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은 모두 짐승이었지
생애 초기 아기 케어는 먹고, 자고, 싸는 것에 관한 일이 핵심이다. 아기가 사람답게 먹고 자고 싸도록 돕는 게 이 시기 부모의 일이다.
지금의 나는 밥을 세 끼 먹는다는 것,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는 것, 대소변을 볼 때 적절한 근육을 쓰고 장소를 가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하지만 아기에게는 이 모든 게 낯선 일이다. 너무 낯설어서 차근차근 하나씩 적응해가야 한다. 어른들한테는 너무 당연한 이 패턴에 익숙해지기 위해 스스로 학습해나가면서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봄이는 이 기본적인 것을 배워가는 데 생애 첫 번째 페이지에 있다.
먹고 자고 싸는 것 중에서도 기본은 먹는 것이다. 잘 먹어야 잘 자고 잘 싼다. 실제로 아기의 수면 교육을 말하는 많은 정보들이 수유량을 조정해 수면을 조정하라 한다. 싸는 것은 너무 당연히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봄이의 먹는 활동을 돕다 보면, 지금은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 우리들도 사실은 짐승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키워졌단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아기 머릿속에서는 인간 고유의 두뇌활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지만,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인간이라 했을 땐 인간으로 길러진 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그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겸손해진다.
아기의 먹는 행위가 짐승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주로 젖을 먹일 때다. (나는 모유, 분유를 전부 먹인다. 산모의 세계에서는 이걸 혼합수유라고 한다)
배가 고플 때 아기가 취하는 대표적 행동 중 하나는 입을 쩍쩍 벌리는 것이다. 입을 그냥 벌리는 게 아니라 좌 우로 입을 돌리면서 크게 쩍쩍 벌린다. 젖을 찾는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어떤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게 아니라 배가 고파지면 저절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처럼 그렇게 된다. 이 모습이 꼭 둥지에서 먹이를 달라고 뀨뀨거리는 아기새 같다. 그래서 봄이가 이 모습이 되면, 우리 봄이 아기새됐네, 라고 말한다. 남편도 저절로 아기새됐어, 라고 말하며 나에게 이 귀여운 아기새를 배달해(?)준다.
아기가 속싸개에 팔다리가 싸매여 있으면 더욱 더 아기새 같다. 얼굴이랑 통짜인 몸통만 보이니까. 올빼미? 부엉이? 그런 통통한 새같다. 아기가 태어난 지 1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아기가 손을 쓰는 걸 보는 게 재밌고 또 손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속싸개를 하지 않는다. 속싸개를 하던 시절에는 젖 먹기 전에 아기에게 속싸개를 해줄지 말지를 두고, 남편과 나는 우리끼리 농담으로 “싸드릴까요?” “포장해주세요”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또 봄이는 배고플 때 팔을 정신없이 휘젓고 다리를 바둥거린다. 팔의 움직임은 굉장히 독특한 춤 같다. 이렇게까지 온 몸으로 신호를 보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엄마를 부를 것이고, 눈이 보인다면 엄마가 멀리 있어도 쳐다볼 것인데, 그런 건 하지 못 한 채로 자기가 누워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 알아봐줄 때까지 광장히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다. 그게 되게 멋있고 대견하다. 이건 의도된 행동이 아니어서 이 행동을 하는 아기조차 이 행동을 멈출 수도 마음대로 시작할 수도 없어서 충족이 될 때까지 반복할 뿐이다.
이때 먹이를 주지 않으면 울음 단계로 넘어간다. 울기 시작하면 무슨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운다. 내가 정말 밥을 안 줬던가..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울기 전에 주는 편이 낫지만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 먹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니까 그럴 만도 하다.
배고픈 신호를 보일 때 엄마 가슴 가까이 데려와 수유 자세를 취하면 젖꼭지를 향해 입을 벌리고 돌진한다. 머리를 갖다 박는 것처럼 갑자기 맹렬한 느낌으로 달려들면서 입을 앙- 한다. 먹이를 가로채는 짐승같다. 놓치지 않겠다는 본능적 의지가 돋보인다. 동시에 숨을 헐떡인다. 밥그릇을 앞에 둔 멍멍이 같기도하다. 엄청 흥분된 느낌이 물씬 든다. 이 순간이 가장 짐승 같다. 젖을 물리면 당연하게도 빨기 시작한다. 그것도 어디서 배운 행동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한다.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수유 중에, 언젠가 본 에버랜드 판다가 젖먹는 모습을 자주 떠올렸다.
봄이는 눈을 뜨고 먹기도 하고 감고 먹기도 하는데 어느쪽이든 매우 귀엽다. 모유수유는 생각보다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 매번 그만두고 싶은데도, 아기의 이 모습에 중독돼 끊기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자는 아기 만큼이나 너무 귀엽다. 그냥 귀여운 게 아니라 내 몸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사랑이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말 골수가 탈탈 털리는 느낌이라 너무 오래 하진 않을 것이다.
젖 먹던 힘까지 낸다는 말이 왜 생긴 건지 젖 먹는 아기를 보면 그냥 벼락맞은 것처럼 순식간에 이해된다. 아기는 젖을 힘들게 먹는다. 먹고 쉬고를 반복하고 숨이 차기도 하며 큰 한숨을 쉬기도 한다. 생애 초기에는 먹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먹으면서 동시에 소화가 다 된다고도 한다. 먹고사느라 힘들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분유라고 막 쉽게 먹는 것도 아니다. 조금 안정이 되기 전까지는 젖 먹는 것 못지 않게 헐떡이면서 먹는다.
태어난 지 50일이 넘은 요즘엔 좀 수월하게 먹지만, 진짜 신생아 때는 먹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모유수유를 포기하고 싶었다. 이 작고 약한 사람이 이렇게 어렵게 뭔가를 먹어야만 한다니, 인간이 여러 가지 일을 좀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가 발달한 현대사회에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머리가 크고나서는 마치 이성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생각해왔는데, 아기가 젖을 먹는 짐승같은 모습을 보면서, 아니 나 역시 젖을 먹이는 짐승같은 행위를 하면서, 역시 인간의 멋지고 아름다운 동물적인 몸과 마음이 너무 체계적으로 은폐되어온 게 아닌가 한다. 그건 특히 여성의 있는 그대로의 몸과 마음이기도 하다.
수저를 들고 스스로 밥을 먹는 게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또 새로이 배워왔을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던 짐승 시절을 깡그리 잊고 너무 오만하게 살아온 게 아닌가, 아기를 먹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