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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러리 까르찌나 Jun 16. 2022

고골의<구시대의 지주들> 과 마콥스키 <잼만들기>

그림과 문학이 만났을때 6편


니콜라이 고골의 <구시대의 지주들> 과 

블라디미르 마콥스키 <잼만들기>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란 


블라디미르 마콥스키  잼만들기  1876 년  캔버스에 유채    19 X28    사마라 미술관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루벤스 그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이야기가 있다. 노부부는 지상에 내려온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을 극진히 모신 대가로 신에게서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선물을 받는다. 그때 이 부부는 한날 한시에 세상을 하직할 기회를 달라하고 둘은 프리기아 언덕의 나무가 되어 영원히 마주보고 서있게 된다. 
이 둘은 한평생을 함께 살고 죽어서도 늘 함께 하는 축복을 선물로 받는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여 마치 공기처럼 늘 함께 하다 세상을 함께 하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라 한다. 



고골의 <구시대의 지주들>은 바로 러시아의 필레몬과 바우키스 이야기 같은 단편 소설이다. 물론 신화가 해피엔딩이라면 고골의 작품은 비극에 가깝다. 신화에선 함께 영원했다면 구시대의 지주들에선 홀로 남겨진 자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두 부부는 평생을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했다는 거다. 


<구시대의 지주들>에서 고골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또프스또구프와 영지의 농부들이 또프스또구프 할멈이라고 부르는 그의 아내 뿔헤리야 이바노브나가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내가 풍경화가여서 필레몬과 바우키스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면 나는 이 노부부보다 더 적당한 모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쓰고 이들 부부를 필레몬과 바우키스라 묘사한다. 그렇게 신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하다는 소설 속 부부에 대한 개인적 감흥을 이렇게 서술하며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사려 깊게 손님을 마중하러 나와 있는 소박한 영지의 나이 든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도 선량하고, 너무나도 친절하며 정직한 나머지 나는 적어도 잠깐일지라도 모든 추잡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몸의 감각으로 그 형이하학적이며 목가적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구시대의 지주들>에 등장하는 노부부는  러시아 시골 한 곳에 자리잡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림처럼 그렇게 생을 살아가고 있고 노부부의 평온한 삶에 소설 속 화자인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달리한 후에도 아주 오랬동안 부부의 아름다운 삶을 떠올리고 그리워한다. 


잼만드는 할머니

블라디미르 마콥스키의 <잼만들기>에 나오는 부부들 또한 평온하고 둘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인다. 과일을 농축시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노련해 보인다. 아주 오래전부터 해 왔던 일을 무심히 툭툭 해내는 느낌이다. 그녀 옆에서 뭔가를 애쓰고 있는 할아버지는 그닥 익숙해 보이진 않는다. 왠지 여러 여러 길을 돌아 돌아 이젠 아내 옆에서 생을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림 속 남자는 젊어서 그리 친절한 남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사실 남편이 향하는 몸짓에서는 과일을 고르는 일보단 아내를 도와주고자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아내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서 생을 이어갔을 것이고, 그런 아내의 소중함과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남자는 나이든 지금에서야 체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함께다. 앞으로도 죽 그럴거 같다. 

부부 -박용섭
암죽 한 종지 있는/ 밥상에/ 먹을 것이/ 없어도
젓가락은/ 숟가락 옆에/ 있어야 한다 

라는 박용섭의 시처럼 부부는 늘 저 자리서 삶을 엮어 갈 거다. 그러다 하늘이 이들을 부르는 날이 오면 조용히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그들이 가장 바라는 바는 함께 건강히 살다 비슷한 시기에, 아니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행운중의 행운이라 기도 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시대의 지주들>의 주인공들은 한날 한시에 떠나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또프스또구프 할머니가 별안간 세상을 하직한 후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할아버지가 생을 달리할 때 까지 5년동안 절망적인 시간을 보낸다. 

아내 또한 세상을 하직하기전 홀로 남겨질 남편을 걱정하며 이런 말을 한다.

"울지 말아요 자신의 슬픔으로 죄를 짓고 신을 노엽게 하지 마세요. 난 죽는것이 슬프지 않아요. 내가 슬픈 이유는 단 하나랍니다(무거운 한숨이 그녀의 말을 잠시 끊어 놓았다.) 내가 죽으면 당신을 누구한테 부탁할지, 누가 당신을 돌봐 줄지 그것 하나만이 슬플 뿐이에요. 당신은 어린아이가 같아서 말이에요. 당신을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 주어야 해요." 하며 숨이 멎기 전까지 남편 생각만 한다. 


또, 아내를 보내고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오 하나님 ! 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오년이면 모든 것이 지워지고도 남을 세월인데…, 벌써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이 노인, 어떤 강렬한 감정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그저 삶이란 높직한 의자에 앉아서 말린 생선이나 배를 먹고,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 노인이! 이렇게 긴 세월을 이렇듯 비통함에 젖어 살아오다니! ‘


그리고 소설 속 화자인 나는 한 젊은 남자의 순간 불타오른 열정적사랑의 이별을 보여 주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노부부의 이별과 비교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젊은 남자가 두번의 자살시도를 할 만큼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가 너무도 순식간에 사랑의 아픔을 극복해 내고 그의 새로운 사랑 앞에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 같은 사랑과 노부부의 은근한 사랑을 비교한다.


‘ 끓어 넘치진 않지만 과연 열정과 습관 중 무엇이 더 우리를 좌우하는 것일까? 아니면 격렬한 감정의 발작, 갈망과 끓어오르는 열정의 소용돌이는 단지 우리의 뜨거운 젊음의 결과이며 단지 그것 때문에 그처럼 심오하고 파괴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일까? 무엇이 진실이건 그 순간 이 오래 지속되고 느리게 진행되며 거의 무감각한 습관에 비교하면 우리의 모든 열정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는 몇번이나 고인의 이름을 발음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이름의 절반도 채 내뱉기도 전에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이 일그러졌고, 이 천진난만한 노인의 눈물에 내 가슴은 찢어질것만 같았다. 아니 그의 눈물은 노인네들이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불행을 여러분께 늘어놓을 때 흔히 보이는 그런 눈물이 아니었다. 그렇다 ! 그것은 주체 할 수 없는 , 심장을 휘어감은, 가시 돋친 고통이 넘쳐흐를 때 저절로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고골은 <구시대의 지주들>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순간 확 달아오르는 들끓는 열정보다 오랜 세월 습득된 익숙함이 더 소중하다 말한다. 사실 은근히 깊어지는 사랑은 , 세월이 덧씌워진 사랑은 잃은 후의 상처 또한 크지 않은가? 

마콥스키의 <잼만들기>에 노부부 또한 저렇게 삶이 익어가고 그들은 하늘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누가 먼저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남겨진 이는 떠난 이를 그리워 할 것이고 하늘에서 다시 만날때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림 속 소재가 잼 만들기라니. 뭉근하게 수분을 졸여야만 달콤하게 만들어지는 잼을 소재로 쓴 것은 노년의 사랑을 묘사하기에는 너무도 딱 맞는 소재이기도 하다.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행복과 사랑은 무엇일까?

바로 오래 오래 변치않는 사랑일 것이고 그로인해 풍요로워지고 , 부적함이 채워지는 것일 거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함께 한다는 것, 다름을 닮음으로 바꿔가는 과정, 그것은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무르익을수록 깊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고골 의 초상화 와 블라디미르 마콥스키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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