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수업 시간에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남아있는 인도에서, 사람들은 태어날 때 이미 각자의 계급에 속한다.”라는 말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영-서 사전을 펼쳐 ‘belong’을 찾아보니 ‘deber estar’라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서-영 사전을 펼쳐 번역하면 ‘should be’가 된다.
‘belong'=’deber estar'='should be'
‘belong’하다는 것은 ‘should be’하다는 것.
그러니까, ‘어딘가에 속한다.’의 영-서 사전적 의미는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를 부러워하던 적이 있었다. 눈을 감고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며 지구 위 어느 이름 없는 작은 마을을 덜컹거리는 낡은 버스를 타고 달리는 상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상상만으로 미소가 지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끝을 기약하지 않은 여행을 떠나고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나 보다. 그 시간 동안 나의 내면에서 조용히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게 없다.
북미와 중미를 지나, 이제 저 아래 남미 대륙으로 내려간다. 남반구로 가보는 일이 처음이라 무척 설렌다. 반대의 계절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 나에게 2012년 여름이 없다는 게 어쩐지 신기하다.
내가 속해야 할 곳,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 그곳은 어딜까. 지금 속하여 있는 이곳은 또 어딜까. 이곳은 진정 내가 있어야 할 계절이 맞는가.
아무렴 어떠랴.
새가 노래를 부르고 꽃이 향기를 만들고 반딧불이가 어둠을 밝히듯, 그렇게 각자가 각자에게 주어진 각자의 생을 충실히 살아낸다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자기 앞의 생에 충실한 모두가 마침내 저 높은 계절에서 함께 만나게 되리라.
우리가 지금 속해있는 이곳이 어디든-
고향을 그리워 말라.
어디서 왔는가 묻지 말며,
어디로 간들 두려워 말라.
항해가 곧 우리의 고향이니,
끝없이 가는 이 여행길을, 삶을 사랑하라.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되,
바람은 자유롭지 않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