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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Aug 21. 2020

나이듦에 대하여. 2

나는 왜 나이듦이 두려운가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기성세대에 대한 나의 감정은 좋고싫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혐오나 증오에 가깝다.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의 중심에 기성세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회적인 평가뿐만 아니라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온 것이라서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내 주변에 있는 기성세대들에 대해서도 불만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정치권을 볼까. 이제는 3선, 4선한 국회의원들이 넘쳐난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초선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3선만으로는 상임위원장을 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3선 의원이 많아졌다. 우상호, 이인영, 송영길 이런 사람들은 지난 2000년부터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다. 매번 당선된 것은 아니었지만 올해에 총선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은 20년 넘게, 아니 사반세기 동안 국회를 들락거리며 지낸 셈이다. 20년이란 세월 동안 세대는 2번은 교체되었어야 했다. 저들이 저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한국의 젊은 정치인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어떤가. 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경악을 금치 못했을 때가 바로 60세 정년연장이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일하는 일자리와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정년연장으로 청년세대의 취업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지금 모든 지표는 말하고 있다. 정년연장으로 청년고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줄었다. 안 그래도 청년 취업난이 심각했는데, 기성세대들은 결국 자신들이 은퇴하고 나서의 경제적인 염려 때문에 청년들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부동산은 어떤가. 30대가 패닉 바잉을 해서 집값이 이렇게 올랐다고 하지만, 결국 그 과실은 모두 기성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패닉 바잉에 빠진 30대는 거품 낀 부동산 시장을 강제로 지탱해야 하는 세대가 되고 말 것이다.


회사에서도 나는 당분간 승진을 할 수가 없는데 직급별 정원이 존재하는 엄연한 제도 속에서, 50대 이상 직원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현실 때문이다. 그들이 나가야만 승진을 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높은 직급에 고연봉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 과연 그만큼의 일을 할까. 아니면 그만큼의 책임이라도 질까. "나이 들면 힘들어." 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 한국의 직장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받으면 그 대가만큼의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타당한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는데 나이 타령을 하고 있다. 젊은 개미들이 열심히 일해서 그들의 게으름을 떠받치는 구조다.




우리 회사가 워낙 고연령층 중심이다 보니 내가 아직 기성세대에 편입되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일모레면 마흔인 나도 이제 사회에서 적은 나이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2030, 4050으로 구별하고 나면 나는 여전히 청년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실제로도 기성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려고 애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목청 높여 기성세대와 그들을 위한 정책들을 비난하는 중이다.


얼마전에 회사에서 정년을 연장한 퇴직 직원이 한 명 있었다. 분노를 못 이기고 결국 나는 노조까지 탈퇴했지만, 결국 이런 문제들이 '나와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50대 직원이 절반에 가깝고, 내가 아직도 팀의 막내인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려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었겠지만 발언권이나 여론형성권 등에서 누가 봐도 명백히 한계가 있지 않은가. 부당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들이 훨씬 많은 기득권과 경제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대항해 20대와 30대가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당장 선거만 봐도 그렇다. 베이비붐 세대인 50대와 60대는 저출산세대인 지금의 2030보다 훨씬 많은 인구분포를 자랑한다. 그래서 늘 지금처럼 계속해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내일모레면 나도 마흔이 된다. 마흔이 되어도 우리나라의 평균 나이보다 젊은 셈이지만 사람은 계속 늙고 언젠가는 나도 쉰이 되고, 한국의 평균 나이보다 많은 기성세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도 '세상이 계속 이 모양인 것은 내 책임이 아니고, 나는 피해자'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정년을 연장한 뱀 같은 그 직원을 본받은 비슷한 젊은 직원도 없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젊은 직원들은 아마 뱀 같은 젊은 직원은 나중에 지금의 그 나이 든 직원보다 더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늘 내가 하는 생각은 나이 든 뱀을 막지 못한 것은 지금의 나이 든 직원들 잘못이지만, 젊은 뱀을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직장은 정년도 있고, 혹시 앞으로 정년이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사람들이 은퇴할 수밖에 없을테니 바뀌고 변화하겠지만, 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내가 50이 되고 그들이 80이 되어도 선거권이 있을 것이고, 오히려 더 높은 자리를, 더 많은 경제권을 차지하기 위해 탐욕을 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우리가 과연 쉽게 막아낼 수 있을까.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 아직 젊은 나는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그것이 혹시 꼭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러나 내가 나이가 들고 기성세대에 편입되었다고 해서, 지금의 기성세대가 하루아침에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보다 우리보다 경제력도 영향력도 더 큰 그들이 세상을 망하게 하려고 하는데 그걸 막지 못했을 때, 과연 내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도 지금처럼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논어>에서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이라 했다. 나이 드는 것은 쉬운데, 세상을 바꾸기는 정말 어렵다. 그리고 이제 점점 나에게도 그 책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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