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오늘 올해 처음 선풍기를 틀었어요. 불 꺼진 방, 얇은 이불을 덮고 우우우웅—— 낮게 울리는 모터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옛날이 생각났어요. 네다섯 살 쯤이었을까요. 티비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으로 물든 어두운 방에서 할머니와 전 나란히 누워 하늘 자전거를 탔지요.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숨 넘어가게 웃으며 다리를 굴렸던 기억이 나요. 달달거리며 돌아가던 벽에 걸린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과 티비의 작은 소음이 배경음으로 깔리던 그 밤만이 또렷해요.
할머니
그날 노란 나비가 되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셨지요.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듣고 퇴근하던 길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비보에 멍하게 걸어가던 그때 노란 나비가 제 주위를 맴돌았어요. 그게 꼭 할머니가 찾아온 것만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돌아가시기 1년 전쯤이었지요. 아직도 후회되는 건 할머니 생신 때 엄마를 따라가지 않은 일이에요. 코로나로 요양병원들이 격리되어 어차피 가까이서 보지 못한다며 엄마가 혼자 다녀오겠다 했어요. 전화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엄마에게 부탁을 했지요. 건네받은 전화 너머는 소란스러웠어요. 아마도 요양보호사분께서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했겠지요. 생신 축하드린다는 제 이야기를 듣기는 하신 건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네요, 할머니.
영정사진 속의 할머니를 몇 번이고 올려다봤어요. 손주들 중 저를 가장 이뻐하셨지요. 원하는 인형을 가지기 위해서 매장 안에 드러눕는 것도 서슴지 않던 고집쟁이 손녀딸을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어린 시절은 홀랑 까먹고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 무뚝뚝한 손녀여서 죄송했어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게 왜 그렇게 귀찮았을까요.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일들이 삶에는 너무도 많네요.
장지에 할머니를 모신 후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갈 때 노란 나비가 또 한 번 가족들 사이로 날아들었지요. 그 순간 어쩌면 영혼이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던 풍경 뒤로 모두의 곁을 지나 유유히 날아가던 노란 나비가 어찌나 자유로워 보이던지요.
할머니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제 더 이상 노란 나비가 되어 찾아오시지도, 꿈에도 와주시지 않는 걸 보면 그곳에서 평안하신 거지요?
할머니가 남겨주신 유품 중 큰 알반지 하나로 세 모녀가 사이좋게 목걸이를 만들었어요. 하고 있으면 함께 있는 것만 같아요. 곁에서 언제나처럼 사랑으로 지켜봐 주세요.
2023. 05. 16
할머니의 강아지 빵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