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C(choice) between B(birth) and D(death)"
생과 죽음 사이의 삶에는 실제로 무수한 선택의 순간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크거나 작은 선택들은 꽤 중요한 것처럼 보여서, 한두 번의 그릇된 선택은 그릇된 인생을 만들어 놓을 것만 같았다.
삶을 잠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여행도 사실 삶의 한 장면에 불과하기에,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길목 길목에 놓여 있다.
익숙한 곳을 박차고 낯선 곳으로 떠날지 말지를 결정하고 어느 대륙, 어느 나라, 어느 도시로 떠날지를 골라야 하며 길목을 돌면 무엇을 타고 갈지, 어디에 묵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난생 처음 방문하는 고장에 도착하여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하는 일은 오히려 행복한 고민이라 해도 좋겠으나, 선택의 장애물인 수백 가지 경우의 수와 수천 가지 변수가 도처에 존재하기에 그 행복한 고민마저 종종 스트레스가 되곤 한다.
요컨대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는 여행에는 인생을 매우 밀도 있게 압축해놓은 짧은 시간 내에 인생에서 해야 하는 만큼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듯, 실로 많은 선택 거리가 존재한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인들은 캘커타에 골프장을 세웠다. 그런데 경기를 할 때면 원숭이들이 골프장에 들어와 경기를 방해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골프장 주위에 높은 벽을 세워 원숭이들의 침입을 막았다. 하지만 원숭이들은 벽을 타고 넘어 들어와 경기를 계속 방해하였다. 간신히 홀컵 가까이 공을 보냈는데, 원숭이가 재빨리 집어가 물속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고, 엉뚱한 곳으로 골프공이 날아갔는데 원숭이들이 그 공을 주워 홀컵에 떨어뜨리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자, 영국인들은 원숭이를 막는 것을 포기했고,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하라.’라는 규칙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여행은 내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현명함을 주지도 않았고,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하나를 과감히 선택해 드는 담력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행은 내게, 선택이란 원숭이가 옮겨 놓은 골프공과 같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고 원숭이의 장난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선택을 한 후에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선택을 하고 돌아선 바로 그 골목길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여행은 내게서 선택의 신중함을 앗아 갔으나 후회하지 않는 습관 또한 가져다주었다. 수많은 길목에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없었고, 고민과 후회에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로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책과 연필과 인터넷과 노트 대신에 지도와 다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여행은 가르쳐주었다.
한참을 걸은 후 돌아보니, 무엇을 선택했는가는 정말로 중요하지조차 않았다.
그러면 뭐 어때.
꼭 진실하지 않아도
매일 착하지 않아도
항상 성실하지 않아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살면 뭐 어때.
모두 진실하게
모두 성실하게
모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으니,
그냥 지나가는 바람처럼
쓸쓸히 잊히는 추억처럼
지나간 옛사랑처럼
나 하나쯤
그냥 그렇게
농담처럼 살면
뭐 어때.
박광수, [광수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