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5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8년 전의 12월 19일.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꿈이길 바랐다. 한 표 한 표 개표되어 가는 동안, 무언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어떤 기적도 없었고 결국 그토록 보고 싶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는 마지막으로 일말의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는, 내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믿음.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그 기대가 깨지는 데는 불과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였구나.
역사는 과연 발전하는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젊은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야지!", "우리 세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오랫동안 지켜보았을 때, 박근혜가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저에 있던 이런 사고들이었다.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은퇴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또 늙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결국 오늘의 주인공은 내일의 뒤안으로 물러나야 하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진리이다. 박근혜 정부는 늘 청년을 위하고, 청년을 주역으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구호뿐이었다. 나는 지금 정부의 고위 관료들도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상당히(?) 젊어진 까닭이다. 청년을 키우겠다면서 노년을 중용하는 정부. 결국 "노인이 주인공이 되는 나라"(이것조차도 현실을 들춰보면 구호뿐이겠지만)에 다름 아니었다. 21세기의 한복판에 등장한 20세기 주인공들의 19세기식 통치. 그것이 박근혜 정부의 현실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전세난은 심각했다. 아파트 전세를 구하려면 무척이나 발품을 팔아야 했고, 몇 시간이 지나면 그 집이 나가고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집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을 한 와중에도 '가는 동안 집주인이 전세를 천만 원 더 올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무런 해법이 없긴 했지만, 이때 나온 정책이 바로 '빚 내서 집 사라'였다. 그러면서 온갖 규제와 제한을 풀기 시작했다. '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적으로 당시 시점에서 그 정책이 필요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 서울보다는 지방이 발전해야 하고, 부채보다는 자산이 쌓여야 한다고 보았던 나의 시각에서는 이것이 괜찮을지 의문이 들었다. 부채로 인한 성장은 결국 미래의 성장을 오늘로 당겨 쓰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미래에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혁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당시에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부동산이 이렇게 오래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며, 국토 균형발전은 물론 소비에 의한 내수시장 진작, 그리고 건전한 자산 형성 문화도 모두 천천히 만들어져 가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지난 2018년까지도 부동산 폭등은 박근혜 정부의 원죄라고 생각했다. 2018년까지는.
지난해 이맘 때 있었던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내가 준비했던 질문 두 가지는 바로 '청년 문제'와 '부동산 문제'였다. 우리나라에 억울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현장에서 나는 상대적으로 덜 억울(?)했던 까닭에 질문 기회를 얻을 수 없었지만, 그날 있었던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질문에서 대통령의 대답은 정말 귀를 의심케 하는 수준이었다. 집값을 잘 잡고 있다는 자신감도 그랬지만,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손해는 아니지 않습니까. 상대적 박탈감일 뿐이지." 나는 지금도 신기하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왜 기사화되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았는지. 집값을 잘 잡고 있고 안정시키고 있다는 자신감이 너무 어이 없었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발언은 용납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반문하고 싶었다. "상대적 박탈감일 뿐이라뇨. 어제까지 5년 동안 월급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는데, 오늘부터는 10년치 월급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데 이게 어떻게 손해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든 지지를 철회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철회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나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못' 잡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해까지 했던 생각은 결국 대부분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이고, 그들에게 손해가 가는 정책을 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인구구조상 그리고 선거에서 표를 얻는데 그들의 마음을 사는 게 훨씬 유리하므로 집값을 일부러 '안' 잡는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훨씬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의도적으로 이렇게까지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마 그들이 의도했던 것보다 부동산은 훨씬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집값을 '못' 잡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흔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불평등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의 역사적 관점에서 이것이 얼마나 문제인가를 늘 생각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앞으로의 출생률을 예측한 기사를 보았다. 코로나19로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곧 바닥을 치고 출생률이 상승하게 될 것이란다. 그때는 집권을 안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전망을 하는 건가? 코로나19로 잠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올라갔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더 많은 사람의 경제적 형편이 아주 어려워졌다. 나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만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글쎄. 나는 그런 사람은 한국에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극소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부동산은 아니다. 회사 동료와 지금의 서울 집값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부가 모두 국내 유수의 재벌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껴쓴다고 하더라도 지금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를 사려면 20년을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에 아이가 생기면? 20년을 모으면 될 줄 알았는데 30년으로 늘어나지 않을까? 도대체 정부에서는 어떤 자신감으로 앞으로 출생률이 늘어날 것이라고 선전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이를 낳지 않을 작정이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 계층구조 이런 문제로 인하여 출산을 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집을 사는 것도 불가능한 나라에서 아이까지 낳을 수가 없다. 군대를 나와서 첫 직장을 얻은 뒤부터 지금까지 매 3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뭐, 3년이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가 있어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한 번에 다닐 수 있었겠네." 네, 그러세요. 이사를 한 동네 안에서 다녔던 것도 아니고 서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남쪽으로, 남쪽에서 다시 동쪽으로 홍길동처럼 날라 다녔다. "애가 3년마다 이사 다니는 게 뭐가 문제야?" 아마도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네, 그러면 그런 너나 아이를 많이 낳으시던가.
