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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n 24. 2020

사람에 대한 이해

비가 내리는 오늘,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작스레 앞쪽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끼어들었다. "우쒸!" 아무래도 빗길이라 그럴테고, 오토바이다 보니 점검 같은 것을 등한히해서 더 그랬을 것 같은데, 오토바이는 미끄러지듯 정말 위험하게 끼어들었다. 최근 사고를 낸 적이 있는 터라 상당히 조심하면서 운전하고 있어서 별일은 없었지만, "우쒸!"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앞쪽으로 끼어든 오토바이는 날렵한 차체를 활용해 신호 대기 중에 다시 몇 대 앞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얼마간 조금 더 갔을까. 앞쪽의 오토바이로 인해 차선에 갑작스레 일시 정체가 생겼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 환경이었던 데다가 다른 주문이 왔는지 오토바이 운전자는 계기판 위에 달린 휴대전화를 연신 눌러 대고 있었다. 정말 위험한 광경이었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 짜증 나는 모습이었다.


운전을 하면 사람이 예민해지기 쉽다. 특히 서울처럼 정체가 심한 곳에서는 더 그렇다. 잘은 모르겠지만, 오토바이를 추월한 수많은 차량이 아마도 그 오토바이를 보면서 속으로 비속어와 감탄사를 내뱉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누군가는 창문을 내리고 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때는 업무 때문에 오토바이퀵을 자주 불렀다. 오토바이퀵 가격만큼 자본주의적인 것이 없는데, 봄가을에 날씨가 좋을 때는 단가가 정말 싸다. 이 가격으로 사람을 불러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들 만큼. 그래서 나는 소개업체에서 요구하는 금액에서 항상 1천 원씩을 더 높여서 사람을 찾고는 했는데, 그럼 더 금방 찾아진다. 그렇지만 1천 원을 높였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높은 금액은 아니다. 내가 몇 차례나 계산기를 두드려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상황이 바로 달라진다. 그런 날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해서 운전하시는 분이 적고, 또 적지 않다면 찾는 이가 훨씬 많은지 맑게 개인 날보다 금액을 훨씬 더 불러도 사람을 부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마음은 영 불편하다. 이런 날씨에 우의를 입고 배달하시는 분은 오죽 힘들겠는가.


오토바이퀵의 경험 덕분에 나에게는 오토바이 운전자분이 새삼 달라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오토바이 운전자분은 지금 일하시는 시간이 아닌가. 나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급여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요즘 같은 객이코노미 시대에 오토바이퀵 기사분들처럼 본인이 일한 건수만큼 수수료를 받는 구조일텐데 당연히 마음이 한시가 바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운전하긴 불편했을텐데 아마도 주문은 더 많이 왔으리라. 이렇게 좋지 않은 날씨에 일해야 할 정도로 의지가 굳거나, 아니면 어려움에 처했거나 하는 상황일텐데 그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바쁘고, 위험하게 운전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래도 안전하게 운전하는 게 더 좋고 중요하긴 하겠지만.


사람이란 본디 자기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타고나지 않았나 싶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70억 인구에게 모두 각자 다른 사정이 있을텐데, 내가 그 70억 명의 삶을 모두 경험해 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심지어 해 봤다고 쳐도, 다른 사람이 그 경험을 했을 때의 사정은 내가 경험했을 때와는 분명 또 다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많이 부딪치고 깨지고 만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밖에 못할까?"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런데 문제는 상대도 같은 생각이라는 점이다.


"나는 얼마전에 사고도 나서 엄청 조심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운전할까?" 처음에 내가 했던 생각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 오토바이 운전자는 나의 이런 상황을 어찌 알겠는가. 오히려 사정을 생각해 줘야 하는 사람은 내 쪽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나는 비 오는 날씨에 뚜껑 덮인 차 안에 있어서 비도 맞지 않고, 좀 더 편안하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그렇게 시급을 다퉈서 무언가를 해야 할 정도로 급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나는 오토바이퀵을 수십, 수백 차례 이용한 사람으로서 그래도 저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삭막한 세상에서 이렇게 서로의 사정을 조금 헤아려 이해하다면 우리 사회에 다툼은 얼마나 줄어들고, 우리 삶의 만족도는 또 얼마나 높아질까 싶었다. 하긴 모두가 그렇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사람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또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이겠지. 오늘은 특별한 경우고, 실은 나도 늘 내 생각만 하기 일쑤다.


"아니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저렇게 행동하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사람마다 상식은, 사정은 모두 다를텐데.




사족. 성인군자가 된 것마냥 글을 써 놨지만, 요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영 좋지 못하다. 특히 오늘은 사무실에서 팀장님과 극도의 감정 싸움을 벌였다. 아마 한동안 이어지지 싶다.


어쩌면 이게 더 우리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말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우리는 참 멀고 먼 남과의 사정은 그래도 오히려 헤아려 줄 수 있으면서도 가까운 사람의 사정은 참 이해하지 못한다. 생판 모르는 남은커녕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 잘 이해해도 세상이 참 평화롭고 행복할텐데. 그게 도통 웬만한 마음 먹기로는 영 되지 않는다. 내일도 아마 사무실에는 찬바람만 가득 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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