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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섭 Sep 07. 2015

그들의 이번 생은 단 한순간도

내가 무척 사랑했던 해바라기 밭은 삐쩍 말라버렸고 매일 새벽 문을 열어 달라며 아우성치던 아기 닭들은 이제 제법 풍채가 좋다. 노동의 즐거움을 일깨워줬던 당근 밭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개구쟁이 세 자매의 익살은 여전하다. 옷 입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던 막내는 십이월에도 여전히 발가벗고 다닌다.

장작을 얻기 위해 나무 하는 것을 도우며 한가로운 며칠을 보내다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 셀리나의 고향 럼비로 떠났다. 오아시스 팜에서 북쪽을 향해 쉬엄쉬엄 반나절을 달려 도착한 럼비라는 도시에서 한 시간 정도 산골도 들어가는, 위성에 안 잡히는 산꼭대기에 셀리나가 나고 자란 오두막집이 있었다.

     

무릎까지 쌓인 눈에 그 종을 종잡을 수 없는 야생동물들의 발자국만이 이리저리 새겨져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온종일 눈썰매를 탔다. 어디선가 소 만한 돼지를 잡아와서는 소시지를 해먹었고, 아무런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수상스러운 술들을 마셨다. 

 “크리스마스 준비하러 온 거 아니었나?”

 “전기 들어오는 거 확인했잖아.”

     

묵직한 바람 탓에 쉽사리 열리지 않는 현관문을 힘껏 밀어 열고 마당으로 나가자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초롱초롱 거리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다.”

말고 좀 더 시적인 표현 없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헤아릴 수 없었던 별들을 헤아리며 보낸 겨울밤이 있었다.        

“캐나다의 여름은 아름답다. 그러나 매우 짧다. 일 년에 두세 달이 화창할 뿐, 나머지 날들은 춥고 우중충하다. 여름을 아쉽게 보내면 일 년이 전부 엉망이다. 지금 즐겨야 한다.”라고 말한 그들의 겨울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 그런데 그들은 ‘우중충’의 뜻을 알기는 하는 걸까? 

그들의 이번 생은 단 한순간도 우중충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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