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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18. 2022

통영일기: 아흐레째.

함안 한우국밥촌과 고성 공룡박물관

# 승마 둘째 날


첫날보다는 훨씬 잘 잤다. 그제부터 어제 사이에 잠을 잘 못 잔 탓에 어제 내내 피곤했지만 그럼에도 낮잠을 자지 않고 버틴 덕분이지 싶다. 그런 데다가 하루종일 1만 보 이상 걷기도 했으니. 햇볕도 충분히 쐤고. 방이 북향이라 아침 햇살 때문에 일찍 일어나게 될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래서 덕분에 더 충분히 잘 자지 않았나 한다.


평일은 매일 하나씩 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승마를 가는 날이다. 이곳에 내려와서 두 번째 승마다. 말과 안면도 텄고(?), 승마장 위치도 환경도 정확히 아는 터라 큰 부담없이 승마장으로 향했다. 승마장까지 가는 길은 결코 수월하지 않다. 1시간 정도 걸리고 60km나 떨어져 있다. 이곳에 와서 승마장으로 바로 가기는 오늘 아침이 처음이었다. 지난번과 같은 말을 만나서 한 시간 동안 기승을 했다. 역시 쉽게 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지진아인 편이라고 해야 옳다. 하나씩 하나씩 감을 잡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긴 한데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잘할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수업이 끝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력에 비해서 너무 한가하게 말을 타고 있는 것 아닌가. 처음 보는 코치와 대화를 하고 친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말을 탈 수 있는 능력이다. 다음 시간부터는 좀 더 독하게 말을 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늦잠을 자면 하루가 금방 간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에 승마를 한 시간 하고 났더니 바로 점심시간이다. 무척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함안의 맛집을 가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오늘의 목적지는 함안 대구식당이다. 한우국밥을 파는 곳이다. 나는 보통 가장 먼저는 파란책에서 맛집을 찾는데 함안군의 맛집으로 나온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미리 지도로 찾아보자니 백종원도 이미 들렀다 간 곳으로 벌써 꽤나 유명한 곳이지 싶었다. 승마장에서 무척 가까웠다. 함안군도 면적이 작지 않은데 멀리 있다면 좀 고민이 되었을텐데 통영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되었던 까닭에 반가웠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12시에 출발하는 바람에 바로 점심시간에 밥을 먹게 될 것이라는 점. 줄이 길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조금 되었다.



다른 분과 겸상해도 크게 상관없었는데 다행히도 테이블이 많아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뜨뜻한 국물이 속을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짜지도 맵지도 않았다. 식사하는 도중 옆 테이블에 네 분이 오셔서 맵다고 세 그릇만 주문하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여기 국밥은 하나도 안 매워요'라고 이야기해 드릴까 하다가 말았다. 괜한 오지랖이겠지. 고기도 적지 않게 들어 있고 콩나물도 시원하다. 국밥을 고아서 만드는 스타일인지 펄펄 끓는 국물처럼 아주 뜨겁지도 않았다. 나는 맵고 뜨거운 음식을 잘 먹는 편이 못 된다. 그럼에도 내가 술술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국밥이었으니 말 다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니 더 자극적으로, 더 맵게 만들기도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썩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6번 더 말을 타야 하니 그 사이에 또 올 생각이다.


메뉴는 국밥만 있지는 않다. 불고기도 같이한다. 한우불고기도 있고 돼지불고기도 있는데 내가 혼자서 먹기에는 부담스러워서 아마도 도전해 보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식사를 하고 나오니 옆의 다른 국밥집에 '돼지불고기 정식'이 있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오는 목요일에는 그 집에 가서 돼지불고기 정식을 먹어볼까 한다. 그건 1인분도 된다는 말이겠지. 돼지불고기는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석쇠불고기라니 직화라서 믿음이 간다. 몸에는 안 좋겠지만, 역시 고기는 직화지. ㅎ


보통 '~~군'이라고 하면 가장 큰 동네가 '~~읍'이기 쉽다. 예를 들면 정선군 정선읍, 양양군 양양읍, 해남군 해남읍 이런 식이다. 그런데 함안은 특이하게도 함안군에 함안면이 있었다. '함안읍이 아니라 함안면이라고?' 알고 보니 함안군에서 가장 큰 동네는 가야읍인 듯 싶다. 이쪽 동네가 옛날 가야의 강역이니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지만, 더 놀라운 건 '가야읍'이라는 명칭이 붙었던 시기.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요즘은 그렇게 역사나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명칭을 행정구역에 붙여서 홍보하는 일이 많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가야읍'은 군사정권 때 붙은 명칭이었다.


이런 것을 따로 공부한 것은 아니고 한우국밥촌 바로 근처에 함안민속박물관이 있었다. 관람료도 무료이고 해서 한 번 가 보았다. 함안군에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함안초등학교에서 부설로 운영하고 있는 듯한데 관람을 원하면 교무실로 전화를 하라고 되어 있었지만, 크게 어려울 것도 없어서 그냥 혼자 불을 켜고 둘러보았다. 그런데 놀랍고도 슬픈 것이 하나 있었다.



2000년 2월 기준 졸업생 수를 적고 있으니 지금 저 초등학교들이 모두 존재하고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놀랍게도 무려 19개교의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학교들은 모두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심지어 100년 역사의 학교도 5개교나 된다. 더 놀라운 점은 이미 폐교된 학교도 12개교나 된다는 것. 그 학교들의 역사도 짧지 않다.


