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고독하고 치열하게, 싼다

아기라고 편한 건 아니라고

by hee

아기들은 먹고 자고 싸고, 세상 걱정 없이 편히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50일 정도 함께 살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매일매일이 치열한 것이 아기의 삶이다. 특히 아기가 똥을 싸려고 용을 쓸 때, 그 치열함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 정체는 바로 생존이다. 아기들은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매일 매일 치열하게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기본 욕구만 존재하는 투쟁은 그렇게 맹렬하다.


우리 아기는 까탈스럽지 않고 무난무난한 귀요미다. 잠도 잘 자는 편이고 피부도 예민하지 않다. 잠자리를 가리거나 젖병을 가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친구가 똥을 못 싸면 가정의 평화가 깨진다. 애기 똥 쌌냐는 물음이 인사가 되고 방귀소리에 한껏 고양된다.


봄이는 똥을 싸고 싶은데 안 나올 땐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온 몸에 힘을 준다. 주먹을 쥐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용을 쓴다. 굽어 있는 다리를 쫙쫙 펴고 온몸을 비튼다. 낮동안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대부분을 온몸에 힘을 주거나 방귀 때문에 운다. 여기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모빌을 좋아하지만 배가 아파 모빌에 집중하기도 어려워진다. 너무 열심히 힘을 줘서 복압이 올라가기 때문에 토를 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아기들 중에 괄약근을 잘 못 쓰는 아기들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적게 먹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 아기 변비약을 처방해줬다. 아기에게는 4cc만 먹이면 된다고 했다. 이 어리고 작은 아기에게 벌써 약을 먹여야 한다니 너무 안쓰럽지만 동시에 4cc라는 작은 용량에 또 너무 귀여워진다. 고작 그 정도의 액체만 있으면 시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고야..? 결국 약은 먹이지 않았다. 왜냐면 처방받고 오자마자 밥 때가 되어 수유를 했는데, 수유 중에 빵빵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한 이틀 변을 보지 않다가 똥을 싸게 되면, 똥이 봇물 터지듯이 막 나온다. 대여섯번을 좍좍 싸기도 한다. 변 나오는 모양새는 물감이 짜지는 모양새같다. 그 조그만 뱃속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변이 들어찼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렇게 많이 밀어내고 나면 몸무게가 줄어든다. 아기 얼굴도 분위기도 확 달라진다. 싸자마자 더 많은 우유를 원한다. 한결 시원하고 편안해보이며, 모빌도 즐겁게 오랫동안 쳐다본다.


똥을 싸는 일은 아기가 스스로 해야할 일이다. 온 몸이 아니라 괄약근에 힘을 줘야 한다는 것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똥을 대신 싸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우유를 잘 먹이고 유산균도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고 배 마사지를 해주는 것, 방귀와 똥을 싸면 칭찬해주는 것뿐이다. 아기는 나의 자녀이지만 타인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 또 되새기게 된다.


나는 봄이가 신생아 때 똥싸는 모습을 보고 운 적도 있다. 2쩜 몇 킬로밖에 안 되는 쪼끄만 사람이 토를 할 것 같기도 한 얼굴로 허리를 뒤로 꺾고 온몸을 배배 꼬면서 벌개진 얼굴을 했다. 기이한 몸짓이었다. 아기는 느릿느릿 천천히 뒤틀린채로 움직였다. 나는 아기가 잘못된줄 알고 놀랐는데 알고보니 똥을 누는 거였다. 눈물이 났다. 배변이란 게 꽃이 피는 것처럼 또 해가 뜨는 것처럼 너무 경이로운 자연현상처럼 느껴졌다. 좀 멋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역시 없었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는 둥둥 떠 있으면서 탯줄을 통해 저절로 산소와 영양분을 섭취하고 변을 보지 않으며 폐호흡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는 딱딱한 땅에 등이 닿아야 하고, 힘을 내어 먹고 싸야 하며 낯선 폐호흡을 해야 한다. 아기에겐 전부 낯설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적응할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삶을 선택한 적이 없지만, 태어난 이상 저절로 최선을 다하게 되고 만다. 나는 동물주제에 본분을 잊고 너무 젠 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좀 더 자주 생명 본연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일들도 모두 처음이 있었고, 처음은 항상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기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게 익숙해질 때까지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세상 걱정이야 없겠지만 아기라고 편한 건 아닌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걸 알기 위해 수많은 좌절을 겪어야 한다. 하지 않는다는 옵션도 없다. 살아야 한다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전제이기에 살기 위해 오늘도 치열한 것이 아기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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