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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20. 2024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아시나요

어제 저녁에는 오랜만에 대학 선배를 만났다. 오랜만이라고 하기엔... 불과 한 달 정도만의 만남이었다. 나도 요즘 회사를 쉬고 있지만 선배도 일 년 가량 회사를 쉬게 되어서 원래도 자주 보는 사이였지만 최근엔 더 자주 만나게 된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직 교편을 잡지 못하고 있는 한 선배의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 내가 그 선배를 보았을 때 그 선배의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둘 있는 마흔여섯이 되었다. 그렇구나. 벌써 20년 이상이 흘렀구나. 그런 감상을 떠올리려던 게 아니었다. 하나둘씩 다들 교편을 잡아 가고 있다. 절대적으로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선배만 못한 사람도 다 자리 잡았고, 그 선배보다 훨씬 후배조차도 많은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교편의 정년이 예순다섯이라고 쳐도 이 선배도 얼른 자리를 잡아야 그래도 20년은 할 수 있을텐데. 다행히 생일이 늦어서 2학기 때 임용되더라도 20년은 채울 수 있다고 나는 제3자나 할 수 있는 농담을 했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다.




집안의 평화를 잃은지 두 달 반이 조금 넘었다. 조금 있으면 석 달이 된다. 초반에는 다툼의 연장이라 생각했기에 스트레스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아내와의 사이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대화도 많이 했었다. 물론 우리는 서로 지쳐서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서운했던 것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서운한 것을 쏟아냈던 게 서로에게 더 상처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고, 아내가 완전히 결별을 결심한 것은 길게 보면 두 달, 짧게 보면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정말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아졌다. 제3자로 지난달에 날 보았던 선배가 최근에 날 보고도 한 말이다. 의식적으로라도 많이 웃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한다. 처음엔 그게 아예 안 됐다. 지금이라고 잘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졌다. 당장 오늘의 일상만 해도 그렇다. 아내의 숨결이 남아 있는 집에서 오늘은 아무 일정 없이 혼자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크리스마스날도 이랬다. 그날은 정말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죽고 싶었다. 실제로 죽지는 않았지만 1초가 10만 년처럼 느껴졌다. 모든 이가 축복 속에 웃음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에 이혼을 통보받은 나는 텅 빈 집에서 뭐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도 크리스마스이브와 그 전날(토요일이었다)까지만 해도 같이 시간을 보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하면 누군가 또 불러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마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정말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다. 아니 하루가 아니었다. 몇 주 정도를.


세상 일에 관심이 많은 나다. 세상 일뿐만 아니다. 회사가 돌아가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손해는 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렇다 보니 회사와도 많은 분쟁이 있었고, 다툼도 많았다. 사람들과 개별적으로 싸움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데 이렇게 막상 집안의 평화를 잃고 보니 그동안 그 작은 것들에 얽매여 있었던 내가 너무 우습게 느껴진다. 집안일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승진 좀 못하면 어떤가. 남들보다 일 좀 더하면 어떤가. 당장 잠깐 조금 억울하고 서운할 순 있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 할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고, 집안에도 별일이 없다 보니 그런 쓸데없이 작은 일에까지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선배가 아직 교편을 잡지 못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가장 좋아하던 선배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래도 사이 좋은 형수와 아직 가정을 잘 이루고 있고, 두 아이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물론 본인이 취업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진 않겠지만 그래도 가정이 깨어지고 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선배는 건강이 좋지 않은 편이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고, 양쪽 눈은 모두 수술을 했다. 그리고 성인병도 몇 개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니고 나의 가정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본인의 개인사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도 내 사지가 멀쩡해서 생각할 여유가 있으니, 이렇게 아내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는 거구나. 정말 내가 지금 당장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보이지 않으며, 걷는 것조차 힘들다면 아내와의 관계에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최소한 내가 건강은 하기 때문에 마음이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몹쓸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다. 차라리 내가 크게 아프기라도 했다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힘든 일을 겪어서 그런 것인지, 세상 일의 이치를 깨달아 가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요즘 들어 옛말이 정말 정확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당연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이 그렇게 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어제 선배의 취업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로 이 말이 떠올랐다. 정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구나. 취업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제가'와 '치국' 사이, 혹은 '치국' 정도에 해당되겠지. (후진을 양성하는 일도 치국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금 나는 '제가'조차 되고 있지 않다 보니 혹여 내가 '치국'의 일에 부닥쳤다 해도 그렇게 힘들 게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반면 내가 '수신'조차 못하고 있다면 지금의 이혼 문제가 뭐 그리 크게 다가오겠는가. 일단 내 몸 멀쩡하고 건강한 게 먼저일텐데.


지난 월요일에 부산에서 통영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갑작스레 '회자정리'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었다. '회자정리'. 만난 사람은 결국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겠지.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울적했는데 그 사자성어가 떠오르고 나니 한 30분 정도는 잠깐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 같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진작 이 진리를 알고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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