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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09. 2022

어떤 돼지의 인생

지금 시간이 거의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으니, 새해가 시작하고 두 번의 주말이 지나갔다고 보아야 옳다. 그 두 차례의 주말을 결산하는 데에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분명 '무기력', '나태', '허무' 따위일 것이다. 지난 2주의 주말에 걸쳐 4일 동안 내가 한 것은 거의 없었다. 무기력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필요하지도 않은 낮잠을 자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그렇게 허무하게 소모했다. 그렇다. 물론 모든 시간을 알차게 보낼 필요는 없다. 사람에게는 휴식과 재충전도 필요한 편이니까. 그런데 내게 정말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했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아니다. 나는 필요하지도 않은 휴식과 재충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이미 100%에 초과 충전되어 있는 휴대전화를 계속 코드에 꽂아놓았던 셈이다.




오늘은 첫 직장 동기가 점심을 사 주기로 해서 멀리 안양까지 다녀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다녀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가는데 1시간, 오는데도 또 1시간이다. 내가 정말 시간을 금처럼 쓰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정은 결코 잡지 않았을텐데, 도리어 나는 반가웠다. 새해 두 번의 주말 동안 집에 늘어져 있다가 거의 유일하게 있는 일정이었던 까닭이다. 곰곰이 돌이켜 본다. 예전의 나도 주말을 항상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지는 않았었다. 돌아 보면 20대 때부터 대부분의 주말 시간을 사람들을 만나서 소비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최소 3개 이상의 약속이 있었던 나다. 어찌 보면 그것 또한 정말 소모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다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내게 오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내가 술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아닌 다음에야.


그런데 결혼을 하고, 또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고(이곳은 서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심하게 외곽이다. 내가 시내에 갈 때 버스를 타는 정거장은 경기도에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과거의 그런 습관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직 히키코모리(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사람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니깐)라고 할 수준은 아니긴 한데, 이젠 그냥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집에 늘어져서 보낸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맞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내 경우에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가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다. 오죽하면 왕복 2시간을 걸려서 친구를 만나고 왔겠는가.(친구가 한우를 사 준다고 해서 갔던 것은 안비밀)




지난 몇 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었는가를 돌이켜 본다. 그러고 보니 불과 2년 전까지도 나는 학생이었다. 이렇게 나태할 주말이 별로 없었다. 5년 전부터 4년 전까지는 MBA를 다녔고, 3년 전부터 2년 전까지는 대학 학부에서 다시 공부했다. 코로나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계속 학적을 유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실은 그 전의 삶도 학업에서 크게 멀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로 MBA에 입학하기 한 학기 전까지 나는 계속 석사과정생이었으니까.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보낸 첫 봄과 여름의 주말도 석사논문 준비로 바쁘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주말이 뭔가. 평일에도 휴가를 내고 가서 논문 준비를 했었으니.


실은 그래서 세 번째 학부 공부를 마치고는 박사과정 진학을 고민했었다. 학교도 미리 알아봤다. 그런데 한 번 쉬어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심은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그냥 박사과정에 진학했다면 코로나19로 학교는 가 보지도 못하고 등록금만 날릴 뻔했으니.(수료가 목표라면 아니겠지만) 그런데 쉬어 가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이제는 나태함이 익숙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다시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까먹었다. '공부를 꼭 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있다.




쓸데없는 조언을 한 마디 하자면, 이래서 직업을 잘 선택해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면 이렇게 나처럼 꼭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한다거나, 다른 공부를 해야 한다거나 찾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회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취미생활이 아닌 다른 무언가 또 생산적인 활동을 꼭 주말에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근데 나는 아니다. 내 인생을 이 거지 같은 좋소기업과 3D업종에 거는 것이 너무 싫고, 그것만 생각하면 너무 혐오스럽다. 그 정도인데 회사와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늘어나는 것은 냉소뿐. 결국 다시 또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회귀하고 만다.


오늘 만난 친구는 재테크를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로 일정 정도의 성과도 거두었다.  친구 외에도  주변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친구들이 적지 않아 있는데, 그동안에는  그런 의문이 있었다. '아니, 돈이 삶의 목적도 아니고, 살기에 적당한 만큼만 있으면  많이는 필요하지 않을  같은데,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는 거지?' 그런데  주에 걸쳐 주말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다 보니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다른 특별한 목표와 목적이 없다면,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보낼 시간에 자산이라도 쌓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미 가족도 이루었고, 자신의 일도 있고 하고 나면, 나처럼 피터팬의 꿈을 찾듯 다른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찾는 경우는  없고, 그렇게 열심히 돈을 쫓는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오늘 친구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돈을 쫓는 사람은 아니다.(그렇다고 싫어한단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후원해 주실 분은 언제든지 환영.) 그럼 다른 명확한 꿈과 목표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두 달 전, 첫 직장 사수분이 회사를 그만두시고 우리 회사 근처로 놀러오셨었다. 평생 그 회사에서 그 일만 하지 않고, 자신도 새로운 일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고 싶었다고 하셨었는데, 몇 번의 주말을 허무하게 보내고 나니, 그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지 이제 이해가 된다. 어느덧 반평생을 살았다. 제대로 된 꿈과 목표를 세우지 못해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도 그렇게 허무하게 마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차분하게 다시 계획해 보아야겠다. 지금 내가 늘어져 있고, 나태하다고 해서 너무 서두르며 찾지 않고. 이제는 정말 마지막 계획일 수 있으니.


새해에는 돼지의 인생이 아니라 돼지띠의 인생을 살자.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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