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하고 까라면 까야죠, 녜..
갓난아기라는 생명체는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다. 스펙은 단 하나, 미칠듯한 귀여움. 귀여움 만렙으로 다 큰 어른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한다. 때맞춰 밥을 가져다주게 하고, 똥오줌을 치워주게 하며, 잠을 재워주고 씻기고 사랑까지 주도록 하는 극도의 마인드컨트롤 능력을 지녔다.
더욱 지독한 것은, 지시나 명령을 전혀 하지 않고 그렇게 다 큰 어른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내 뜻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처세술의 핵심 중 핵심인데, 이 생명체는 이미 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생명체의 의사소통 방식은 울음과 간단한 바디랭귀지뿐인데, 그 뜻을 해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가혹한 대성통곡을 시전한다. 그뿐이 아니다.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다 큰 어른들의 애정 호르몬을 조작해 이 모든 중노동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기꺼이 감당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작고 귀여운 나르시스트적 독재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물품을 구비하게 하고 그 공간을 확보하도록 조종하기도한다.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쥐고 흔든다. 갓난아기에게는 어른의 시간이 아무 소용 없다. 어른들은 약속으로 정한 시간에 사람을 만나고 움직인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며, 낮에는 활동을 밤에는 취침을 한다. 하지만 신생아는 이 시간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한다. 배고픈 것이 밥 시간이요, 졸린 것이 취침 시간이다. 밥 먹는 방법, 똥 싸는 방법, 잠자는 방법조차 이들은 알지 못 한다. 자신이 이것을 학습할 수 있도록 어른을 훈련시킬 뿐이다. 응애 하고 까라면 까야죠...
나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갓난아기의 독재에 훈련된 집사가 되어가고 있다. 벌써 50일째다. 별로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다. 적성과 강점을 생각해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집 갓난아기가 오늘 똥을 싸면 파티를 열고 싶고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아기님의 트림 헤는 밤을 보내며 아기님께서 행여 불편하실 세라 미리 반발짝 앞서 의중을 살피는, 아주 최선을 다하는 집사로 거듭나고 있다. 항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며 더 나은 집사가 되고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능동적인 신민이기를 기꺼이 자처한다. 왜냐면 내가 모시는 아기님이 너무 예쁘고 귀엽기 때문이다.
오늘은, 요 며칠 아기님의 잠투정이 심해 같이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해드렸는데 아주 꿀잠을 주무셨다. 주무시는 얼굴을 보면서 진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이 들었다. 수퍼 파워를 얻은 것도 같았다. 내가 이렇게 쓸모 있다니!
오늘 아기님은 응아를 기저귀 두 개가 가득차도록 하셨고 응아 후 몸무게가 60g 줄어드셨다. 그후 폭풍 식사, 꿀잠을 이어가고 계신다. 아기님의 안녕과 평화가 이어지길 오늘도 이 못난 집사는 바라옵니다..
앗 무시무시한 독재자 갓난아기에 관한 관찰기를 쓰던 것인데 결국 아기님에 대한 충성충성으로 마무리하게 하다니, 역시 너무나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아닌가! 인류는 이렇게 치명적인 귀여움을 무기로 종족 번식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