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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l 01. 2020

저는 오늘 노조를 탈퇴합니다

저는 오늘 노동조합을 탈퇴합니다. 이미 누차 저의 의견을 밝힌 바 있고, 또 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노조를 탈퇴할 수도 있다고 말해 왔기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놀라셔도 좋습니다. 저는 잔잔한 노조의 활동에 충격을 던지고 싶었거든요.


K팀장님이 싫어서 노조를 탈퇴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말씀드린다면 결코 그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는 K팀장이 싫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어제부로 정년을 하신 분이라 더 이상 노조원도 아니고, K팀장이 싫어서였다면 진작에 노조를 나갔어야 옳고, 오히려 지금 노조로 돌아와야 맞겠지요. 다만 저는 K팀장님의 정년 연장 건에 대해 다른 노조원들과 너무나도 생각이 다르다는 간극을 느꼈습니다. 절대 좁혀지지 않을 거리를요. 그리고 어떤 분은 다른 생각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으며 다른 노조원들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조를 나가야겠다고까지 결심한 것입니다.


어쩌면 변호사협회, 의사협회, 경영자총협회 같은 것들처럼 노동조합도 하나의 이익단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K팀장이 정년을 다하고도 오히려 회사를 더 다닐 수 있게 된 것이 좋은 일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겠죠. 실제로 어떤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요. 그리고 수많은 이리와 승냥이떼 같은 50대 직원분들이 지금 기대에 찬 눈빛으로 K팀장의 재임용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저는 모르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이렇게 해서 정말로 정년도 늘어나고 회사를 더 오래 다닐 수 있다면, 어쩌면 저에게도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요.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저에게도 더 이익이 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한국이 지난 80년대처럼 매년 10% 이상의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고, 그래서 일하는 사람을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면요.


저는 한국사회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혜택이고 축복이며, 하나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일찍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할 만 60세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엄청 축복받은 것이죠. 그런데 거기에서 굳이 몇 년을 더 일한다? 우리가 일할 청년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데? 백 번 양보해서 코로나19 사태만 없었어도 저는 K팀장의 정년 연장을 이렇게까지 고깝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19로 수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사연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K팀장에게 자녀가 13명씩 있고, 부양해야 할 부모님과 형제가 10여 명에 달해서 정년까지 일했음에도 당장 일을 손에서 놓는다면 모든 가족이 굶어 죽을 처지다 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원칙에는 예외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K팀장은 그런 처지도 아니잖습니까. 결국 지금 회사를 더 다니겠다는 것은 개인적인 욕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본인도, 그리고 우리 회사의 모든 동료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 회사에 다니지도 않는 젊은이들 때문에, 다닐지 안 다닐지도 모를 청년들 때문에, 지난 5년을 함께 지냈던 K팀장의 정년 연장에 반대하면서 노조를 탈퇴하느냐고요? 이 부분에서 저는 생각이 다르다는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네요. 여러분은 우리 노동조합, 우리 지부에 함께 소속된 구성원들의 이익과 연대감이 더 중요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닙니다. 저는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에 속해 있지 못한 모든 노동자들과의 연대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예비 노동자들까지요. 그래서 지금 정년까지 회사를 다닌 어떤 분의 기득권보다 저는 지금 절박하게 일자리를 외치고 있는 젊은 청년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고, 그 청년과 더 연대감을 느낍니다.


제가 노조에서 집행부를 맡고 있는 것도 아니고, 노조원이 20명도 훨씬 넘는 노조원들의 의견이 있으니 제 의견대로 노조가 움직이고 의견을 냈어야 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K팀장의 정년 연장은 노동자에게 손해가 되는 일도 아니요, 인사 문제라 회사 측에서 그렇게 결정하기로 했다면 어쩔 수 없겠죠. 다만 제가 원했던 것은 노동조합에서 이 일의 부당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거였습니다. 결정은 회사에서 내리더라도 노조에서 잘못된 일은 잘못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했고, 제가 바랐던 것은 딱 그 의견까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노동조합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50대 직원들은 아마 이것이 좋은 선례가 되어 자신들도 나중에 암묵적으로 정년 이후에 회사를 2년, 3년씩 더 다니고, 더 나아가서는 정년이 연장되기를 바랐겠지요. 40대 후반 직원들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젊은 직원들은 무관심했고, 또 이 문제에 괜한 목소리를 내어 나이 든 직원들과 다툼이 생기길 원하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저는 아닙니다.


한국의 청년 고용 문제를 우리 회사에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매년 직원을 뽑는다고 해도 2~3명에 그칠테고, 또 실제로 이렇게 누군가가 정년을 넘어 회사를 더 다닌다고 해도 잃게 될 젊은이의 일자리도 1~2자리뿐이겠죠. 그러나 우리 회사에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더 나쁘게 만들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 한국에서 왜 노동조합이 비난받는지, 대기업 노조들이 욕을 먹는지,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일체감을 가지지 못하는지 정말 모르나요. 바로 우리 회사의 이런 작태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다른 50대 직원들이 정년 연장을 공론화하고, 회사를 더 오래 다니려고 한다면 저는 아무도 동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최선을 다해 막겠습니다. 저의 목소리가 이 회사에서 아무런 외침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외치겠습니다. 당신들의 바람은 탐욕일 뿐이라고요.


내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노동조합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노동조합은 저만의 꿈이었을뿐일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노동조합을 탈퇴합니다. 이익단체가 아니라, 노동, 고용에 진정성을 가진 노동조합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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