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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n 08. 2020

퀴즈쇼

어린 시절, 장학퀴즈를 즐겨 봤던 나는 '방구석 기장원'이었다. 이미 중학생 때쯤에는 풀지 못하는 문제가 많지 않았다. 내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다른 출연자 가운데 한 사람이 모두 풀 리는 만무하니, 장원은 늘 나의 몫이었다. "왜 저 정도 문제밖에 내지 못하지?",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쉬운 문제를 못 풀고 있지?" MC가 문제를 읽는 도중에 나는 늘 정답을 맞췄고, 설령 각자 문제를 푸는 초반에 점수가 조금 뒤졌다고 하더라도 이내 뒤집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 장학퀴즈에 출연할 날을.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로 장학퀴즈 출연 섭외가 와야 했다. '출연하기만 하면 장원은 따놓은 당상인데'라고 생각하고는 했지만, 다른 무엇보다 출연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때의 장학퀴즈는 전국의 같은 학년들 사이의 겨루기였다. 드디어 우리 학년이 출연하게 되었고,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르는만큼 나의 출연 확률도 점차 낮아져 가는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우리 학교가 장학퀴즈에 섭외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다. 당당하게 나는 출연했고, 겨우 10점 차로 꼴찌를 간신히 면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했다. 확실히 모르는 문제는 '감점도 많지 않은데 한 번 도전이나 해 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버저를 누르게 되었는데, 정답이 맞는 것 같은 문제는 괜히 더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내가 신중을 기했던 그것이 바로 그 문제의 정답이었다. 그날 나는 찬스를 사용한 문제를 맞추었다. 친구들은 다들 '왜 이렇게 빨리 누르지?' 라고 생각했다는데, 나는 그것조차도 엄청 망설이다 누른 것이었다. 오랜 시절 장학퀴즈 시청 경험으로 MC가 문제를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그 문제의 정답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누르지 못한 것은, 괜한 신중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문제는 찬스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풀 기회조차 넘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기회는 사라지고, 끝이었다.


나는 장학퀴즈 출연을 통해서 삶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때는 무조건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서의 혹시나는 정말 혹시나가 아니라, 그 혹시나가 떠오를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찬스를 사용해 맞추었던 문제의 정답은 '쿠르드족'이었다. 정확한 카테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민족'이었던 것 같고, '중동', '이라크' 등의 단어를 들었을 때, 정답은 '쿠르드족'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를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긴 말을 부연한다. '민족'이라는 카테고리라고 해서 '한민족'을 떠올릴까봐서. 그러나 더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다. 기회는 한 번 오고, 사라지고 나면 그뿐이었다.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는데, 이때의 일이 어떤 연결고리가 되었는지 이후로 나의 모교는 매해 장학퀴즈에 출연자를 배출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던 후배를 찾아가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자세에 대해 과외를 해 주고는 했다. 정말 꼰대도 그런 꼰대가 없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다들 도움이 되었다며, 소감을 말할 때 늘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는 했다. 분량 문제로 내 이름은 3년에 걸쳐 3회 모두 편집되었지만.




인생이란 신비한 것이어서, 같은 기회는 오지 않지만, 다른 기회는 돌고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다른 작은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또 다른 퀴즈쇼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니 신청하였다. 무려 20년 전이지만 한 차례 퀴즈쇼 출연 경험이 있는 내게 새로운 퀴즈쇼는 물 만난 물고기와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2인 1조로 출연했던 이 퀴즈쇼에서 우리 팀은 인원 구성조차 좋았다. 내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필 함께 출연한 후배는 이과 전공이었고, 문과와 이과 각각 1명씩으로 구성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왕중왕까지 도달했다. 20년 만의 한풀이였다.


그런데. 2회전쯤이었을까. 우승은 우리가 했지만 2위를 한 팀은 강한 아쉬움을 표했다. "아, 나도 그 문제 알았는데. 조금만 더 빨리 눌렀어야 했는데.", "그 문제만 우리가 맞췄다면 우리가 우승인데." 우승한 사람의 마음은 여유롭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는 여유 있게 웃어 넘길 수 있었지만, 그런 아쉬운 반응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아, 이 분들은 자신이 맞힌 문제를 내가 아깝게 놓쳤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시는구나.'


무려 20년만의 깨달음이었다. 그랬다. 20년 전에 나는 안타깝게(?) 장원을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내가 아쉽게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다른 문제들만큼이나, 다른 친구들도 내가 맞춘 문제를 아쉽게 놓쳤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나의 입장에서 내가 가졌던 아쉬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쿠르드족'은 나만 아는 문제였다. 반면 '말라카 해협'은 내가 먼저 아는 문제였는데, 아쉽게도 버저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무려 지난 20년 동안. 그런데 내가 우승자가 되고 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그때 장원한 친구도 '쿠르드족'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버저를 누르기 직전, 내가 먼저 눌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내가 맞춘 문제는 당연한 문제로, 맞추지 못한 문제에 대한 아쉬움만 떠올리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승자에게도 숱하게 맞출 수 있었지만, 누르지 못했던 아쉬운 문제가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그 모든 아쉬움을 덮을 수 있는 '우승'이라는 결과가 있었을 뿐.




그날, 나는 지난 20여 년의 아쉬움이 깨끗이 씻겨져 나가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2회전에서 우승했기 때문도, 수십만 원의 상금을 획득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비록 준우승팀에게 '저도 아까 그 문제 아는 거였거든요?' 라고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20년 동안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줄 알았던 정답을 사실은 어쩌면 다른 친구들도 모두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이제 나는 안다. 다른 출연자들도 정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 있게 버저를 누르지 못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적당히 쉬운 문제를 출제해야만 시청자들도 흥미를 가지고 본다는 사실을. 더해서 20년 전에도 깨달았던 사실을 하나 더 말한다면, 시청자에게는 퀴즈쇼가 더욱 쉬울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는 방청객이 없고, 틀려도 부끄럽지 않으며, 무엇보다 출연자보다 먼저 자막으로 문제를 모두 읽을 수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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