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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러리 까르찌나 Jun 26. 2022

쿠가츠 <겨울 지나고>와 밤필로프 < 마지막 부탁>

러시아 그림과 러시아 문학이 만났을 때 7편

미하일 쿠가츠 <겨울 지나고>와 알렉산드르 밤필로프 <마지막 부탁>


 :생을 마감해야 하는 인간에게 있어 간절함이란


미하일 쿠가츠(1939~), 겨울 지나고, 2016년, 70x120cm, 카드보드에 유채, 개인 소장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살고 싶은 욕망,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삶에 대한 간절함일까?


생을 마치고 가야 할 그곳은 누구나 다다라야 하는 곳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곳만을 바라보며 순응하듯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내 몸속 생명의 힘이 사그라들면 들수록 삶에 대한 간절함은 비례하여 커지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한 간절함을 사실적으로 진솔하게 묘사한 소설과 그림이 있다.

소설은 1960년에 써졌고, 그림은 2016년에 그려졌다. 둘은 마치 같은 날 같이 쓰고 그리기로 약속이나 한 듯 서로 통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느끼는 생에 대한 간절함은 우리가 인간이면 모두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바로 그 주제라는 반증인 거처럼 말이다.


알렉산드르 밤필로프가 쓴 단편 <마지막 부탁>에는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부여잡고 사는 주인공이 건강할 때는 간과했던 사소하고 평범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하나씩 느껴 얻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결국 죽음의 문을 열고 마는 주인공이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가, 가장 간절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선물 같은 답을 주고 떠난다.


또, 미하일 쿠가츠의 <겨울 지나고>는 지난겨울 혹독하게 생과 사의 고통을 넘나들며 몸부림치다 살아난 노인의 모습이 화사하게 그려져 있다.  다시 맞이하는 봄 햇살의 찬란함 앞에 감사 기도를 올리는 노인의 모습이 너무도 장엄하다. 물론 그에게도 남은 생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뚫고 다시 맞이한 봄 햇살이 마치 축복 가루처럼 뿌려져 있는 그림이다.




<마지막 부탁>의 주인공 니콜라이 스미르노프는 초가을 쓰러져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이후로 삶에 대한 극도의 무력감과 절망감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 치면 칠수록 살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커져 이 차가운 겨울을 잘 보내고 다가올 봄을 꼭 다시 한번 맞이하고 싶다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 그의 심정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탁상에 놓여 있을 라일락꽃을 다시 보고 싶었고, 봄새의 노랫소리도 다시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의 창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자작나무 숲의 푸른 초원을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창밖의 자작나무들은 가을날의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나운 12월의 눈보라가 기승을 부렸다. 분별을 잃은 눈보라는 누군가의 버림받은 넋이라도 달래듯이 울부짖었다. 따뜻한 봄날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졌다.” – 러시아 현대 단편선 , 이반 투르게네프 외 지음/신석호 옮김 , 혜원 P152-153


이렇듯 우리의 간절함을 장식하는 세상사 소재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다가올 계절이며, 수놓을 꽃밭이며, 반겨줄 태양 정도면 흡족한 거다. 죽음이란 이별을 앞에 두고서야 우리 인간은 이런 사소하지만 소중한 사실을 깨달으며 가장 인간다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소소함에 간절함을 더하던 니콜라이 스미르노프에게 폭풍 같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겨울을 이겨낸 것이다. 눈보라 치던 자작나무 숲은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지난겨울 눈더미 쌓여 있던 바위에도 초록 이끼가 무성 해지는 봄이 온 거다. 하지만 니콜라이는 봄의 아름다움을 올 곳게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 아름다움을 보자 봄을 기다리던 간절함이 더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옮겨져  몸살을 앓게 만든다.


그러면서 그는 고통스러워한다.

“이제 봄이 가면… 저 꽃도 말라 버릴 테지. 그러나 삶은 계속될 테고. 삶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거지. 꽃동산에서도 좋고, 눈 덮인 길에서도 좋고. 심지어 안락의자에 이렇게 앉아 일어날 수는 없지만 창가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좋고….”P 155

그렇게 니콜라이 스미르노프는 삶의 간절함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림 < 겨울 지나고>에서 노인은 지난겨울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다 지친 육신을 찬란한 봄 햇살 아래 드러내고 화사한 빛의 기운을 한껏 들이키고 있다. 평생을 몰랐던 다시 찾아온 봄햇살의 고마움에 간절함이 마구 샘솟는 듯하다. 등 돌리고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에서 겸허함마저 배어 나온다.

