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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Dec 21. 2021

결혼하고 5년만에 받은 뜻밖의 생일선물

'우리는 정말 참 안 맞는 것 같아. 그치? 근데 왜 결혼하기 전엔 몰랐지?'

'몰랐어? 나는 그때도 우리가 참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내 생일을 맞아 뮤지컬을 보기로 하고, 저녁으로는 가까운 백화점에서 초밥을 먹던 중이었다. 곁다리 메뉴를 하나 더 시켰는데, 그중 절반을 먹은 부인이 내심 더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더 먹어도 돼. 뭘 이런 걸 눈치를 봐' 기뻐하면서 한 젓가락을 더 먹는 부인의 모습에 한마디를 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러면 내가 엄청 나쁜 남편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부인은 꼭 눈치를 봐야 할 건 안 보고, 이상한 데서 눈치를 보더라' 그런 뒤에 나온 말이 바로 저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참 안 맞는 것 같아'


말 속에 뼈가 있다고 실은 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내가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을 챙겨 준 것은 결혼하고 나서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우리는 내 생일에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때우곤 했다. 충격적인 것은 아내가 여행지에서조차도 내 생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아, 오늘 남편 생일이었어?') 조금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고 나는 이번에는 내 생일을 온전히 보내고 아내 생일에 여행을 떠나는 쪽으로 기획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편이 내게도 더 편할 것이다.


어찌 보면 온전히 우리의 생활 반경에서 처음 보내는 생일인데 아내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내 경우를 돌이켜 보면 아내의 생일엔 뭘 사 줘야 하나, 뭘 먹으면 좋나,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었다. 미리 아내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는 도통 그런 게 없었다. '남편 뮤지컬 보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 알면, 좀 알아서 적당히 예약이라도 하던가. 결국에는 뮤지컬도 내가 골랐다. 뮤지컬이라는 게 배우에 따라 예매 결과가 천차만별이라서 우리는 남는 시간이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실은 이것도 기분이 썩 별로였다. 저녁 메뉴도 식당도 내가 골라야 했다.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친구들에게도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엄청 떠들고 다니니까.(저는 한우 채끝등심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는 눈치란 실은 이런 것인데.


결국 그날 사진 않았지만 아내가 생일선물을 사 주겠다며 가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나는 산책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고, 그래서 등산도 꾸준히 가는데 아내는 걷는 것을 싫어한다. 결혼 전에는 몰랐다. 같이 산책한 적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아내가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해서 그런가. 이제는 걷는 것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날도 그렇게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피곤하다고 했다. '내 생일이라고'(실제 생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우리가 안 맞는지) 전혀 몰랐어. 그런데 (안 맞는 줄도 알면서) 부인은 왜 결혼했어?'

'그냥 뭐. 다들 안 맞으면서도 그냥 결혼하는 거 같던데'


그런데 다른 의미에서 나는 이 날 좋은 생일선물을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와는 참 맞지 않는구나', '우리는 왜 같이 살까', '나는 결혼을 잘못했네', '너무 후회된다' 이런 생각들. 그런데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 날은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아내는 처음부터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나는 우리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작년에서야 겨우 알았는데. 그럼 그 전 3년 동안 아내는 나에게 맞춰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겠구나'


정말 몰랐다. 아내와 내가 그렇게 맞지 않는 . 처음에 결혼하기 전에 나는 우리가 대화도  통하고 이럭저럭 맞는  알고 속아서 결혼했다. 그런  알았기에 종교라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음에도 아내와 결혼했던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사실 우리는 요즘 대화도 거의 없다.   아내는 말했다. '우리는 말도  통하잖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내는 예전 3 동안 대화 코드가  맞지도 않는데 내게 맞춰  것이었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고.




대화도 생활도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를 정말 피곤하고 지치게 한다. 지난 8월의 일이다.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가서 3박 4일을 보내는 와중에 아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 '하루 정도는 따로 있어야 하는데, 그치?' 7월에 제주도를 갔을 때는 내가 한라산을 올라가느라 하루를 온전히 따로 보냈었다. 8월에도 한라산을 갈 생각이었지만 그 전달에도 다녀왔는데 너무 귀찮았다. 싸우진 않았지만, 온전히 3박 4일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서로가 지치고 힘들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내도 서로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확신이 없다. 아마도? 우리는 어찌 보면 거의 '거주공동체'처럼 살고 있다. 서로 특별한 잘못(?)은 하지 않고 살고 있으니 어쩌면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 사람과 같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미래가 무척 기다려지거나 애틋하거나 하진 않다. 실은 나는 이런 생각이 들면 무척 슬프고 결혼생활이 실패한 것 같아서 때로는 너무 서럽기도 하다. 다른 방면에서의 인생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가장 성공하고 싶었던 결혼생활마저도 실패라니.


그러나 나로 하여금 지금 당장 아내와 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깨달음이다. 우리는 잘 맞지 않으니까 어쩌면 더 일찍 헤어져서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냥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미 결혼해서 같이 사는 부부이다 보니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둘 깨닫는다. '아, 그때 그 사람이 정말 많은 노력을 했구나', '고마워 할 일이다' 이런 것들. 물론 그 많은 것들은 나의 추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화목하게(?) 살 수 있을까 염려도 된다만 적어도 그 기억들이 유효한 기간 동안은 섣불리 이 사람과 헤어지지 못하겠지.




나는 다음 생에 대한 계획을 정말 많이 세우는 편인데 (심지어는 다음다음 생, 다음다음다음 생, 그다음다음다음 생까지도) 그것은 결혼생활을 겪으면서 인생이 너무나도 처음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다. 누구나 다까지는 아니겠지만 결혼생활은 처음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조차 너무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면이 적지 않아 있다. 우리 부부는 다른 많은 부부와는 다르게 아내가 엄청 무던한 편이고(무던하다기보다도 심지어 무심한 편) 나는 상당히 많이 예민한 편인데(누가 보면 내가 그림을 그린 줄) 그것도 어쩌면 아내는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에서 결혼생활을 겪어봤고 나는 정말 이번 생이 첫 결혼이라서 그런 줄도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나날이 생각지도 못한 놀라움과 배움, 당황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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