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섭섭 Sep 07. 2015

우주 공간을 유영하기라도 하듯

"하늘이 높다." 할 때 그 하늘이 뭔지 이곳에서 깨닫는다.

켈로나의 여름엔 구름, 구름 덩이들 위로, 우주만큼의 하늘이 더 있다.

     

일 년에 300일 이상이 ‘맑음’이라는 곳, 하늘이 유별나게 아름다운 이 마을에서 한 초 한 초 꼭꼭 씹어 삼키는 이 시간이 쉽사리 변기통으로 빨려 들어갈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물론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직감-2024년 즈음의 아주 화창한 여름날 오늘을 회상하며, ‘아! 그 시절은 정말 엄청났지!’ 하고 이마를 딱 치는 나를 본다- 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수중에 책이 네 권밖에 없다.

주변에 도서관도, 책을 바꿔 읽을 사람도 찾지 못했기에 지금 읽고 있는 책을 후딱 읽어 치워버리면 당장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지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요즘은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씹어가며 가능한 만큼 최대한 천천히, 천천히 읽는 버릇이 생겼다.

‘아껴 읽는다.’고 해야 할까.

마음에 드는 문장을 휴지에 꾹꾹 눌러(가능한 만큼 최대한 천천히, 천천히) 적어 놓고 보면, 그 문장은 이제 전과는 다른 문장이 되어 있다. 내가 읽은 문장과 그가 적은 문장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인생에 큰 도움 안 되는 소설책 따위야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후딱 읽어 치우고 눈앞에 쌓인 해야 할 일을 빨리빨리 처리해야 했던 시절엔 깨닫지 못했던 일이다. 책도 음식을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꼭꼭 씹어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주해야 했던 시절의 나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켈로나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흐른다.

시간 또한 밥과 마찬가지로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꼭꼭 씹어 넘기고 다시 돌아보면, 내가 살고 있는 하루의 의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면서.

내가 삼키는 것이 밥인지 책인지 시간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지 않은 속도감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켈로나의 하루는 마치 우주 공간을 유영하기라도 하듯 둥실둥실 넘실넘실 흐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의 이번 생은 단 한순간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