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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21. 2020

행복으로의 강요

나는 수년 전보다 매출이 수십 % 떨어진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동안 직원은 50% 가량 늘었고, 심지어 얼마전엔 정년퇴직자가 계약직으로 재고용되기도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중소기업이지만 비교적 고용안정성이 높은 편이라 불과 얼마전에도 정년퇴직자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50대 직원이 거의 태반이다. 매출은 매년 줄어드는데 관리비는 매해 늘어나고, 심지어 직원 숫자까지 증가하는 회사에 다니는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이제 정년이 2년여밖에 남지 않은 팀장은 아마도 정년퇴직을 할 수 있겠지만, 아직 22년 정도 남은 내게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확실한 매출이 있는 회사가 부도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관리비는 늘어나는데 매출이 줄어드는 회사가 영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또한 안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지난 10년 동안 내 주거지는 반전세와 전세를 번갈아 옮겼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매번 내 주거지가 더 나은 여건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 군대에서 나와서 동생과 같이 살던 작은 투룸에서 난생처음 아파트 전세로 옮겼을 때, 나와 동생은 한 번에 너무 좋은 집으로 옮긴 것은 아닌가 생각했었다. 결혼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지금 전국이 전세대란으로 난리법석이지만 다행히도 나는 지난 겨울에 새로운 세입자를 집주인 대신 구해 주어 가면서까지 전략적으로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심지어 처음부터 4년을 살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지금의 전세대란이 안정을 찾는다고 해서 다시 전세가가 예전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앞으로 3년 정도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그렇다. 나는 불안정하지만 직장도 있고 내 집은 아니어도 잘 곳이 있다. 불혹이 머지 않았으니 몸에도 고장 난 곳이 한두 곳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겉으로는 어쨌든 멀쩡하고 사실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쉽게 피곤하고 지치고, 늘 졸립고 지루한 것은 20대 때도 그랬다. 어쩌면 10대 때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 일도 비교적 나와 잘 맞는 편이다. 나는 우리 회사는 욕할지언정 내가 하는 일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당히 친구도 있고, 아는 사람은 오히려 많은 편이고, 부모님도 잘 계신다. 그래서, 내가 행복해야 하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이 잘 맞다고 해서,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란 것은 아니다. 나의 꿈은 원래 다른 것이었고, 하고 싶은 일 또한 달랐다. 사실 그렇지 않을까. 세상 수많은 머리 쓰는 사람들 중에 사무직 업무가 맞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원래 그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일까? 아닐 것이다. 대학 후배 중에 처음부터 대기업 취직이 목표라고 한 후배도 있기는 했다. 그 친구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26살부터 그 회사를 다녀서 벌써 10년차가 되었다. 어찌 보면 부럽기까지 할 정도로 빠르다. 그러나 그 친구가 대표이사가 되는 꿈을 꾸고 그 회사에 입사했던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대기업 회사원이 꿈이었을리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 일이 나와 잘 맞는다고 느끼고, 남들이 볼 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처음부터 이 일을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란 뜻이다.


회사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50대 직원들은 30대 직원이 걱정하는 이 회사의 영속가능성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실은 어쩌면 다른 30대 직원들도 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 내가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회사 매출이 계속 주는데, 관리비와 직원 숫자는 반대로 매해 늘어난다. 우리 회사가 애플처럼 이익률이 30%인 것도 아니고, 자신이 수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도 아닌데 회사가 망하진 않더라도 내 삶이 팍팍해질 것이라는 걱정은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잘리진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가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면 급여를 줄이겠지. 승진도 어려워질 수도 있고. 승진 문제는 지금 당장 닥쳤다. 직급별 정원이 있는 까닭에 나의 승진은 정말 쉽지가 않다. 윗분들이 나가야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집은 어떤가. 그래 당장은 괜찮겠지. 근데 이 집이 내 집인가? 주인이 내일이라도 집을 비워 달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꼭 비워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3년이 지나서 이 집을 비워줘야만 할 때가 오면 어떻게 하나. 집을 사기에도 빌리기에도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 버렸다. 지금도 나는 출퇴근에 2시간 반 정도를 쓴다. 이 시간을 더 늘려야 하나.




