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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19. 2022

통영일기: 열흘째.

통영에 사는 동기형과의 만남, 그리고 남망산

# 필라테스 사흘째


수요일은 필라테스를 하는 날이다. 승마와 필라테스를 비교한다면 단연 필라테스가 훨씬 힘들다. 생각해 보니 난이도도 이쪽이 더 높은 것 같다. 이곳에 와서 필라테스를 바로 등록하게 된 데는 금액이라는 이유가 컸다. 벌써 1년 반 가까이 지났지만 서울에서 했을 때는 3인 수업이었고 이곳은 4인 수업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나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단순히 비교할 때 3인 수업 대비 4인 수업이라면 33%만 저렴하면 맞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 낮았기에 이곳 물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바로 등록했다. 아무래도 4인 수업이다 보니 3인 수업만큼 집중력이 못했는데... 오늘은 수강자가 나뿐이었다. 그 바람에 더 힘들었다. 이렇게 운동한 것을 내 몸이 한 달이 지난 뒤에도 기억할 수 있을까. 한 달 정도는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솔직히 승마며 필라테스며 다 서울로 복귀한 뒤에도 계속 이어 갈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당장 금액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운동을 가는 길에 통영에 있다던 첫 회사의 동기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이 이곳에 머문다는 소식을 내려오기 얼마 전에 다른 동기에게 전해 들었고 지난주 화요일에 바로 전화를 했던 터였다. 지난주에는 아내가 함께 있어서 만나기가 어려웠던 까닭에 이번 주에 보자고 이야기해 두었었는데 형에게서는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격조했기에 괜히 엉겨 붙는 건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원래 좀 경상도 남자 같은 스타일이라서 내가 먼저 한 번 더 연락해 보기로 했다. 내가 사람들과 어떻게 그렇게 약속이 많은지 신기해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약속이 많다. 내 경우에는 상대가 약속을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고, 거절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싫어하는 신호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서너 번이 반복된다면 다르겠지만.


운동이 끝나고 나니 형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독거노인으로 지내는 터라 저녁 시간이 한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녁은 약속이 있다고 했고 당장 바로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안 될 게 뭐 있겠는가. 나는 지금 백수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머무는 죽림리는 통영의 신도시에 해당하는데 광도면 안에 있다. 형은 광도면의 산업단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가까운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생각보다 거리도 시간도 꽤 되었다. 그렇구나. '면'은 '동'과 달라서 면적이 꽤 되지. 잊고 있었다.


점심을 같이 먹고 고성으로 이동해서 함께 차를 마셨다.


카페에서 바라본 풍경


햇살이 바다에 반사되는 모습은 사진에 미처 담기지 않았지만 금빛 물결이라는 게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그러면서 형과 사는 얘기며 회사 얘기, 동기들 얘기 등등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지고 나서 생각해 보니 형과 밥을 같이 먹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단 둘이 만난 건 지난 13년 동안 이번이 처음이었다. 입사 연수를 받을 때 우리 동기는 모두 마흔두 명이었다. 보름 이상 연수를 받았고, 그동안 동기들의 숱한 경조사를 함께 치렀기에 겸상한 적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한 번도 둘이서 만날 생각은 못했다. 연수 때 같은 조도 아니었고, 나는 관리직인 데 반해 형은 기술자였던 데서 오는 차이도 있었겠다.


나와 동기들은 개천절이 지나고 10월 4일에 입사했는데 실은 형은 3개월 전에 입사했다. 같은 입사 전형을 거치진 않았던 셈이다. 7월부터 입사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10월자로 신입사원을 뽑았다고 하니 일하던 곳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보내주었다고 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20대 후반이 되면 새로 그렇게 사람을 수십 명씩 만날 기회가 흔하지 않다. 연수의 재미에 한참 깊이 빠져 있었던 나였는데 회사에서 잠시 휴식을 얻었다고 생각할 법도 하건만 형은 그때 조금 지루하고 피곤한 기색을 내비쳤던 기억이 난다. 자신은 이미 일하던 자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하루종일 이곳에서 교육만 받는 것이 좀 지루하다며 얼른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왜 그런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내가 사회생활을 해 보니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보름 연수를 다녀온다고 누가 그 일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형이 복귀한 뒤에는 아마 보름만큼의 일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래 봤자 신입사원 3개월 차라서 엄청난 일이 있진 않았겠지만, 대신 3개월 차인 만큼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도 그만큼 늦었을 것 아닌가.




처음 운동을 가면서는 점심 때 형을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오늘은 점심을 먹으러 통영 시내로 나갈 계획이었다. 한 달 살이를 떠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차를 몰았기 때문에 오늘은 통영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에 다녀오면 어떨지 이미 노선 검색도 끝낸 뒤였는데 형과 식사를 하러 가느라 다시 또 차를 몰고 나설 수밖에 없었고 점심을 먹고 고성 카페까지 다녀온 뒤에도 결국 그냥 그대로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통영시립박물관]이다.


