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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 Sep 07. 2015

우리만 아는 어느 광야(光夜)

아띠뜰란 호숫가 작은 마을에

빛과 어둠의 조화가 평화로운 밤하늘이 있었다


산페드로의 새벽 세시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옥탑방 앞을 서성이고 있었고

으스스한 기분이 별로였는데 

설상가상 정전이 되었다


호수를 둘러싸는 세 마을 

산페드로, 산마르코스, 파나하첼의 모든 전기가 나갔다

정말로 한꺼번에 정전이 되어서, 

마치 딱-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순간에

빛과 어둠의 평화는 깨졌던 것이다     

아띠들란의 하늘은 셀 수 없이 많은 별에 점령되었다

작은 하늘이 별로 가득 찼다 

말 그대로 가득 찼다

어떤 별과 별 사이에는 간혹 하늘이 있기도 했는데 

그 하늘 조각들은 너무 엉뚱해서

마치 내 고향 하늘의 별들처럼 뻘쭘했다     


후에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 가장 많은 별을 보았느냐 물을 때면

나는 산페드로 마을의 세시 몇 분을 떠올린다


정전이 되었고

하늘에는 별이 오억 개도 넘게 있었고

별과 별 사이는 별의 빛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어둠을 목격할 수 없는 밤이었다

새끼손가락 끝으로도 별과 별의 틈을 쑤실 수 없는 밤이었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밤이었다     


오 분 정도가 흘렀을까 어쩌면 한 시간은 흘렀을까

전기가 들어왔고

그땐 딱-하는 소리도 없이 

고요가, 문자 그대로의 고요가 찾아왔는데

      

그 침묵은

아띠뜰란 호수와

어떤 개와 고양이와 

부엉이와 귀뚜라미와 

모기와 휴화산과 

바람과 꽃과 나무와 

빛을 잃고 쓸쓸해 보였던 반딧불이 몇과

한 여행자 사이에 

신비로운 비밀이 생겼음을 뜻했다      


하늘엔 오억 개가 넘는 별들이 

소리도 없이 빛을 뿜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했던 밤이 있었다


산 페드로 마을에 

우리만 아는 어느 광야(光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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