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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r 28. 2022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 온다

세상에는 기회와 관련한 다양한 말이 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는 온다'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삽십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는 그런 불안함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인생에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소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마 어떤 것이 내게 찾아온 세 번의 기회였는지는 비로소 죽기 전에야 알 수 있겠지.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직 내게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 온다며 늘 준비와 대비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찾아와도 잡지 못하고 놓치게 된다고 했다. 이 점이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는 편이었다. '준비한 사람만 잡을 수 있으면 그게 무슨 기회인가. 그건 그냥 그 사람의 노력의 대가지'. 기회를 잡으려면 준비를 해야 하는가, 준비하지 않은 사람도 잡는 것이 진정한 기회인가 라는 선택지 사이에서 나의 대답은 늘 뒤쪽이었다.


학위를 다섯 개나 따고 늘상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주저하고 두려워하지 않았던 내가 기회를 잡기 위한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다만 체계적이고 꾸준하게 노력했었던가 묻는다면 그 점에는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어찌 보면 실상 나는 늘 요행을 바라는 쪽이었다. 그래서 내 주위 사람들을 달달 볶았는지도 모른다. 왜 나에게 복을 주는 사람이 되지 않느냐며.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을 정도로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어쩌면 내가 20년, 아니 1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올해에서야 불혹이 된 아직 사회적으로는 평균 나이 이하의 후속 세대다. 이미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석사학위자가 강의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법학 교양수업 한 과목을 석사학위만 있는 분에게 들었었는데, 그분은 현직 변호사였다. 아마 현직 변호사라는 메리트가 예외적인 사유를 허락해 주었을 것이다. 3학년에 올라가자 우리 학교는 박사학위자만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강화했다. 학위수여자는 넘쳐나는 반면, 강의는 한정되어 있었다. 석사만 따면 교수도 할 수 있고, 강의는 실컷 할 수 있었던 선배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나는 자랐고 그것에 의문을 품은 적도 없다. 이미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박사학위자만 강의할 수 있는 학교를 다녔었으니.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꿈까지 꾸지 말란 법은 없지 않는가. 늘상 나는 대학 강단에 섰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잘 가르칠 자신도 있었다. 그러던 중 모 대학은 강의 자격요건이 다소나마 까다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사수료자라면 무조건 강의를 할 수 있었고, 석사학위자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강의를 할 수 있었다. 큰 돈을 벌지 못해도 좋았다. 서울이 아니라도 되었다. 그렇게라도 강의를 하고 싶었지만 '일정 요건'이라는 것은 보기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어서 내가 거기에 해당이 될지 안 될지는 모호했다. 한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작년 말에 어떤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아니 억지로 내가 찾아갔다고 해야 옳다. 강의를 바라고 인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멀리서 일하지 않으니 인사나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나 또한 석사학위를 받았기에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같이 알고 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그렇게 인연을 만들었다. 누구 누구를 알지 않느냐며,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고. 그러나 그래봤자 두세 번 본 사이였다. 식사는 몇 주 전에야 처음으로 한 번 했다. 그때 우연히 강의 이야기가 나왔다.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알아보겠노라고 답해 주셨다. 대신 격오지라고 해서 안 간다고 하면 안 된다는 유쾌한 조건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자신이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이번 학기에도 강의를 줄 수 있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셨다. 그래도 좋았다. 1년만 더 기다리면 나도 꿈에 그리던 강의를 할 수 있게 된다니. 39년을 기다렸는데, 1년이 문제겠는가.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쉽게 올해에는 강의를 줄 수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뒤 고작 며칠 사이에 강사 한 분이 강의를 못하게 된 것이다. 교수님께서 한 강좌밖에 맡기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일단 올해에 이 강의를 맡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오셨고, 학과 사무실의 조교도 여러 가지 서류를 요청했다. 비용을 내어 증명서를 발급받고, 새로 이력서를 고쳐 가면서 서류를 만들어 내고 며칠. 결과적으로 나는 이번에도 자격 미달로 강의를 할 수 없었다. 교수님께서 어떻게든 되는 쪽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쓰셨지만, 알고 보니 석사학위자는 강의를 하려면 단과대학장의 승인까지 얻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무리였다. 더구나 조국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 공정의 기준이 무척 높아져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곤란에 처할 위험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강의를 깨끗이 포기했다.


일시적인 포기가 아니라 정말 마지막 포기.




그간 나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기회는 진정한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준비가 되었다면 그만큼 노력한 까닭에 보답을 받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고 나서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이렇게 끝없이 노력을 해 주었다고 해도,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기회는 결국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의 강의를 기다렸던 사람이 많이 있었다.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아니라 나의 오랜 바람인 것을 아는 나의 지기들, 2년의 시간 사이에 강의상을 3회나 받은 선배는 내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어 했었다. 아내도 자신의 일처럼 반겼고, 동생도 축하해 주었다. 기쁜 소식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었던 만큼, 사람들은 모두 나의 강의를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강의를 할 수 없었다. 아마도 같은 조건이었다면 그 강의는 내게 왔을 것이다. 어찌 보면 특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겐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강의를 할 수 없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까닭에.


나이를 먹고 나니 하나 깨닫는다. 젊었을 때는 노력하면 무언가를 성취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나는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과도한 성취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보답을 받는 게 아니었다. 나는 미처 몰랐다, 이 사실을. 그랬기 때문에 노력한 사람은 당연히 그만한 보답을 받는 것이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도 찾아오는 것이 진정한 기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새삼 깨닫는다. 감사해야 할 만한 복받은 인생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노력한 만큼 보답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고, 준비되었을 때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모든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번다하고 어렵고 힘들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박사과정을 수료하면 강의는 할 수 있다. 기회는 지연된 것일 뿐, 아직 놓친 것은 아니다. 물론 그 번잡한 과정을 내가 모두 이겨 낼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리고 이번 학기에 정규 수업은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다른 후배로부터 전공 수업에서 특강을 한 번 부탁받았다. 지겹도록 나를 위해 뭔가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한 까닭이다. 마침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서 흔쾌히 (아마 나는 잘할 수 없는 분야였어도 하겠다고 했을 수 있지만) 하겠다고 했다. 이번 특강이 잘 된다면 매 학기 특강을 나가게 될 수도 있다. 반이라고 하기엔 좀 지나치다면 그래도 반의반 정도는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불혹을 맞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니 실제로 감사할 일이 많이 생긴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에도 이랬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불만과 불평 속에 모르고 있었을 뿐인지도. 내일은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니 아마도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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