정부는 코로나19를 극복하면 앞으로 경제성장률도 올라가고, 내수시장도 활성화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생각에는 아니올시다이다. 물론 지금보다는 낫겠지만, 부동산가격이 너무 올라서 사람들은 돈을 더 번다고 해도 부채를 상환하고 이자를 내는 데에 그 돈을 써야 한다. 경제가 회복될 때, 사람들이 돈을 쓰고 내수가 활발하게 돌아가길 바랐다면 집값을 이렇게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오래도록 이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빚을 갚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부분 20년, 30년이니까. 우리는 그동안 소득시장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지 않는 이상, "경제는 성장하는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돈을 안 쓰지?" 같은 뉴스를 계속 보고 살아야 할 것이다.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은 문재인과는 아예 다른 분이셨다. 그 시절에는 한국의 장래를 위해 국토가 균형발전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5년 단임제로 인해 본인은 그 열매를 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초기의 부동산 시장 안정에는 국토 균형발전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내가 처음 아파트 전세를 얻어서 들어갈 때만 해도, '서울 부동산은 끝났다'는 인식이 파다했다. 수많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갔고, 세종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은 옳았고,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아니다.
지금 당시 국정철학에 발맞추어 지방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사한 사람들은 모두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때, 가족은 서울에 남겨 두고 나만 이사했어야 했는데.' 아마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가족이 전부 이주한 경우 자체가 얼마 안 돼요." 이것은 국정 실패를 자인하는 말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나. 이후로 한국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고 서울 부동산 시장은 침체하며 지방 부동산 시장이 성장했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 더욱더 지방으로 이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두 틀려 버렸다. 앞으로는 국토 균형발전이라며 정부에서 내세우고 지방으로 기관을 이전한다고 하더라도 그 도시의 원룸시장만 성장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죽어도 서울에 남는 사람이 승자다!' 라는 것을. 나는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역사에 정말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죽어라 국토 균형발전을 추진해도, 과거만큼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점심에는 유명한 칼국수집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한 끼에 5,500원.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양도 많았고 맛있었다.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식당에 같이 간 다른 팀장님과 다르게 식당을 나오는데 너무 우울했다. 이 분이 한 끼에 5,500원을 받고 팔아서, 과연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까. 저렇게 아들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어머니는 홀에서 열심히 서빙을 하면서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이 노동이 정말 그렇게 가치 있는 노동일까. 모르겠다. 어떤 사람의 순수한 노동의 가치를 내가 폄하한 건지도.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사회는, 그리고 역사의 발전은, 이렇게 땀 흘리며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그 대가를 받고 누리는 세상이다. 너무 이상적인가. 또 자본주의 사회에 맞지 않는 말인가. 누군가는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라고 말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를 추구하겠다. 이상적인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가치가 인정받고 그래서 그쪽으로 돈이 모이는 것이 자본주의다. 하이에크조차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의 가치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빨갱이라고 욕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보다도 훨씬 자본주의적이다. 이들은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 생각도, 그릴 계획도 전혀 없다. 5,500원짜리 칼국수를 만들어서 팔면서, 아무리 잘 만들어서 판다고 해도 영원히 그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제까지 2천 그릇을 만들어서 자본을 형성하면 뭐하나, 부동산 가격은 이제는 4천 그릇을 팔아야 살 수 있도록 올랐는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혁신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려면,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아야 한다. 이건 이상적인 말이 아니다. 노동과 혁신의 가치가 인정받을 때에만 과학과 기술과 모든 것이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그런가? 문재인이 만든 세상은 '내가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 집 하나 잘 사는 게 훨씬 나은데.' 우리 사회에 모든 혁신의 동력을 무너뜨렸다. 누군가는 카카오를 네이버를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다. 2천5백만 국민 중에 1명 정도는 그런 사람이 있겠지. 근데, 아파트를 잘 사라. 카카오나 네이버 창업주 만큼은 아니겠지만 너의 성공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심지어 실패할 확률도 없고. 이게 문재인이 만든 우리 사회의 현 주소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지금의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더욱 심각한 상태다. '재산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정부에서 '부동산 감세'를 추진하는데 이를 말리지는 못할 망정, "10억 넘는 집은 왜 안 깎아 줘? 우리도 중산층이야!"라고 하는 게 야당이다. 그들은 한국의 평균 주택가격이 얼마인지 알기는 할까. 이조차도 야당만을 욕할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도 지방을 대한민국으로 여기질 않고 있는데 무슨. 내가 화가 나는 것은 이렇게 지리멸렬한 야당 덕분에 문재인 정부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마침내는 임기 뒤에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 앞에 서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돌아왔습니다." 하고 인사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니, 성공한 대통령은 지지율이 높은 대통령이 아니다. 지지자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한때 어려움과 곤란을 겪고 힘들더라도 역사의 발전을 위해 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 대통령이다. 당장은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성공한 대통령은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도 아무도 반기지 않던 업적이었다.
올해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 가운데(그 가운데는 자기계발서도 있고, 아마 마음치유 서적도 있을 것이다.) 가장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책은 강준만 교수의 <부동산 약탈 국가>였다. 강준만 교수는 집을 사지 않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잘못은 문재인 정부와 정치인, 관료들에게 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여느 자기계발서나 마음치유 서적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읽는 동안에는 그렇게 위로받을 수 있었으되, 변화한 현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 구한말에 고종(문재인)과 같은 무능한 국왕의 치세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지, 백성 한 명이 무슨 수로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약삭빠르기라도 하면 이완용처럼 한몫이라도 단단히 챙길텐데, 동포들을 배반하고 그렇게 내 욕심을 챙길 위인조차도 못된다. 동네의 이름없는 우국지사는 그저 망국을 한탄하며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고종이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망해 가는 줄도 모르고 제국 선포를 했었지. 지금의 경제 통계 발표며 온갖 장밋빛 전망들이 대한제국 선포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될 뿐이다. 고종도 지금 누군가는 성군이라고 한다. 역사의 죄인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