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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21. 2022

통영일기: 열하루째.

고성에서 보낸 하루

# 승마 사흘째


놀랐단 얘기부터 해야겠다. [통영일기] 첫 편(첫째 날 이야기가 첫 편이 되어야 하겠으나 게을러서 중간부터 올린 아흐레째 날 편)이 다음 메인에 올라서 그동안 본 적 없었던 조회수를 기록했다. 역시 사진이 있었기 때문인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그 첫 편에 실은 통영 이야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뭐, 통영 이야기는 계속 많이 있을테니까.


아침에 일어나서는 시청에 먼저 전화를 했다. [통영애 온나] 3차에서 혹시 내 순서가 오지는 않았는가 싶어서. 이번 주가 지나면 전체 일정의 절반을 소화한다. 지원금을 전부 받지는 못하더라도 절반은 받고 싶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취소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 마침 이 브런치가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 5천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것도 자랑하고 싶었다. 그들에게도 실적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까지 내 순서는 오지 않은 듯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초조한(?) 마음으로 며칠 더 기다려 보자. 솔직히 하루하루 방값이 아깝기는 하지만. (차라리 그런 프로그램이 없었으면 모르겠는데 만약 지원금을 아예 못 받는다면 솔직한 마음으로 속은 느낌이 들 것 같은 기분이다. 예비자도 안 됐다면 모르겠지만서도.)




[통영일기] 첫 편에 썼던 것처럼 오늘은 승마장에 가면서 마음을 아주 다부지게 먹고 갔다. 이 승마장은 내가 그동안 국내외를 통틀어 본 적 없는 최고의 환경을 자랑한다. 완전한 실내여서 말을 자극할 요소도 하나 없고, 내가 평일 낮에 타는 까닭에 혼자서만 말을 타며 배울 수 있다. 건강을 비롯한 말의 상태도 아주 좋아 보인다. 그동안 다녔던 승마장 가운데 최고다.


나는 짧은 승마 경력에도 불구하고 무려 3회의 낙마 경험이 있다. 처음 말을 탔던 그날부터 바로 떨어졌고(이건 정말 내 잘못이 아니다. 거긴 그냥 관광승마였는데, 저 멀리서 어떤 말 한 마리가 흥분하는 바람에 내 말도 같이 흥분했던 거다.) 가장 최근에는 올 봄에도 낙마하고 말았다. 그래도 앞의 두 번은 몸이나 마음의 상처가 크지 않았는데 올 봄의 낙마는 신체 통증이 심해서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는 나조차도 병원을 갈 정도였고(결국 별 이상 없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 다 괜찮아진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한참 걸렸다. 그래서 승마장 환경이 중요하다. 지금 말을 타는 곳은 완전한 실내에 심지어 나 혼자 승마를 한다. 말을 자극할 요소가 정말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에서 말을 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여기서 승마를 배우는 게 실전에 큰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다가도 이런 모든 변수를 제거한 상태에서 먼저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욱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난 두 번의 승마는 조금 느슨한 마음으로 했었는데 그래서 오늘은 정말 다부진 각오로 승마장으로 향했다. 코치님이 주겠다던 채찍도 받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채찍을 들고서라도 연습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마음 먹었기 때문일까. 오늘은 승마가 너무 잘됐다. 그야말로 올해에 기승한 것 가운데 가장 좋았다고 할 정도로. 작년에 한 스무 번, 올해는 지금까지 벌써 한 스무 번 정도 말을 탔는데 작년에는 오늘처럼 탄 적이 있었지만 올해는 정말 처음이었다. 봄의 첫 승마부터 낙마를 했던 까닭에. 덕분에 코치님도 칭찬을 많이 해 주었다. 여기 있는 동안 좋은 환경에서 충분히 넉넉하게 잘 배우고 가야지. 내일도 또 승마를 간다. 한 주에 두 번씩 가려던 계획이었는데, 지난주에 한 번밖에 못 탄 까닭에 이번 주에는 내일까지 세 번을 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절반을 소화했네. 하긴 휴직 기간도 벌써 반이 넘게 지났다. 좋은 시간은 금방 간다.




인터넷 정보는 정확하다


점심으로는 그저께 이야기한 대로 한우국밥촌에서 돼지불고기 정식에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아침부터 기대가 컸다. 고기는 고기지. 역시 물에 빠진 고기보다는 불에 구운 고기가 더 맛있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우국밥촌 앞 주차장이 심상치 않았다.


한우국밥촌의 최고 장점 가운데 하나는 주차장이다. 국밥촌이 주차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래도 20대 이상은 너끈히 댈 수 있는 환경이다. 국밥이라는 음식이 먹는데 오래 걸리는 음식이 아니고, 함안면이 관광지로 엄청 각광받는 곳도 아니라서 이 정도면 아주 넉넉하겠다 싶었는데 차를 가지고 진입하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이게 웬일. 안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이 목요일이니 벌써 주말을 향해 가는구나 싶었는데, 화요일에 갔던 대구식당 앞으로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만약 오늘 먹으려고 했다면 먹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오늘은 대구식당이 아니라 그 옆의 시장국밥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시장국밥집도 만원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밖으로 대기 줄은 없으니 기다려봐야 5분이지 싶었다. 자신 있게 식당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돼지불고기 정식' 되나요 하고 물었는데, 안 판단다.


