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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Apr 30. 2022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두 개의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점심엔 시내 한복판에서 은사님을 뵙기로 했고, 그런 뒤에 김포에 사는 아는 형의 집에 놀러가기로 되어 있었다. 환경도 생각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름값도 너무 비싸다. 그런데 그 앞에 고려해야 할 건 나는 서울의 동쪽 끝에 살고 있다는 것. 비싼 주차비를 물고 시내 한복판까지 차를 끌고 가는 게 영 내키지 않긴 했지만 집에서 김포를 왕복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 다양한 주차 서비스를 알아보았다.


마침 내비게이션(길안내 도우미)을 켜자 [티맵주차]라는 서비스가 보였다. 하필 내가 SKT를 이용하고 있었던 까닭에 10% 할인쿠폰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더해서 이 서비스를 처음으로 이용하는 대신 할인해 주는 혜택도 있었다. 많은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내 차 번호도, 목적지도 등록해야 했고, 얼마나 머무는지도 체크될 터였다. 그딴 거 다 필요없었다. 만 원 정도 할인해 준다는데 못 팔 게 뭐냐. 마음 편히 먹고 목적지로 향했다.




시간권이 있었다. 만 원 짜리였는데 3천 원을 할인해서 7천 원에 구매할 수 있었고, 3시간은 넉넉하게 쓸 수 있었다. 선생님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다시 사무실로 모셔다 드리고 내가 차로 돌아오는 시간을 감안해도 충분하다 싶었다. 갑작스레 우리나라를 찬양하게 되었다. 세상에 시내 한복판에 7천 원이면 3시간을 주차할 수 있다니. 런던이나 파리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다만 조금 찜찜하기는 했다. 내가 이 서비스를 처음 써 본다는 것, 그런데 마침 쟤네(티맵주차)들도 베타서비스라고 내걸고 있었다. 나도 처음인데, 너네도 처음이야? 흠. 그렇다고 별일이야 있으랴 싶었다.


자, 선생님을 뵙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차를 몰고 나가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주차비가 16,000원이라고? 10분에 1천 원씩 2시간 40분에 해당하는 요금이었다. 이보시오. 나는 사전에 차량도 등록했고, 시간권도 이미 구매를 완료했다오. 뭔가 착오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차장엔 관리인이 없었다. 모든 게 무인시스템이었다. 벨을 눌러 관리인과 통화를 했다. 내심 '아, 오류가 생겼는가 봐요. 바로 출차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관리인은 '저희는 티맵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못 받았어요. 받은 대로 거기 체크가 되는 겁니다. 그쪽으로 문의하셔야 되고,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그나마 한낮이어서 출차하려는 차량이 없기에 망정이었다. 출차 통로를 막고 있어서 곤란한 상황이 생기진 않았으니. 이젠 당연히 티맵주차의 고객센터에 전화할 차례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찾아도 고객센터가 찾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한낮이라고 해도 나가려는 차량이 아예 없을 리는 만무. 중간에 나가려는 차량이 있어서 후진으로 다른 곳에 임시정차해야 했다. 그런 뒤에 다시 찾아보는데도 고객센터는 아무 데도 없었다. 문의할 내용이 있는 고객은 글을 남기면 답변을 준다고 했다.


이젠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사십이나 되다 보니 이런 것도 쉽게 못 찾는 건가 싶었다. 엉뚱하게 SKT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문의했다. 대기시간이 한 시간씩 나오면 어쩌지(아시아나항공과 통화하면서 실제로 겪어 본 일이다.) 걱정했지만 다행히 상담원과 금방 통화가 되었다. 상담원은 [티맵주차]는 상담원이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SKT 상담원은 그걸 몰라도 됐을텐데) 내가 알아본 것이 맞았다. 문제가 있으면 고객상담을 하고 답변을 기다려야 했다.


한시가 급했다. 주차요금은 점점 오르고 있었다. 김포까지 가야 할 길도 백 리 길이었다. 조금만 지나면 퇴근 차량들이 쏟아져 나와 걸리는 시간이 두세 배로 늘어날 터였다. 그게 아니어도 이미 약속시간에 늦은 상태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것이다. 이럴 때 포기가 빠르다는 것. 그냥 주차요금을 전부 내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한 2만 원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끝장나지는 않지 않겠는가. 물론 조금 억울하고 아깝기는 하겠지만. 그냥 주차요금을 내고 나가려고 했더니 그새 주차요금은 더 올라 있었다. 'SKT, 이 x 것들' 욕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주차장을 이용하는 건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의 결론은 해피엔딩이었다. 우선, 당일 나는 구입했던 시간권을 무사히 환불했다. 실은 그게 제일 아까웠다. 주차요금을 내고, 별도로 쓰지도 못한 시간권까지 구입한 셈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권을 구입하기 전부터 환불 요건을 꼼꼼하게 확인한 상태였는데 역시나 다행히 시간권은 환불이 되었다. 당일 구매한 것이어서 카드로 확인도 바로 할 수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사고에서 어처구니없이 부과된 요금 때문에 항의할 에너지 따위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나는 2만 원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 없다... 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심지어 고객센터에 문의글을 남기려면 휴대전화로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아직 만으로 30대였다. 따지는 글을 쓸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이 날의 주차요금을 전액 환불받았다. 7천 원의 주차요금은 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무료주차를 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해피엔딩이었다. 그런데...