옛 통영군청에 위치한 통영시립박물관은 처음 방문해 본다. 정확한 행정구역은 모르지만 도천동 쪽이라고 보면 된다. [윤이상기념공원]에서 도보권에 있다. 건물이 근대 양식이라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예전부터 한 번 와 보고 싶었다. 2층은 상설전시를 하는 듯했고, 1층은 지금은 김춘수 시인의 작품과 소장품들을 기획전시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이다. 한 눈에 보아도 어느 쪽이 동양인이 그린 것이고 어느 쪽이 서양인이 그린 것인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아마 그 어느 쪽도 실제 이순신 장군을 그려내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왼쪽 그림이 비교적 더 가까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동양인의 외모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 [충렬사]를 가 보진 못했지만 왼쪽은 충렬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 영정이라고 한다. 오른쪽은 영국 사람이 그린 이순신 장군 영정인데 사진에서 잘 드러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인이 그린 그림답게 눈이 찢어져 있고 눈꼬리가 위쪽으로 뻗쳐 있다.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도 서양인의 외모에 대해, 같지는 않겠지만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겠지.


나는 [통영시립박물관]에 대해서는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광역자치단체가 아니라 기초지자체 수준에서 이 정도의 박물관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전시품이나 소장품이 엄청 많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건물 자체가 근대유산으로 남아 있는 문화재여서 박물관에 잘 어울린다. 모사품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통영이라는 곳의 역사를 한 눈에 보기 쉽게 전시해 두고 있고, 이곳에서 나는 통영에 신석기 시대 유물도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통영'이라는 명칭 자체가 조선시대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러고 보니 땅이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겠지. 그러고 보니 옆 고성은 쥐라기, 백악기 시대의 수억 년 전 유물도 있었구나. 땅에는 항상 주인이 있다.




시립박물관 구경을 끝내고는 남망산으로 향했다. 바다와 항구를 따라 쭉 걸었다.


남망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남망산은 높이가 너무 낮아서 산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망'이라는 말도 아마 '남쪽을 바라본다'는 뜻일테니 뭔가 특별한 산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 회사에서 내가 점심시간에 자주 오르는 낙산도 높이가 100미터는 넘는데 이곳은 그것만도 못하다. 그야말로 산책길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남망산은 거의 해수면에서부터 오르는 것이기에 더 힘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남망산의 정상에도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고 한산대첩을 기념하는 비가 서 있다. 그제 방문했던 이순신공원도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한산대첩을 기념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남망산으로 오는 길에도 한산대첩 광장이 있었다. 통영은 그야말로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기 위한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떠올려 보자. 통영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행정구역이기 이전부터 있었고, 행정구역이 된 이후부터로 친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충무'라는 지명 또한 이순신 장군에게서 비롯한 것이니. (물론, 충무는 무장에게 내리는 아주 흔한 시호다. 조선시대에 다른 충무공도 무척 많다. 잘 생각해 보면,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량도 '충무후'였다.) 우리나라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항상 수위를 차지하는 인물이 세종대왕이고 그다음이 이순신 장군인 것을 생각해 보면 오직 이순신 장군만을 기념하는 이런 도시의 명칭과 탄생이 흥미롭다.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도시, 세종시는 21세기가 들어서 2010년을 전후해서야 탄생되었다. 그러나 '충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다. 일본이 그 명칭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세종'을 기념하는 도시가 21세기에야 등장한 것도 놀랍다.




어제는 길에서 할아버지께서 차를 세우시면서 태워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더니 오늘은 또 무슨 조화인지 할머니께서 주차장에서 차를 빼지 못하고 내게 도움을 요청해 오셨다. 할머니보다도 같이 있었던 지나가는 여성 행인이. 나는 그 주차장 직원이 아니라서 조금 놀라워하며 '저는 여기 직원이 아니에요'라고 손사레쳤지만 어제 일이 생각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할머님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올 때 인식기가 인식을 하지 못한 것 같았고, 할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계셨다. 다행히 뒤쪽의 정산기에 호출 버튼이 있어 눌러 드리고 통화해 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호출 버튼을 누른지 한참이 되어도 응답이 없었고, 아래쪽의 긴급전화번호로 다시 통화해 보시도록 했다. 내가 차를 뺄 때까지도 할머니의 문제는 완결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은데, 부디 별일없이 무사히 해결되었길. 어제의 일에 비하면 이건 별일도 아니지 싶고, 잘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도 큰 어려움은 없으셨을 것 같다.


돌아오는 주말에 통영으로 방문하겠다는 후배 일행이 있어 정말 올까? 반신반의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재차 확인해 보니 오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 같다. ㅎㅎ 토요일에는 사량도 트래킹을 갈 생각이었는데 만약 후배들이 일찍 오면 못 갈 수도 있겠다 싶어 예매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예매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통영이 가깝지도 않고 부담없이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지. 나는 통영으로 내려오면서 한반도 남쪽을 ㄴ자로 와서 광주, 해남, 강진에서 통영으로 왔지만, 실제로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에서 통영을 들렀다 서울로 가는 것은 쉬운 일정은 아니다. 마음 편히 주말에는 모든 등산인들의 꿈이라는 사량도 트래킹 일정을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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