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조기교육과 좋은 엄마

by hee

봄이가 태어난 지 3-4주쯤부터 눈 뜨고 있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 많아졌다.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7주차 들어선 지금은 더욱 늘었다. 그런 만큼 낮잠 투정도 늘어난 게 맹점(?)이지만 잘 자라고 있다는 의미이니 소중하다. 아직 보이는 게 별로 없는 시기이긴 하지만, 눈 감고 있는 모습만 보이던 신생아 때보다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욕구에 반응만 하는 사이가 아니라 의미도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도약하는 것 같다. 사람 눈의 힘이 이렇게 큰 건가 새삼 느낀다. 말을 하게 되면 그 감동이 더 커지겠지, 기대된다.


아기가 뭔가 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듯한 눈초리를 보이면서부터 아기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안고 하는 이야기는 특별할 게 없고 두서도 없는데, 톤은 하이톤이다. 내용보다 목소리 톤과 높낮이에 반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원래 내 목소리 톤을 유지한 채로 아기를 대했지만 점점 더 톤이 높아져 요즘엔 달라졌다. 아기의 관심을 끌려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고 아기가 몰두한 욕구불만에서 다른 것으로 관심을 잠시라도 돌리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목욕 물 받는시간이나, 유축 모유를 데우고 있는 시간엔 필수다.


봄이는 원래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뿅 밖으로 나와서 이 집에 오게 됐어, 이 집에는 엄마, 아빠, 봄이 이렇게 셋이 살고 있지, 네가 뱃속에 있을 땐 봄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이름을 부를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기를 들고 방 투어를 다니며 방에 있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재택근무중인 아빠가 뭘 하고 있는지, 오늘 엄마가 뭘 했는지, 이제부터 봄이는 뭘 할 건지 등 또한 주요 이야기 소재다. 아침에는 아침에 대해, 밤에는 밤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아기는 때때로 내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칭얼거리기를 멈추고 잠시 차분해진다. 내 품 안에서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나를 향해 두기도 하고 주변 어딘가에 두기도한다. 요즘엔 좀 더 자주 두리번거린다. 아기가 가장 좋아하는 구경거리는.. 천장이다. 천장에 우리는 안 보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아님 몰딩과 천장 색깔의 차이가 신기한 건가.. 뭐 재밌는 게 있나, 아기 눈에는 뭐가 재미 있나 궁금하다.


처음 아기의 이런 변화를 발견하고 난 뒤 남편에게도 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라고 말했다. 아기가 이제 우리 말에 집중한다고. 처음에 남편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이 봄이를 다정하게 안고 들려준 이야기는 호주산 그래스페드 소고기에 대한 거였다.

아빠 배 위에서 꿀잠

왜 하필 그래스페드였나 하면 그날 소고기가 먹고 싶어 마트에 갔는데, 구이용 호주산 고기는 그래스페드밖에 없어서,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사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고기가 먹고 싶을 때 구체적인 그램 수와 소스까지 함께 떠올리고 언급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고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아뿔싸 그 능력을 그런 데 사용하고 있다니. 고기 조기교육이라니.


그리고 최근에는 아카시아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걸목격했다. 왜냐면 아기 동요를 듣다가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는 가사에 꽂혔기때문이다.. 이 노래에서 아카시아는 하얀 꽃이라고 나오는데 사실 한국에서 아카시아라고 하는 것은 아까시 나무라고 한다. 아카시아에는 노란 꽃이 핀다고..


남편의 이런 귀여운 행태(?)를 보고 나도 좀더 창의적인 소재 발굴을 해야겠다고반성했다. 그런데 막상 별다른 게 생각나지 않아서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올드팝을 불러주는 걸로 대신했다.


더불어 이런 생각도 했다. 아기를 낳고 나서, 나도 모르게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좋은 엄마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는데도 그랬다. 그 추상적인 엄마라는 이미지에 내가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뭔가 더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들었다.


추상적인 대상을 두려워하고 그에 불안감을 느낄 때, 마음은 지옥이 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섭고, 무섭고, 무서워진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한다면 오늘 이 시간 정확히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다 보면 불안감이 내가 정말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불안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불안의 대상이 좀더 구체적으로 보이고나면 그다음에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거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피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거기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남편을 보고, 나도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도 좀더 나다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 생각해보면 심지어 나답지 않은 순간이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나일 수밖에 없으니까.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내 남편은 고기 조기교육을 할 수 있는 아빠다. 빗소리를 좋아해 자장가 대신 빗소리를 들려주고, 비오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를 데리고 비를 구경하기도 한다. 그건 내 남편의 입체적인 삶의 모습이자 아빠가 된 그가 좋은 아빠라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체화해나가는 과정이다.


나 역시 내가 될 수 있는 좋은 엄마는 추상적인 이미지나 외부의 시선에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오늘,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실천한 것에 있다. 내가 원하는지는 모르는 어떤 것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히기를 경계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내가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으면 더 그르칠 가능성이 많다. 엄마가 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keyword
이전 09화집안의 무시무시한 독재자, 갓난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