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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n 14. 2020

죽기 전에 열 번이나 보겠냐

내 경우에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으려다가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편이다. 물론 나도 사람이다 보니 같은 사람이 서너 번 계속해서 약속잡기를 거절하면 '이 사람이 나 만나기를 싫어하나?'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두 번 정도 거절당한다고 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괜한 생각과 걱정으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사람들을 꾸준히 그리고 자주 만나는 편이다.


얼마전 만난 선배 A로부터 B선배 어머님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내가 살면서 B선배를 본 것은 아마 열 번 남짓이나 되려나. 함께 식사한 적도 한두 번. 그래도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왔기에 만약 내가 그 부고를 직접 전해 들었다면 인사를 갈 수도 있었을테지만, A선배로부터 부고를 들었을 때는 이미 상을 치르고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야 그렇게 대답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A선배와 B선배는 대학 동기로 벌써 스무 해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살면서 모르고 지냈던 날보다 알고 지낸 날이 더 많은 동기 사이. 물론 둘은 일하는 곳이 달라 이제는 자주 만나지 못한다. "당연히 다녀오셨죠?"


서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살았던 두 선배는 이제는 이렇게 부고나 있어야 만나는 사이가 되었지만, 대학을 다닐 때는 하루에 밥을 두 번 같이 먹는 날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했다. 마침 같은 전공에, 대학원으로 진학해서도 두 사람은 비슷한 전공을 선택했고, 심지어 두 사람 모두 군대도 늦게 다녀왔다. 어머님의 부고를 전해 듣고 만난 친구와는 얼마만에 만난 것이었을까.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내가 이제 걔를 죽기 전에 열 번이나 보겠냐."


사람이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두 선배. B선배에게는 가정이 있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두 사람은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지도 않고, 이제는 정말 서로가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는 다음에야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경사도 거의 없을 것이고, 이렇게 다른 누군가의 집안에 부고나 있어야 만날 수 있는 사이. 하물며 이번에는 B선배의 집안에 부고가 있었기에 만날 수 있었지만, 다른 집안의 상례인 경우 방문하는 날짜가 다르다면 "언제 갈 거냐?", "아 나는 오늘 다녀왔어." 이렇게 전화로 인사를 대신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학사장교로 군대를 간 나는, ROTC 후배들이 먼저 전역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부대 현관 앞에서 정말 한 말의 눈물을 흘렸다. "아니, 선배가 이렇게 울고 있으면 우리가 가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전역의 기쁨 속에서도 함께 서운해 하던 후배들을 볼 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헤어짐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또 금세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말의 눈물을 쏟았던 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일상을 같이하지 않겠구나' 하는 데서 오는 슬픔이었다.


군대라는 곳의 특성상 후배들과 나는 2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 끼를 같이 먹기 일쑤였고, 대체로 많은 회의에도 같이 참석했으며, 식사시간 중간에도 심심하단 핑계로 서로의 사무실에 놀러가 같이 커피를 타 마시고는 했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만나고, 연락하고 지내겠지만 그렇게 서로 함께해 왔던 일상은 그 날이 마지막일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예전처럼 같은 관심사도 없겠지. 더 가깝고,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에게 '우리 부대'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 날이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사람의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 내가 군대 후배들과 떨어지게 된 것도, A선배와 B선배가 이제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인생의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에서 한때의 아주 중요한 부분과 시간을 같이했던 사람과 멀어져 서로에게 소홀해진다는 것이 어찌 기쁜 일이랴.


그날 나는 A선배에게 다음에 A선배를 모시고 B선배를 만나러, B선배가 있는 C도시로 우리 같이 놀러가자는 제안을 했다. A선배도 반색했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게 결국 또 그렇게 되었다. 서로의 삶이 바빠서, C도시로 놀러가려던 일은 연기되었고, 지금은 우리가 언제 그런 약속을 하기는 했었나 싶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A선배나 B선배보다 아직 어리고 젊지만, 그러나 우리가 한때의 일상을 공유했던 사람과 멀어지고 떨어지게 된다는 삶의 법칙마저 다르지는 않다. 내게도 숱하게 '죽기 전까지 우리가 열 번도 채 만날 수 없을지 모를' 친구들이 많이 있다. 오늘, 당신과의 만남이 앞으로 내 삶에서 10번도 채 남지 않은 기회라고 생각하니, 당신에게 좀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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