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est Jul 20. 2022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아침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임기가 8월 1일부터인데 너무 오래 발표가 안 난다 싶었다. 차라리 떨어졌다는 소식이라도 직접 들었다면 기분이 덜 나빴으려나 싶다. 낙선자에게는 별도로 통보를 하지 않는구나.


지난 6월 모 기관의 위원직에 지원했다. 마침 그 기관에 아는 사람도 있었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위원직 선발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도 했다. 추천 요건이 까다로웠는데 그것 또한 다행히 다른 아는 분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었다. 나이 마흔에 드디어 인생이 빛이 오는가 싶었다. 들어보니 추천 요건이 까다로워서 그런지 경쟁률도 그렇게 높지 않다고 했다. 추천해 주는 곳에 큰소리를 뻥뻥쳤다. 하긴 그래야 추천서를 받을 수 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낙방이었다. 막상 떨어지고 나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내 스펙이 너무 별게 없었다. 스펙을 쌓으려고 위원을 하는 건데 그것조차도 또 스펙이 필요하구나. 회사에서는 경력 있는 사람을 뽑고 싶은데 신입은 그래서 경력을 쌓을 수 없는 악순환. 그런 것과 비슷한 건가.




동생이 올해 모 기업의 사외이사가 되었다. 기업 총수의 친인척도 아니고 30대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외이사라니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동생이 그만큼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남부럽지 않게 스펙도 쌓았다.


스펙무용론이 통용되는 시대이지만 내가 창업을 할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 사람에게 어떤 이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 모든 곳에서 근거를 요구한다. 적당한 이력과 적당한 경력을 갖춘 사람만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나 스스로 회사를 만든다거나 유튜브 채널을 연다면 거기에는 스펙이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창업 경력과 유튜브 운영 경험도 모두 다 다음에는 스펙이 된다. 다들 실질적인 능력과 경력,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건 사람을 써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혹여 써 봤고 안다고 해도 스펙이 없다면 누군가 이의를 제기할 때 불리하다. '왜 걔를 쓰는데?' '능력이 좋아서요' 한마디 말로 능력을 증명하고 근거를 만들 수는 없다.


위원직에 지원하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추천해 준 곳도 작은 곳이 아니었고, 그 기관에 아는 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도 충분히 능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위원회가 열리면 가서 할 말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통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나의 어떤 경력과 이력을 바탕으로 그런 자신을 가졌냐고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고 비평의 시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걸 무슨 수로 증명할 건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친구가 선생님이 나눠 준 나의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더니 자기 것보다 너무 두껍다고 넌 뭐가 그렇게 많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싶었으니 그렇게 준비를 해야 했고, 부모님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항상 여기저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많은 경력을 쌓았다. 아직 스펙 열풍이 불기도 전이었는데 나는 문과생으로 유일하게 물리경시대회까지 나간 학생이었다. 입상도 했다. 한때는 그렇게 살았다.


진정한 사회생활은 대학에 입학한 뒤에 시작된다. 고등학교 때는 누구나 같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낸다. 엄청 유별나지 않은 다음에야 나만의 아주 특별한 나태함 같은 것은 성립할 수가 없는 환경이다. 그러고 보니 한 달에 딱 하루만 쉬었었다. 대학에 오니 모든 것이 자율이다. 물론 내가 관심 있어 하는 학문을 공부하고 좋아하는 과목을 들으니 교수님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고등학교 때처럼 뭔가 많은 경력을 쌓지는 못했다. 그래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고 그럴 시간에 놀고먹는 게 더 좋았다.


결국 그렇게 스무 살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뒤쳐졌나 보다. 아주 눈에 뜨이지는 않을 정도로.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지원한 위원직은 우리나라에서 단 10명에게만 허가되는 자리다. 안 되는 게 더 정상이지. 그냥 평범하게 산다고 생각하면 이게 뭐 그렇게 특별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지원할 '욕심'은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는 '자격'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스펙'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지난 세월 나의 나태함으로.


이 위원직도 나중에 다른 일을 할 때 또 다른 경력이 될 터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미리 또 이 위원직을 위한 이력과 경력을 준비해 두었어야 했다. 나는 지난 세월을 나태하게 보내면서 이걸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지난 세월의 나태함이 지금의 내 발목을 잡은 셈이고, 그로 인해 지금 쌓지 못한 이력은 또 훗날 내 삶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러려면 젊었을 때부터 미리미리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아는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다. 그가 도와준다고 해도 기회를 잡으려면 스펙이 필요하다.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겠지만 너무나 안타깝고 서운하다. 누구도 아닌 젊은 날의 나에게.

작가의 이전글 꿈을 이루다, 어느 대학 강단에 서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