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었다. 같은 반이었고 둘 다 근처 중학교에서 올라온 게 아니었기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활발한 성격과 재치 있는 입담까지, 이지혜를 지독하게 닮은 주영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실수’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다짐은 괴물의 씨에 거름이 되었다. 공부밖에 몰랐던 내가 ‘찌질’하게 보일까 봐, 그럼 주영이 떠날까 봐 화장도 하기 시작했고, 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행하는 옷 브랜드를 열심히 찾아보고, 부모님의 지갑 사정을 알면서도 사달라고 생떼를 썼다. 내가 유명 브랜드를 입지 않으면 그 속에 구성원이 될 수 없을 줄 알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희주야, 시험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희주야, 빙수 신메뉴 나왔대! 먹으러 가자.”
“희주야, 뭐해?”
나를 부르는 네가 좋아서, 좋아하지도 않는 무한 리필 뷔페, 카페를 따라다니며 관계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밤에는 길게 통화했으며, 메신저 속 대화가 끊기지 않게 계속 물음표를 던졌다. 점점 주영의 옆을 차지하는 내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고, 과거의 김혜빈이 그랬듯 주영에게 ‘잘 통하는 친구’로 남기 위해 열심히 조소하며 카스트제도를 견고하게 유지하는데 일조했다.
“민지야, 미술실 가자”
“헐, 민지 너 이 밴드 좋아해? 나도 엄청 좋아하는데!”
“민지야, 이거 봤어? 이따 나랑 카페 가자.”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영의 입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이 나오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바라보는 시선 끝엔 내가 아니었을 때 급격한 불안감이 몰렸다.
“주영아, 이동수업이래. 가자.”
“아 잠깐만, 희주야 먼저 가! 민지 아직 책 못 챙겼어. 민지랑 같이 갈게.”
‘쿵’
아마 중학교 시절에 쌓인 경험치가 불러온 불안감일 터이다. 그 경험치를 먹고 자란 씨는 점점 몸집을 부풀렸고 기어코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괴물이 낳은 터무니없는 생각은 후에 내가 독방에 들어갈 때 필요한 죄목이 되었다.
‘주영이 옆에 아무도 없으면, 다시 나를 찾겠지’
그리고 나는 무리에서 주영을 제외시키기 위해 부풀린 몸집에 맞게 말도 부풀렸다. 하교 후에는 카페로, 밤에는 메신저로 끊임없이 주영에 대한 악담을 했다.
‘주영이가 내가 입은 거 보고 별로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조금 상처 받았어’
‘헐 진짜? 주영이 그렇게 안 봤는데, 인성 무엇이냐?’
사실 주영은 옷이 별로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희주, 네 체형에는 사이즈 큰 것보다 작은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였다.
괴물은 경주마처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눈과 귀를 닫았고 심지어 자기 합리화도 시도했다.
‘어쨌든, 별로라고 한 건 맞으니까’
끔찍한 합리화가 만든 시나리오는 결국 가장 초라한 결말을 도래한다.
“야, 양희주. 나랑 얘기 좀 하자?”
1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주영이 다가와 말했다. 내가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그래, 뭔데?”
드디어 주영이 내게 왔나 싶었다. 이제 내 옆에서 떠나지 않겠지.
“너 요새 정성스러운 헛소리를 하고 다니더라? 지현이한테 다 들었어. 발뺌할 생각 하지 마.”
그때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그때 나를 보호하기 급급한 선택을 했다.
‘사실, 나는 네가 정말 좋아서, 네가 내 곁을 떠나서 혼자가 될까 봐 너무 무서웠어’ 대신,
“내가 언제? 나 아닌데?”
“무슨 말인 줄 알고 아니래? 네가 입 털고 다닌 게 하도 많아서 감도 안 오지?”
“아냐, 진짜 나 아니라니까? 그리고 네가 나한테 그런 말 한 건 맞잖아.”
주영은 짧게 싸늘한 웃음을 흘리곤 말했다.
“너 혹시 정신병 있니? 상황, 맥락 다 무시하고 네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게 팩트야?”
맞다. 병명이 필요하다면 정신병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그나마 덜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끝까지 부정하는 내게 오만정이 다 떨어진 듯한 주영은
“진짜 너 짜증 난다. 미친 X, 꺼져라 그냥. 앞으로 아는 척도 하지 마.”
이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다. 추락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