아이를 엄청 좋아하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많은 '꼰대'들의 참견이 이어진다.(죄송합니다. 여기서는 꼰대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네가 왜? 뭐가 부족해서? 더 어려운 사람들도 다 아이 잘 낳고 키우는데?"


12평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고 얘기했더니 한 교수님은 자기는 11평짜리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단다. 교수님.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교수님은 1천 불 시대의 사람이고, 저는 2만 불 시대에 사람인데, 어떻게 교수님과 저를 같이 비교하시나요. 우리 회사의 불안정성과 쇠락에 대해 걱정하면 어떤 선배는 앞날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너무 지금 보이는 것에만 주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선배, 지금 우리 사회가 70~80년대처럼 고도성장할 때가 아니잖아요. 변화가 확확 오고 그것이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주는 시대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저는 심지어 사양산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팀장이나 다른 50대 직원들은 이 안정적인 회사에서 불안정을 느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 당연히 그러시겠죠. 그분들이 이 회사를 다닐 때는 이 회사가 생겨서 막 성장할 타임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지금도 매출이 오르겠죠. 지금 매출이 줄어드는 거 안 보이세요?


'꼰대'들의 이야기가 모두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나는 그들보다 더 풍요롭게 성장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밥을 굶을까 걱정했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 소고기라는 걸 먹어보지 못한 나였지만, 그래도 밥을 굶을 걱정 정도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세대다. 대학에 오고 나니 방학이면 많은 친구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살림 걱정에 나는 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도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살았던 세대는 아니다. 25살부터는 나도 해외여행을 갔다. 이제는 예전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가끔은 소고기도 사 먹을 수 있다. 대학교 다닐 때에 꿈꿨던 살림의 목표를 생각하면 확실히 풍요롭다. 그때는 좋은 원룸에만 살아도 무척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여러분. 행복이 그렇게 절대치에서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여러분은 한국전쟁 때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행복하셨나요. 우리가 사는 삶의 여건이 아프리카의 어느 열악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그리고 우리가 당연히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지만, 그 애들은 그 애들 나름대로의 행복과 걱정이 있고,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의 행복과 걱정이 있는 것입니다. 1천 불 세대에 자란 사람들이 1만 불 세대에 자란 사람을 보면서 "너희가 뭐가 걱정이냐?"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다시 1천 불 세대처럼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마찬가지로 저는 요즘 저보다 더 젊은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합니다. 그 애들은 3만 불 시대에 자란 애들이니까요. 처음부터 소고기를 먹고 자란 아이들에게, "그래도 너희는 닭고기는 원없이 먹을 수 있잖아. 뭐가 불만이야?"라고 얘기하면 안 되죠.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하루 앞을 예상할 수 없다. 내가 지금 하는 걱정이 어쩌면 아무 쓸데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면서 굳이 오늘의 행복을 잃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삶에는 또 다른 길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읽는 당신과 나는 분명히 오늘밤에 잠들고 내일 일어날 것이며, 별다른 사고 없이 앞으로 우리의 생을 지속할 확률이 99.9%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고, 내년의 계획을 세우며, 앞으로의 삶에 목표와 꿈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의 삶에 그렇게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의 걱정이, 여러분의 우려와 염려가 결코 쓸데없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중에는 땅이 꺼지면 어쩌나,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기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걱정하는 "우리 회사는 과연 영속 가능할까, 나는 계속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조차 거기에 해당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런 내게 "그래도 단칸방은 아니잖아"라면서 행복을 강요한다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행복을 강요하지 마세요. 행복은 절대치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강요할 거면, 당신이나 먼저 행복해 하세요. 한국전쟁 때 살았던 사람들보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아프리카에 태어난 아이들과 우리를 비교하지 말고, 당신을 먼저 비교하세요. 이미 많은 것을 가지셨잖아요? 단칸방은 아니라서 행복해 할 것 같으면, 본인이 가진 것이나 좀 내려놓으세요. 정년까지 다녀도 욕심 부리며 더 다니려고 하시는 분들이 누구에게 행복입니까, 행복은.


꼰대들에게 사이다 같은 발차기를 날리고 싶다. 그렇게 행복을 강요할 것 같으면, 당신이나 먼저 오늘 하루 웃고 사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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