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est Sep 17. 2020

젊음이 그리운 까닭은

사라진 나의 자신감을 추억하며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갑자기 나의 옛날이 그리워졌다. '갑자기'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친구들과 비교해도 나는 과거회귀성향이 가장 강하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말을 가장 자주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젊은 출연자는 열정적이었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똘똘해 보였고, '시원해' 보였다. '10년 전의 내가 더 나았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은 결국 지금의 나는 그만한 자신감이 없다는 뜻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의 삶은 서른을 경계로 엄청나게 달라졌다. 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듯, 서른 살 전까지의 나는 '우주를 가진 소년'이었다. '서른 살'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이라고 표현을 한 건, 어찌 보면 서른의 나이에도 우주를 가졌다는 건 너무 철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 한두 살의 경계로 서른 살 이후의 나는 '우주를 잃은 장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우스개로 '나에겐 청년 시절이 없었다'고 이야기하고는 한다.




10년 전 이맘 때, 군대 생활의 마감을 앞두었던 내가 기억난다. 남자들은 전역할 때가 되면 누구나 다 자신감으로 충만한다지만 나의 경우에는 달랐던 것이 대학생 때도 이미 더 이상 자신감이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던 사람인 까닭이다. 모든 발표, PT, 다 내가 도맡아서 했었다. 이제 사회에 진출한다니 나의 재능을 더욱 맘껏 뽐낼 수 있겠구나. 스티브 잡스 저리 가라지. 신문에서 S그룹에서는 S급 인재와 그 아래의 A급 인재는 별도로 특별하게 관리한다던데 나는 S급은 안 되어도 A급 인재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게 드러나는 특별한 스펙이 없어서 나는 내가 A급 인재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고민하고는 했었다.


넘치는 자신감에 군 생활은 오히려 날개를 달아 주었다. 사실 군대 생활 처음엔 자신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해야 옳았다. 평생 접해 보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과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일,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오히려 남들보다 헤맸던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2년이 채 안 되어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군대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심했던 나의 마음도, 그리고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나는 이것조차도 잘하는구나'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넘치던 시절이었다.


첫 회사 입사를 치르던 생각이 난다. 필기시험을 보면서는 '내가 이 정도 회사라면 수석이 아닐까?' 라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했고, 면접을 보면서도 당연히 내가 최고일 거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PT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내게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honest 씨는 우리 회사에 대해 잘 모르고 지원했죠?' 누가 들어도 식은땀이 날 질문인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를 안 뽑으면 너희들이 손해지'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떨어져도 나는 어디든 갈 곳이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흔하게 했던 얘기로 '내가 이 회사에 다니면 본부장 정도는 당연히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무슨 근거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자신감은 사람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리고 돋보이게 만든다. 자신감이 있으면 사람이 당당해지고, 그 당당함이 자신감을 더욱 키운다. 그야말로 선순환이다. 물론 이게 아니꼬워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위축되지 않는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니까. 아마도 나는 그 회사에 낙방했어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을테니까. 당시 내가 그 회사에 입사했던 것은 입사 과정에서의 배려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입사를 해 주었다고나 할까.


40여 명의 동기들 가운데 2명뿐인 기획본부 입사자였고, 나는 입사하자마자 지원 부서에 배정되었다. 신입사원 연수를 가서는 처음 본부장이 와서 신입사원을 격려하는 자리에 헤드 테이블에 불려 가는 직원이었고, 모든 것이 다 탄탄대로를 달릴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나의 인생은 역시 특별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30년을 살아왔고, 그것이 나의 젊은 시절,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청년을 건너뛰고 장년이 된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인생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도 사라졌다. 별 볼 일 없는 회사에서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면서, 물론 그래도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지 라는 생각도 가끔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특별히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과연 내가 예전과 같은 발표나 PT 기회를 얻었다고 했을 때, 그때처럼 할 수 있을까? 예전의 나는 실수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일단 나는 실수를 하지 않을 사람이었고, 실수를 한다고 해도 금방 수습할 인재였다. 지금의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혹시나 실수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되었고, 한 번 실수하게 되면 그것이 뇌리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10년 전의 나만큼도 못한 사람이 되었다. 그 사실이 가장 슬프다.




지나 온 20대와 30대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과거는 전혀 그립지 않다고 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그럴 것이다. 어떤 성취를 위해 그 친구들은 오랫동안 쉬지 못하고 달려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다르다. 힘든 과정과 시간을 다시 겪는다고 하더라도, 아니 어쩌면 나는 그런 시간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자신감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옛날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너무 그립다. 예전의 나는 열 사람의 혹평보다 한 사람의 호평에 훨씬 더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호평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열 사람의 호평보다 한 사람의 혹평에 마음 졸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오늘의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내가 돈이 많지 않은 것도,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도, 예전만큼 건강하게 펄펄 날라다니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나는 잃어버렸다. 분명히 그때보다도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을텐데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때와 같은 자신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이 작아졌다.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그 자신감으로 인한 선순환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번 작아진 사람은 스스로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다. 어떻게 이렇게 변화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의 나는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더 자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다면, 지금의 나는 갈수록 작게 쪼그라들고 있다.


어쩌면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세상이 온 우주가 내 것 같았던 그때의 내가. 텔레비전의 한 장면을 보다 말고, 사라진 나의 자신감을 추억하며, 오늘 이 글을 남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