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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섭 Sep 07. 2015

누구나 일생에 한번

학교나 집보다는 길 위가 안락하게 느껴졌고,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주변인과의 대화보다는 이미 죽어버렸거나 나와 아무런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길 위의 인간인 조르바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은 몽땅 쌓아놓고 불이나 질러버리쇼. 그러면 누가 알겠소? 당신이 바보를 면하게 될지."라고 말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그것은 공간을 뜻하기도, 시간을 뜻하기도, 생각의 범주를 뜻하기도 한다-에 대한 굶주림을 조금이나마 채워 준다는 점에서 여행과 독서는 얼마만큼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할 때, 가여운 사람은 더 큰 포만감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책장 앞에 있을 때면 언제나 길 위를 그리워했고, 길 위에 있을 때면 이따금씩 활자에 목말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무엇이든 간에, 그건 '책'과 '길'에 의해 만들어진 무엇이며,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 무엇이 들어있든 그 모든 것은 길에서, 혹은 책에서 주운 무엇이다. 그리고 내가 훗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든 어딘가엔 약간의 쓸모가 있는 인간이 되든 그것은 '책'과 '길'이 그렇게 만든 것이며, 적어도 '독서'와 '여행', 이 두 고귀한 행위가 나의 일회적인 삶을 조금은 더 풍요롭게 만들어 놓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베르테르, 홀든, 와타나베, 스트릭랜드, 조르바, 블라디미르 또는 에스트라공, 또 포조나 럭키, 제제, 때로는 라즈니쉬, 니체, 고흐, 릴케, 가끔은 체 게바라, 또 구보 씨, K, L.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익명의 '나'들, '그'들….

 이제까지의 읽기 활동을 통해 나는 적지 않은 페르소나를 갖게 되었고 그것들은 자체로는 너무나도 어리석고 나약한 내가 어떠한 상황들이나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날들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내는 데 유용하게 쓰여 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일생에 한번, 낡은 페르소나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야 할 시기가 찾아오리라. 생각해보면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는 내 모습 하나로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그게 흔히 말하는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움이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자가 ‘자유인’이 아닐까.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처럼 내가 가진 책들을 몽땅 태운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는 대신에, 60ℓ들이의 배낭 깊숙한 곳에 조심스럽게 넣어 둔다. 길 위에서 그 모두는 단단히 굳고 하나로 합쳐져 '나'가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자유인이 아닌, 피와 땀이 버무려진 노력을 통해 마침내 얻어낸 값비싼 자유, 그것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자유인이고 싶다.


"A ship is safe in a harbor,

but it'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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