러시아 무드 풍경화의 대가답게 온 세상을 화사하게 수놓는 미하일 쿠가츠의 빛 표현은 너무도 대단하다. 축복 같다. 가벼운 붓터치로 툭툭 건드린 듯한 그의 색감은 마치 교향곡의 여러 음표들처럼 리듬감 있게 울려 퍼져 장엄한 하모니를 이뤄낸다. 화려한 봄 햇살 속에 아직은 겨울눈이 남아있지만 곧 눈 쌓인 저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초록으로 싱그러울 것이고, 그림 속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집 밖으로 걸어 나와 늘 앉던 그곳에 자리 잡고 느리게 다시 찾아온 봄을 천천히 느낄 것이다. 그러면서 영원히 살지는 못하지만 덤으로 주어진 듯한 이 삶의 시간을 좀 더 간절하게, 그리고 차분히 받아들일 것이다.




한편, 곧 생이 끝날 것에 대한 절망으로 지쳐가던 <마지막 부탁>의 니콜라이 스미르노프는 저녁마다 자신의 집 앞 늙은 자작나무 아래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을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들의 막 시작하는 사랑의 에너지를 지켜보며 삶을 생각하는 거다. 벌써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며 삶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만나던 연인들이 싸운 것 인지 서로 다른 시간에 자작나무 숲에 도착해 만나지 못하고 한참을 그리워만 하다 돌아서는 그들의 간절함에 또 다른 안타까움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니콜라이에게도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호흡이 곤란하고 머리가 심하게 아프지만 니콜라이는 아들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저기 자작나무 숲에 한 젊은이가 서 있는 것이 보이지? 큰 자작나무 곁에 말이다. 저기로 가서 저 청년에게 30분만 더 기다리고 있으라고 전해 주렴. 꼭 기다리라고…”

아들이 말을 전하고 오는 사이 니콜라이 스미르노프는 머리를 약간 수그린 채 평온한 얼굴로 자작나무를 쳐다보던 그 안락의자에 앉아 세상을 떠난다.

젊어서 알 수 없는 생의 간절함을 , 소중함을 제대로 전하고 삶을 달리 한 것이다.

늙어서야 알 수 있는 순간순간의 간절함과 소중함 말이다.





작가 소개:


알렉산드르 밤필로프(1937~1972);

이르쿠츠크 출신 작가. 1960년 이르쿠츠크 국립대학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 이르쿠츠크 대학 신문에 ‘아싸닌’이라는 필명으로 첫 소설 <환경의 군중>을 연재한다. 그의 사실적이면서도 인간의 내면세계를 잘 표현한 이 작품으로 밤삘로프는 신문 <이르쿠츠크 대학>과 <레닌의 교훈>, <소비에트 젊은이>에서 계속 작품들을 연재하였다. <마지막 부탁>도 곧 생을 달리할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 후 밤필로프는 1959년-1964년까지 신문사 <소비에트 젊은이>에서 문학분과 부국장으로 일했다. 1965-1967년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위해 모스크바 고등 문학 과정에 입학했으며, 그 결과 소비에트 작가 동맹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1972년 8월 17일 그의 35번째 생일 전날 바이칼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밤필로프는 6편의 희곡을 남겼다. <언덕 위의 창문이 나 있는 집>(1963), <6월의 이별>(1964), <큰형>(1965), <물오리 사냥>(1967), <시골 일화>(1968), <지난여름 출림스크에서> (1971>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주로 분량은 많지 않지만, 구성은 뛰어난 작품들로 손꼽힌다. 그의 드라마틱한 연극은 전 세계 연극 무대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연극에서도 주요 공연물로 자주 공연되고 있다.

-러시아 현대 단편선 혜원 P 159



미하일 쿠가츠 (1939~)

- 1939년 러시아 모스크바 출생

- 1962년 모스크바 수리코프 미술대학 졸업

- 1965년 소련 화가 연맹 회원

- 1987년 '1905년 기념' 모스크바 예술학교 교장

- 1988년 '모스크보레치예' 예술창작협회 상임회장

- 2000년 러시아 국민 예술가


- 러시아 리얼리즘 풍경화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작가

- 아버지는 쿠가츠 사단의 유리 쿠가츠, 어머니는 서정 풍경화 작가 올가 스베틀리치나야로 러시아 최고 화가 집안 출신


-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국립 러시아 박물관 등 주요 박물관에 그의 풍속화 다수 소장 중

 

풍경에 작가의 '감정'을 담아 그려낸 서정적 풍경화를 '무드 풍경화'라고 칭하고, 미하일 쿠가츠는 바로 이런 러시아 무드 풍경화의 전통을 잇고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 화단(畵壇)에서는 '쿠가츠적 표현'이라는 말이 '서정적 무드 풍경화'를 대변하는 하나의 대명사일 정도로 그의 예술성은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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