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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27. 2022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다

[통영애 온나] 3차 도전기

한 달의 지역 살이 대상으로 떠올렸던 곳은 처음에는 당연히 제주였다. 내가 워낙 제주도를 좋아하기도 하고, 제주도엔 승마장도 많은 데다가 처음엔 제주 이외에 생각했던 곳이 아예 없었다. 그러다 요즘 각 지역에서 한 달 살기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정보를 전해 들었다. 수많은 곳이 원서를 받고 있었는데 그중 단연 내 눈에 뜨인 곳이 바로 통영이었다. 지난 2018년에 방문했을 때도 강한 인상을 받았던 통영. 내 돈 들여 가기에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곳인데 심지어 지원금마저 준다니! 마침 10월 1일부터 지급한다는 지원 일정도 나의 일정과 딱 맞았다. (아니, 맞는 줄 알았다.) 서류를 마감하고 3일만에 결과를 발표한다니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었고. 그렇게 나는 이번 가을 [통영애 온나](경남 한 달 살기의 통영 지역 명칭) 3차에 도전하게 되었다.




통영은 인기 지역이라 조건이 아주 좋진 않았다. 하루 최대 숙박비 5만 원까지 29박까지 지원을 해 주고, 입장료 같은 것은 머무는 일정에 따라 최대 8만 원.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총액은 153만 원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내가 통영에 한 달 내내 머물면서 쓸 돈도 대략 이 정도 내외가 되지 않을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지원서는 지난 9월 20일까지 접수받았다. 회사를 쉰 건 9월 12일부터였지만 계속해서 밀려드는 일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결국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건 9월 18일부터였다. 19일에도 아는 분의 카페 개업행사에 다녀와야 했고, 저녁부터는 지원서를 쓰려고 했지만 만남의 자리가 저녁을 넘어서도 계속 이어졌던 탓에 미리 인사를 하고 나왔음에도 정작 지원서를 수정한 건 밤 10시가 되어서였다. 그래도 그렇게 하길 잘했다. 다음 날 아침에 지원서를 모두 완성하려 했다면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감 날 오전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이것 저것 정보를 알아보는데 쉽지가 않아 보였다. 지난 1차 때는 경쟁률이 무려 10대 1을 넘었다고 했다. 지원서를 쓰면서 통영으로 가는 쪽에 마음이 많이 기울었는데 막상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예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냥 깔끔하게 제주도로 가고 말았을텐데. 쩝.


그리고. 마침내 결과를 발표하는 금요일이 되었다.




자정에도 들어가 보고, 새벽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아무런 공지가 없었는데 9시 30분쯤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대기이신가 보네.'


아아, 여러분. 인생이란 게 이렇습니다. 떨어지면 제주도에 가야겠다고 차량도 알아보고 있었고, 붙으면 통영에 가려고 숙소도 찾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붙은 것도 아니고,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아니, 대기라니. 통영시청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참가를 못하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단정적으로 몇 번까지 대기자 가운데 선정될 거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을 건네 주었다. 더욱 아쉬웠던 건 혹시 내 번호까지 된다고 하더라도, 대기자가 선정된 그날로부터 지원금을 줄 수 있다는 말. [통영애 온나] 3차가 시작하는 10월 1일부터로 여행 일정을 잡아둔 나로서는 조금 곤란한 말이었다. 담당하시는 분의 말씀으로는 연락이 오는 날 이후로 일정은 조정할 수 있으니 그때부터 여정을 소화하면 안 되냐고 하셨는데, 이럴 수가. 나는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있다. 하, 이를 어쩐단 말인가.


상황이 너무 웃겼다. 대략 3대 1이 조금 넘는 경쟁률이었다. 대기자를(그 가운데 내 번호까지를) 포함해도 포함하지 않아도 얼추 3대 1 정도. 거의 70%의 확률로 아예 떨어질 수 있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확실히 된 것도 아니었다. 애매한 상황이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게 바로 이런 거지. 뭔가를 쉽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애매한 상황이 반복되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지난 글에 올린 것처럼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나는 통영을 목적지로 정했다. 그냥, 한 번 해 보는 것으로 말이다. 대신에 출발 일정을 한 주 늦추었다. 대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마음에서라고 할까. 일단 10월이 되고 나서 출발하면 아무래도 좀 더 지원금을 받을 확률은 올라갈테니까. 결국 나는 내심 지원금을 받기는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게 언제부터여서 며칠치를 받을 수 있을지가 의문일 뿐. 막말로 한 3박 4일의 지원금만 받는다면 (그래도 안 받는 것보단 낫겠지만) 아니 받음만도 못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번외로, 인생이 무언가를 쉽게 주지 않는 것은 숙소를 정함에서도 이어진다. 처음에는 한 곳에서 한 달을 머물 생각이었는데 10월엔 연휴도 두 번 있고 그렇게 되는 여건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 차례 숙소를 옮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하고 처음 머물 숙소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으려 했더니 뒤늦게 여정 중에 1박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예약이 들어와서 어렵게 되었단다. 이렇게 모든 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지. ㅎㅎ 계획대로라면 내일쯤 출발했어야 했지만 일주일을 미루었는데, 어쩌면 여기에서 일주일을 또 미루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가긴 갈 수 있겠지. 다만 모든 것이 다 한 번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데서 새삼 다시 한번 인생의 난이도를 실감한다. 물론 이건 뭐 어려운 축에도 들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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