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의<구시대의 지주들> 과 마콥스키 <잼만들기>

그림과 문학이 만났을때 6편

by 갤러리 까르찌나


니콜라이 고골의 <구시대의 지주들> 과

블라디미르 마콥스키 <잼만들기>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란


12.jpg 블라디미르 마콥스키 잼만들기 1876 년 캔버스에 유채 19 X28 사마라 미술관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루벤스 그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이야기가 있다. 노부부는 지상에 내려온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을 극진히 모신 대가로 신에게서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선물을 받는다. 그때 이 부부는 한날 한시에 세상을 하직할 기회를 달라하고 둘은 프리기아 언덕의 나무가 되어 영원히 마주보고 서있게 된다.
이 둘은 한평생을 함께 살고 죽어서도 늘 함께 하는 축복을 선물로 받는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여 마치 공기처럼 늘 함께 하다 세상을 함께 하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라 한다.



고골의 <구시대의 지주들>은 바로 러시아의 필레몬과 바우키스 이야기 같은 단편 소설이다. 물론 신화가 해피엔딩이라면 고골의 작품은 비극에 가깝다. 신화에선 함께 영원했다면 구시대의 지주들에선 홀로 남겨진 자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두 부부는 평생을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했다는 거다.


<구시대의 지주들>에서 고골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또프스또구프와 영지의 농부들이 또프스또구프 할멈이라고 부르는 그의 아내 뿔헤리야 이바노브나가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내가 풍경화가여서 필레몬과 바우키스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면 나는 이 노부부보다 더 적당한 모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쓰고 이들 부부를 필레몬과 바우키스라 묘사한다. 그렇게 신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하다는 소설 속 부부에 대한 개인적 감흥을 이렇게 서술하며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사려 깊게 손님을 마중하러 나와 있는 소박한 영지의 나이 든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도 선량하고, 너무나도 친절하며 정직한 나머지 나는 적어도 잠깐일지라도 모든 추잡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몸의 감각으로 그 형이하학적이며 목가적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구시대의 지주들>에 등장하는 노부부는 러시아 시골 한 곳에 자리잡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림처럼 그렇게 생을 살아가고 있고 노부부의 평온한 삶에 소설 속 화자인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달리한 후에도 아주 오랬동안 부부의 아름다운 삶을 떠올리고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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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만드는 할머니

블라디미르 마콥스키의 <잼만들기>에 나오는 부부들 또한 평온하고 둘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인다. 과일을 농축시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노련해 보인다. 아주 오래전부터 해 왔던 일을 무심히 툭툭 해내는 느낌이다. 그녀 옆에서 뭔가를 애쓰고 있는 할아버지는 그닥 익숙해 보이진 않는다. 왠지 여러 여러 길을 돌아 돌아 이젠 아내 옆에서 생을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림 속 남자는 젊어서 그리 친절한 남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사실 남편이 향하는 몸짓에서는 과일을 고르는 일보단 아내를 도와주고자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아내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서 생을 이어갔을 것이고, 그런 아내의 소중함과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남자는 나이든 지금에서야 체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함께다. 앞으로도 죽 그럴거 같다.

부부 -박용섭
암죽 한 종지 있는/ 밥상에/ 먹을 것이/ 없어도
젓가락은/ 숟가락 옆에/ 있어야 한다

라는 박용섭의 시처럼 부부는 늘 저 자리서 삶을 엮어 갈 거다. 그러다 하늘이 이들을 부르는 날이 오면 조용히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그들이 가장 바라는 바는 함께 건강히 살다 비슷한 시기에, 아니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행운중의 행운이라 기도 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시대의 지주들>의 주인공들은 한날 한시에 떠나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또프스또구프 할머니가 별안간 세상을 하직한 후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할아버지가 생을 달리할 때 까지 5년동안 절망적인 시간을 보낸다.

아내 또한 세상을 하직하기전 홀로 남겨질 남편을 걱정하며 이런 말을 한다.

"울지 말아요 자신의 슬픔으로 죄를 짓고 신을 노엽게 하지 마세요. 난 죽는것이 슬프지 않아요. 내가 슬픈 이유는 단 하나랍니다(무거운 한숨이 그녀의 말을 잠시 끊어 놓았다.) 내가 죽으면 당신을 누구한테 부탁할지, 누가 당신을 돌봐 줄지 그것 하나만이 슬플 뿐이에요. 당신은 어린아이가 같아서 말이에요. 당신을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 주어야 해요." 하며 숨이 멎기 전까지 남편 생각만 한다.


또, 아내를 보내고 힘들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오 하나님 ! 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오년이면 모든 것이 지워지고도 남을 세월인데…, 벌써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이 노인, 어떤 강렬한 감정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그저 삶이란 높직한 의자에 앉아서 말린 생선이나 배를 먹고,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 노인이! 이렇게 긴 세월을 이렇듯 비통함에 젖어 살아오다니! ‘


그리고 소설 속 화자인 나는 한 젊은 남자의 순간 불타오른 열정적사랑의 이별을 보여 주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노부부의 이별과 비교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젊은 남자가 두번의 자살시도를 할 만큼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가 너무도 순식간에 사랑의 아픔을 극복해 내고 그의 새로운 사랑 앞에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 같은 사랑과 노부부의 은근한 사랑을 비교한다.


‘ 끓어 넘치진 않지만 과연 열정과 습관 중 무엇이 더 우리를 좌우하는 것일까? 아니면 격렬한 감정의 발작, 갈망과 끓어오르는 열정의 소용돌이는 단지 우리의 뜨거운 젊음의 결과이며 단지 그것 때문에 그처럼 심오하고 파괴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일까? 무엇이 진실이건 그 순간 이 오래 지속되고 느리게 진행되며 거의 무감각한 습관에 비교하면 우리의 모든 열정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는 몇번이나 고인의 이름을 발음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이름의 절반도 채 내뱉기도 전에 경련을 일으키며 얼굴이 일그러졌고, 이 천진난만한 노인의 눈물에 내 가슴은 찢어질것만 같았다. 아니 그의 눈물은 노인네들이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불행을 여러분께 늘어놓을 때 흔히 보이는 그런 눈물이 아니었다. 그렇다 ! 그것은 주체 할 수 없는 , 심장을 휘어감은, 가시 돋친 고통이 넘쳐흐를 때 저절로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고골은 <구시대의 지주들>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순간 확 달아오르는 들끓는 열정보다 오랜 세월 습득된 익숙함이 더 소중하다 말한다. 사실 은근히 깊어지는 사랑은 , 세월이 덧씌워진 사랑은 잃은 후의 상처 또한 크지 않은가?

마콥스키의 <잼만들기>에 노부부 또한 저렇게 삶이 익어가고 그들은 하늘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누가 먼저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남겨진 이는 떠난 이를 그리워 할 것이고 하늘에서 다시 만날때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림 속 소재가 잼 만들기라니. 뭉근하게 수분을 졸여야만 달콤하게 만들어지는 잼을 소재로 쓴 것은 노년의 사랑을 묘사하기에는 너무도 딱 맞는 소재이기도 하다.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행복과 사랑은 무엇일까?

바로 오래 오래 변치않는 사랑일 것이고 그로인해 풍요로워지고 , 부적함이 채워지는 것일 거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함께 한다는 것, 다름을 닮음으로 바꿔가는 과정, 그것은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무르익을수록 깊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골의 초상.jpg
블라디미르 마콥스키 초상화.jpg
니콜라이 고골 의 초상화 와 블라디미르 마콥스키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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