결국 오늘도 또 국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아예 같은 국밥은 아니다.


식당에 이미 들어간 게 부끄러워서 돼지불고기 정식을 팔지 않는다고 그냥 나올 수는 없었다. 결국 오늘도 또 점심으로 국밥을 먹었다. 그나마 화요일엔 아예 국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짬뽕을 먹었다. 대구식당에서 짬뽕이라는 메뉴를 보고 '중국 음식을 다 파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그게 아니고 여기서 짬뽕은 국밥에 국수와 밥이 모두 들어간 걸 뜻한다. 국물에 들어간 탄수화물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한우국밥(쌀만), 한우짬뽕(쌀 + 면), 한우국수(면만) 이렇게 세 개의 메뉴가 된다. 국물은 모두 같고. 아무래도 같은 국밥이다 보니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조금은 차이가 있다. 그냥 느낌탓이겠지만 내 느낌에 고기는 시장국밥이 더 많은 것 같았고, 대구식당은 콩나물이 더 시원한 느낌이었다.


불고기를 한 번 먹고 싶다, 정말로. 인터넷으로 시장국밥 메뉴를 미리 보았을 때 아무리 봐도 정식이 없길래 '없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식당 위에 크게 걸려 있는 현수막을 믿었는데. 요즘은 식당에 들러 리뷰를 쓰는 블로거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 정보는 믿을 만한 것 같다. 그걸 믿었어야지, 현수막을 믿다니.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번에도 역시 화요일의 계획대로 고성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고성 송학동고분군과 고성박물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가야고분군도 지금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신청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이코모스 실사까지 끝났다고. 처음에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함안도 그렇고 고성도 그렇고 경남의 많은 지역에 가야의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가야가 잊혀진 왕국이라고까지 불리는 데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이 가야의 강역이었음을 의식하고 있지도 못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먼(?) 곳에 떠나 있는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준다.



수요일에 통영시립박물관을 다녀오고 나서 기초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치고는 꽤 괜찮았다고 적었었는데, 고성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여기는 박물관 건물이 근대문화유적은 아니었지만 외관을 보았을 때 송학동고분군의 전방후원분을 박물관 건물로 구현해 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예전에 6가야에 대해 배우면서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대가야도 있고, 금관가야도 있고 여러 가야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소(小)가야도 있었다. 아니 나라 이름 앞에 스스로 '소' 자를 붙인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강화도조약 당시에 조선이 일본에 조약을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던 건 관세를 비롯한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도 앞에 '대(大)' 자를 붙여 달란 거였다. 그런데 소가야라니. 고성박물관에서는 이 지역에서 철(쇠)이 많이 나와서 쇠가야가 소가야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소고기와 쇠고기가 동일한 것이듯이. 그럴 듯한 설명이지만 소가야라는 명칭은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지레짐작만으로는 명칭을 수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오랫동안 품었던 의문 하나가 이렇게도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분군과 박물관을 구경한 뒤에는 시간이 남아서 통영으로 내려오며 고성의 한 바닷가에 위치한 카페에 들렀다. 이 날 처음으로 너무 여유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통영에 내려와 있는 것이긴 하지만 살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감정을 몇 번이나 느꼈나를 돌이켜 보면 정말 괄목할 만한 변화다. 카페는 어제도 동기형과 같이 갔던 곳이었는데 정오 무렵에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바닷물이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햇볕을 받아도 어제처럼 빛나진 않았다. 햇볕의 강도, 기울기에 따라 바닷물에 비치는 풍경도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들어와서는 방을 옮겼다. 보일러 완충재 같은 것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보일러가 돌아갈 때마다 소음이 너무 심해서 조치를 좀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반대편 방으로 옮겨 주었다. 그동안 방이 북향이라서 해가 잘 들지 않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새로 옮긴 방은 남향이다. 컴퓨터를 쓰는 테이블이 작아진 것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지난 방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짐을 옮기는 것이 번거롭지만 어차피 뭐 짐이 많지도 않아서 금방 옮기고, 덕분에 한 번 청소를 싹한 셈이 되어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찾아온다던 후배들이 아마도 못 올 것 같아 저녁에는 토요일에 사량도로 가는 배를 예약했다. 사량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상도와 하도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트레킹은 상도의 지리산과 옥녀봉을 잇는 코스가 하나 있고(이쪽이 좀 더 대중적이다) 하도의 칠현봉, 일곱 개의 봉우리를 종주하는 코스가 하나 있다. 소개 책자에 요즘은 하도가 뜨고 있다고 나오기도 했고 하도가 코스도 더 길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하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결국에는 상도로 향할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다. 처음 가 보는 곳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모험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두려움이 앞선다. 이번에는 일단 좀 더 대중적인 상도로 해야지.


아침에 승마를 잘했기 때문인지 하루 종일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눕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늦어진 일기를 이제서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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