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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번 생은 단 한순간도

by 김희섭

내가 무척 사랑했던 해바라기 밭은 삐쩍 말라버렸고 매일 새벽 문을 열어 달라며 아우성치던 아기 닭들은 이제 제법 풍채가 좋다. 노동의 즐거움을 일깨워줬던 당근 밭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개구쟁이 세 자매의 익살은 여전하다. 옷 입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던 막내는 십이월에도 여전히 발가벗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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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을 얻기 위해 나무 하는 것을 도우며 한가로운 며칠을 보내다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 셀리나의 고향 럼비로 떠났다. 오아시스 팜에서 북쪽을 향해 쉬엄쉬엄 반나절을 달려 도착한 럼비라는 도시에서 한 시간 정도 산골도 들어가는, 위성에 안 잡히는 산꼭대기에 셀리나가 나고 자란 오두막집이 있었다.


무릎까지 쌓인 눈에 그 종을 종잡을 수 없는 야생동물들의 발자국만이 이리저리 새겨져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온종일 눈썰매를 탔다. 어디선가 소 만한 돼지를 잡아와서는 소시지를 해먹었고, 아무런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수상스러운 술들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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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준비하러 온 거 아니었나?”

“전기 들어오는 거 확인했잖아.”


묵직한 바람 탓에 쉽사리 열리지 않는 현관문을 힘껏 밀어 열고 마당으로 나가자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초롱초롱 거리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다.”

말고 좀 더 시적인 표현 없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헤아릴 수 없었던 별들을 헤아리며 보낸 겨울밤이 있었다.

“캐나다의 여름은 아름답다. 그러나 매우 짧다. 일 년에 두세 달이 화창할 뿐, 나머지 날들은 춥고 우중충하다. 여름을 아쉽게 보내면 일 년이 전부 엉망이다. 지금 즐겨야 한다.”라고 말한 그들의 겨울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 그런데 그들은 ‘우중충’의 뜻을 알기는 하는 걸까?

그들의 이번 생은 단 한순간도 우중충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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