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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섭 Sep 07. 2015

이름 모를 야생화 잎에 쌈 싸 먹으며

다섯 시에 기상하여 스트레칭을 한번 쭉- 하고, 

터벅터벅 새벽이슬을 밟으며 닭장 문을 열어주러 가는 일이 좋다.

     

“꿱꿱” 거리면서 빨리 문 열라고 아우성치는 닭들에게, 

“알았어, 알았어, 간다, 가.”하고 내 언어로 대답하는 일이 좋다. 

화생방실의 훈련병들 마냥 뛰쳐나오는 닭들을 바라보는 일이 좋다.

     

나무에서 블루베리, 라즈베리, 크랜베리 등 온갖 이국적인 과실을 따다가 이름 모를 야생화 잎에 쌈 싸 먹으며 공복감을 해결하는 일이 좋다.

                         

원산지 모를 원두를 갈아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끓는 물과 지방 함량이 높은 우유와 메이플 시럽을 넣어 '캐네디아노'를 만들어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좋다.

밭에서 일을 하는 게 좋다. 

내가 지금 따는 토마토와 방금 땅에서 뽑아 올린 당근이 오늘 우리 가족의 점심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좋다.

내가 잡초를 제거한 밭에서 열린 건강한 옥수수가, 내가 떠난 뒤 이 가족의 가을 식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좋다.

     

해가 나오면 땀이 나서 좋고, 

해가 구름 뒤에 숨으면 덥지 않아서 좋다.

     

일하다가 허리를 펴고 땀을 닦으며 쉬는 일이 좋다.

빨갛게 익어버린 팔과 갈라진 손을 내려다보며, 나를 걱정하고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게 좋다.

     

해바라기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일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 말해 온 해바라기의 뒷모습을 이제야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좋다. 


난 대체 여태껏 무얼 보면서 살았나 하며, 

내 뒤통수에 대하여 반성하는 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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