 차고 소화가 어려워지는 증상을 겪는다. 배가 커지면 숨이 차는 건 익히 들었고 또 주변 임산부들도 봐왔는데, 왜 그게 폐가 밀리기 때문이란 걸, 그 단순한 인과관계를 몰랐던 걸까. 그냥 마법처럼 뿅 배가 커졌다가 얌전히 우웩 몇 번 하다가 애가 나오고 다시 작아지는 그런 걸로 생각했나보다.
이게 인류 공통의 경험이었다면, 혹은 남성의 경험이었다면, 언어도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해본다. 이 내장 짜부라질 사람 같으니라고! 라든가. 지랄 옘병 내장 짜부라지는 소리 하고 있네! 라든가.
아직 나는 소화가 안 되거나 숨이 차는 정도가 심하지는 않다. 아직 30주니까, 이제 배가 더 커지면서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장기가 눌려 있는데도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하다.
임신, 출산 과정을 제대로 연구하기보다 '경이롭다'고 추상적으로 퉁쳐버리는 것에 조금 반감이 있었는데, 겪어보니 경이롭다 말고 딱히 더 적절한 수식어도 없다. 한 주에도 몇 번씩 나는 놀란다. 뱃속에서 사람이 자란다니, 내가 그걸 낳는다니, 심지어 걔가 지금도 막 움직이고 있다니, 몸이 이렇게 변하는데도 살아진다니, 나도 이렇게 태어났다니!!
내장이 짜부라지는 기분은 별로지만 엄마가 된다는 기분은 지금까지 겪어본 기분 중 최고 신기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