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좋다고?

난 딸이어서 좋았던 적이 없는데

by hee

딸을 가졌다 했을 때 나는 주변 반응에 깜짝 놀랐다. 딸이 아들보다 좋다는 반응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웠다. 왜냐면 스스로가 딸인 나는 딸로 태어나서 좋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스스로 ‘아 나는 딸이구나'라는 걸 인지하게 될 때는 대부분 기분이 좋지 않은 말을 듣거나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였다. 특히나 그런 때는 주로 내 본성과 호기심을 억제하는 어떤 제한들이 있었다. 그밖의 시간엔 나는 그저 한 인간으로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주변 어른들은 여자애는 목소리를 크게 하면 안 된다거나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거나 몸조심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여튼 뭔가 다 조심하랬고 뭔가 다 조신해야 한댔다. 깎아놓은 과일의 가운데, 가장 큰 조각을 집어먹었다가 여자애가 그러면 안 된다고 혼난 적도 있다. 또래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나중에 후회할 일이 될 거라고,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아주 사소한 데까지 나를 옥죄는 짜증나는 금기가 싫어서 일부러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이 아니라 똥이 마렵다는 표현을 쓰는 식으로 반항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여자애가 왜 그런 말을 하냐며 자로 맞았다.


또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하므로 아기 키우기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 꿈이나 취향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성적이 좋았던 나에게 엄마는 자꾸 선생님이 되라거나 공무원이 되라 했다.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면 칭찬을 받았고 여자들은 시집가면 팔자가 바뀐다는 시시한 소리나 듣고 자라야 했다. 명절날 엄마 가족이 아닌 아빠 가족부터 만나야 했고 그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명절에 쉬지 않고 일하면서 TV 보는 남자와 아이들을 먹였다.


자라는 동안에도 그랬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 엄마는 상견례 자리에서 무슨 죄인처럼 굴었고, 요즘도 시댁에 맞춰야 한다는 둥 재미 없는 소리를 가끔 한다. 큰아버지는 나에게 남편을 하늘 같이 모시라고 정말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친히 조언을 건네셨고, 가족들은 내가 결혼을 기점으로 명절 당일에 더 이상 가족 모임에 나타나지 않음에도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또 아빠는 자기가 기업 오너라면 여자를 고용하지 않을 거라는 말도 했다. (이 말에 아빠에게, 나를 키워놓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했더니 굉장히 쉽게 수긍했다. 정말 놀랍게도 가상의 여자들과 나를 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다.)


나는 어른들이 나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여자들의 삶이 너무나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은 야망을 갖고 큰 일도 하고 그러는데,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하니 직업도 행동거지도 제한된다고, 멋진 인생을 꿈꾸는 소녀에게 부끄럼도 없이 떠들어댔다. 그런데 그 부끄러운 말들의 결과는, 소녀가 소녀로 태어난 걸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럴 거면 왜낳았어,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엄마의 삶도 멋져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엄마의 삶은 피곤해보였다. 나 때문에 하지 못 하는 일도 많아보였다. 나와 동생 뿐 아니라 아빠, 시댁까지도 엄마가 다 챙겨야 했다. 오만가지를 다 챙기면서 정작 자신은 챙기지 못 하는 삶이라니. 나는 은연중에 내 삶도 엄마의 삶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강남역 사건, N번방 사건 및 각종 성범죄들은 또 어떤가. 수많은 귀한 딸들이 제대로 살고 싶다 외치는데도 외면당하는 세상 아닌가. 너희가 조신하지 못 해서 그렇다고, 옷차림이 야해서 그렇다고, 밤 늦게까지 돌아다녀서 그렇다고, 기어이 기를 꺾고 꾸짖는 세상 아닌가.


이런 일을 알지 못했을 때의 나는 그냥 어느날 갑자기 태어나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스스로가 딸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게 했다. 딸이란 행복한 미래를 손에 쥘 수 없는 존재 같았다. 기쁘지가 않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엔 딸이 환영을 받는다고?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냉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야 예전에도 첫딸은 환영 받았어. 살림 밑천이라고”. 도대체 그동안 세상 사람들은 딸들에게 무슨 짓을 해온 것일까.


나는 어른들이 내게 알려주고 보여주던 이런 여성상이 내것이 아니며, 내 삶은 그것과 전혀 달라질 거란 사실을 이해하는 데 약 30년이 걸렸다. 30년 동안 가스라이팅 당한 기분. 내가 나를 좀 더 믿을 수 있었다면, 어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나의 생각에 좀 더 확신을 가졌다면, 그럴 수 있도록 도와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더 일찍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라는 동안에는 나도 아이였기 때문에, 어른들의 말이 어딘지 이상하고 울화통이 치밀어도, 그 말이 정말 틀린 말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뭔가 틀린 것 같은데 증명은 할 수 없고, 마음 한 켠에선 그 말이 맞을까봐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 어른이 틀린 말을 하면, 그 말이 틀린 이유에 대해 공부하고, 조목조목 따져 반박했다. 비아냥거려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했다. 나는 어느 순간 유별난 애, 혼자만 잘난 애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점차 내 삶과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러다 보니 상견례에서의 엄마의 행동이나 큰아버지와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말같은 것에는, 화조차 내지 않고 내 생각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아주 간단했다. 그러지 말라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이유를 증명하거나 인정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저, 하지 말라고, 틀렸다고, 듣기 싫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거면 된다는 걸 이전에는 몰랐다. 그럴 수 있게 되고 나서야 내 삶이 더 좋아졌다.


아마 내 딸은 나보다 좋은 환경에 살 것이다. 적어도 나는 딸에게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거나, 아기 키우기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거나 조신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날 남편도 하지 않는 일을 하거나 티브이 보는 남자들을 먹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육아와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고, 우리 부부 모두 각자의 삶을 사랑하면서도 함께하는 삶을 소중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전반적인 환경이 내가 자라던 때보다 한뼘 나아져 있을 것이고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더불어 세상도 아주 조금은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딸은 내가 겪었던 부당한 일 중 어떤 것들은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를 거듭해오며 축적되어온 성차별의 관성은 여전히 남아 여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 성차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또 세상은 부당함을 외치는 여자들에게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부당하더라도, 안타깝게도, 내가 이 사회를 뒤집어 엎을 수는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모두가 나를 깎아내리려 할 때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어려울 때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사실은 그게 자라는 내내 내게 필요했던 도움이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나의 아기에게 나는 그런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아이를 위해 더 많은 순간 용기를 내어보고 싶다. 아들이어도 그랬겠지만, 딸이니까 더욱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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