나는 [티맵주차]에서 왜 상담원을 고용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주차라는 것이 알고리즘이 복잡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상담원이 있는 고객센터가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별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대 가면서 엄청난 민원을 제기할테고 그 인건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주차를 하고, 주차비를 부과하는 게 뭐 그리 복잡하단 말인가. 예를 들어 할인을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치자. 그냥 이용자가 선택하게 하면 된다. 복잡할 것 없다. 그러면 굳이 상담원이 없어도 되는 것이다. 모든 건 이용자의 선택에 따른 것이고, 회사에서는 그에 따른 요금만 계산하면 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세상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대한민국이 50명의 인구만 살아가는 나라라면 별다른 예외 없이 쉽게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상담원이 존재하지 않아도 업무가 처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나라는 무려 5천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다. 물론 기획자와 프로그래머는 많은 변수를 생각해서 완벽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모든 변수를 예측할 수는 없다. 당장 떠오르는 문제만 생각해도 그렇다. 입차할 때는 전기차 번호판을 이상없이 확인했는데 출차할 때는 그 번호판이 잘 인식되지 않는다면? (전기차 번호판은 바탕색이 달라서 일부 구식 기계는 인식이 안 된다.) 주차비를 할인받을 수 있는 유공자인데 유공자를 지정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확인이 필요하다면 어쩔 건가? 주차 일을 하지 않는 나도 몇 초 사이에도 여러 건의 문제를 생각해 낼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을 감안했을지도 모른다.) 자동으로 처리되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을 거란 말이다.


나도 가끔 고객센터의 상담원과 통화한다. 많은 경우 상담원들이 이런 경우 어디어디를 확인하라고 이야기해 주지만, 내 경우에는 그 모든 경로의 확인을 끝낸 뒤다. 가장 최근에 상담원과 통화했던 것은 아시아나항공에 예약했던 마일리지항공권의 여정 변경 및 취소 때문이었는데, 전산으로 그냥 하면 될 것 같지만 안 된다. 게시판에도 어떻게 처리해 달라고 남겨 놓았는데, 결국 상담원과 통화하라고 해서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사정을 듣더니 상담원도 이해했다. 심지어 지금은 안 되고 업무시간 중에 상담원과 통화해야 한다는 말까지. 그렇게 아직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아도 꼭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주차도 마찬가지다. 누가 주차비 때문에 주차장에서 고객센터에 글을 남기고 그 글에 답변이 달릴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하다 못해 항공권이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겠다. 30분 뒤에 출발할 항공권을 지금 구입하거나 거기에 문제가 생겨서 고객센터에 연락해야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테니. 그러나 주차는 대부분이 단기간에 단시간 이용하는 서비스다. 그런데 이걸 고객센터에 글로 남기라니... 번거롭게 한 덕분에 사람들은 알아서 여러 가지 방법을 확인해 볼테고 아마도 나처럼 그냥 주차요금을 내고 나오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터다. 그러면 회사는 좋다.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그런데, 이게 주차 서비스에 맞는 민원 대응 방법인가?


내게는 상담원으로 일하는 친구도 있다. 사람들이 아주 기초적인 매뉴얼도 읽어 보지 않고 쉽게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려는 경향도 짙어서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티맵주차]가 상담원을 고용하지 않는 것은 이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꼭 필요한 서비스가 있다. 사람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모든 고객이 다 그렇게 진상인 것은 아니다. 내가 그랬듯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알아보았는데도 어쩔 수 없어서 전화한 고객이라면, 이렇게 상담센터가 없을 때는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어쩌면 회사는 그럴 때마다 항의하는 고객에게는 그냥 전액 환불을 해 주는 게 더 비용이 덜 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다만 비용이 덜 드는 게 세상에도 꼭 더 좋은 건 아니다. [티맵주차]에 좋은 게 꼭 국민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닐 거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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