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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 Sep 07. 2015

내가 호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과테말라의 작은 호수 마을, 산 페드로는 나의 기쁨이다.”

“학교 교정의 도랑하(Doranja) 열매는 나의 기쁨이다.”

“집 앞 슈퍼의 할머니처럼 생긴 아이는 나의 기쁨이다.”


“Te gusta?"

"Me gusta."

“너 그거 좋아?”

“나 그거  좋아.”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그것은 너를 기쁘게 하니?”,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해.” 가 된다.


내가 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저 꽃이 나를 기쁘게 한다는 뜻이고, 내가 저 호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저 호수가 나를 기쁘게 하다는 말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은 네가 나를 기쁘게 한다는 소리다.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 극찬한 곳. 체 게바라가 혁명의 꿈을 접고 안착하려 했던 치명적인 호수, 아띠뜰란.

아띠뜰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는 과테말라의 작은 마을 산페드로에 몇 달간 머물며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좋아하다”를 뜻하는 동사 “Gustar”는 왜 다른 동사들과 변화가 다른가. 내가 뛰는 것과 네가 뛰는 것, 그가 뛰는 것. 주어에 따라 동사가 모두 다르게 변하는 스페인어인데, 왜 내가 호수를 좋아해도 ‘Me gusta el lago’, 네가 좋아해도 ‘Te gusta el lago’, 그가 좋아해도 ‘Le gusta el lago’로 동사에 변화가 없는가.      

이유는 문장의 주체인 주어가 나, 너, 그가 아니고 ‘호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저 호수를 좋아하든, 네가 저 호수를 좋아하는, 그가 저 호수를 좋아하든, 기쁨을 주는 주체는 ‘저 호수’로 변화가 없으므로 동사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페인어로 말하고 스페인어로 생각하는 이곳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사랑을 받는 수동적 객체가 아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생동감 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며,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것들마저 살아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려 노력하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이곳의 바나나 빵은 정말로 맛있다. 그래서 "Me gusta pan de banano."라고 말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일인 동시에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익히는 일이다. 그리하여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에 불과하지 않으며,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매개체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이력서의 강력한 스펙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그것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넓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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