나는 고향에서 역사가 세 번째로 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할 당시 내가 47회였으니, 올해에 졸업하는 애들은 정확히 74회가 된다. 함안군의 저 초등학교 목록을 보고 있자니 74년의 역사도 결코 긴 것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졸업한 학교는 첫 졸업생을 해방 이후에 냈다. 그런데 함안군의 19개 초등학교 가운데 15개교가 해방 전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지금 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 이 학교들은 얼마나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함안'군의 '함안'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면서도 읍내는 한 걸음으로 다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내가 본 읍내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사라져 가는 시골의 모습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또한 시골 출신이기 때문인 것일까. 길거리에도 커피숍에도 전부 어르신들뿐이었다. 이 분들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실 때마다 동네는 더욱 작아질 것이다.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든다.




나는 따로 드라이브를 하지 않는다. 운전이야 하기 싫어도 하게 되어 있는 것이고, PC(Political Corretness) 같은 생각 하나를 덧붙이자면 드라이브 한다고 괜히 기름 낭비, 환경 파괴하는 것도 싫다. 어차피 운전을 해야 할 때 그때 드라이브를 하면 되지 않나 한다. 그런 내가 운전을 하고 나서 오늘 처음으로 드라이브 같은 감정을 느꼈다. 함안 한우국밥촌에서 고성 공룡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가깝지 않았다. 공룡박물관은 고성에서도 거의 사천 쪽에 붙어 있었던 까닭에 고성을 아예 가로질러야 하는 길이었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고속도로가 잘 뚫려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길안내로도 국도로만 가도록 안내가 나왔다. 잘 익은 벼들로 황금색을 띤 들판 옆을 달리며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노라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드라이브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안에서 공룡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고성 읍내를 지나야 했는데 엄청난 고분군이 눈에 뜨였다. 가야 고분군인 듯 싶다. 이렇게 다음 번 승마 뒤의 목적지는 고성 고분군으로 정했다. 고성박물관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고분군을 보는 순간 고성박물관도 들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주 내에 방문할 생각이다. 곧!


공룡박물관은 전시도 전시지만(전시는 사실 보잘것없었지만) 주변 산책로가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세계 3대 공룡발자국 유적지라는 고성의 이름에 걸맞게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숱한 공룡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걸 이렇게 그냥 두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닷물의 드나듦에 따라 계속 풍화와 침식이 이루어질텐데 물론 수억 년을 그렇게 견뎌낸 유적들이긴 하지만 이렇게 두어도 괜찮을지. 그러나 이걸 보존한다고 모두 떼어 내 박물관으로 옮긴다면 그것은 더 별로일 것이다.


공룡박물관에서 바라본 남해안과 산책길에 건너편으로 보이던 병풍바위




여드레째를 마무리하는 단상


박물관 관람과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어떤 어르신께서 갑자기 차를 세우셨다. 흉흉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태워드리는 게 도리인 듯 싶었는데, 창문을 내리고 여쭈니 삼천포로 가려는데 버스가 너무 오지 않는다면서 좀 태워 줄 수 없겠느냐고 하신다. 통영으로 간다고 했더니 사모님께서 반대 방향이라며 그냥 가라셨는데 두 어르신을 두고 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버스는 가긴 갔을까. 차도 흔하게 다니는 길은 아닌 것 같던데 삼천포까지는 어떻게 가셨을지.


처음 서울로 대학을 와서 가장 놀랐던 장면이 친구들이 시간표를 확인하지 않고 버스를 타는 거였다. 학교에서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50분에서 1시간이었다. 아마도 어려서 그랬겠지만 그럼에도 정류장에서 집까지 다시 10분에서 15분을 더 걸어야 했다. 중학교 때였다. 친구와 아마도 방학 중 당번을 끝내고 같이 집으로 가려던 길이었는데 친구가 가는 방향으로 오는 버스를 같이 탈 생각이었다. 그 버스는 비교적 자주 오는 편이었다. 그래도 30분 이내로. 우리집으로 오는 버스는 1시간에 한 대이니 포기하고 그냥 그 버스를 탈 생각이었던 건데 친구와 걸어가다가 우리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는 매몰차게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고 바람같이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너무 부끄럽다. 친구와 같은 버스를 탔어도 그냥 한 15분 더 걸었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아마 1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가 너무 반가워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고 변명하고 싶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지방에 살면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 일주일 전에 광주에서 만난 대학원 사람들과도 이야기했지만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 만취 음주운전을 하고 이런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다.(그렇다고 음주운전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교통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차가 지나다니는 빈도로 보았을 때 어르신이 내 차를 세우던 그 골목 앞으로는 하루에 버스가 많아야 4~5대 정도 다닐텐데 기다리던 버스 한 대가 이렇게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막막하실지. 택시라도 불러드렸어야 했나, 아니면 많이 돌아가더라도 내가 삼천포까지 갔다 갔어야 했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맞은 편에서 버스 한 대가 광속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혹시 그 버스를 타셔야 하는 거라면 내가 지나오고도 아마 2, 30분은 더 족히 기다리셔야 했을 것이다. 어르신들의 이동권만 해결되어도 지방이 훨씬 살 만한 곳이 될 수 있을텐데.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고 오늘의 일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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