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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24. 2022

왜, 통영인가

통영에서 한 달 살이를 시작하게 된 이유

처음 한 달 살이를 떠올렸을 땐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 또한 가장 먼저 생각한 장소는 제주도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제주도가 딱 맞았다. 내가 워낙 제주도라는 공간을 좋아하기도 하고(심지어 고향이 제주도라는 이유로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으니) 이제 막 승마에 취미를 붙인 터라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랬다고 취미를 즐기기에도 제주만한 곳이 없었다. 나름대로 구상을 했다. 제주 시내에 살면서 책도 실컷 읽고, 운동도 하고, 말이나 타러 다니면 되겠다고.


그런 나에게 갑작스레 통영이 들어왔다.




관심이 없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요즘은 지역에서 한 달 살이나 여행비를 보조해 준다고. 내가 생각했던 일정은 10월이었다. 마침 경남에서 9월 중에 모집을 해서 10월과 11월의 여행비를 보조해 준다는 정보를 얻었다. 지원한다고 모두 될 것도 아니었지만 괜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원금은 숙박비 실비로 하루 최대 5만 원. 한 달 정도면 150만 원이다. 아마 내가 생활하는 데에도 그 정도의 비용은 들 것이다. 그냥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여기고, 숙박비만 내면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쁘지 않은 조건 같았다. (무슨 입장료 같은 것도 최대 8만 원까지 지원해 준다는데 이 부분은 큰 메리트는 느끼지 못했다.)


경남에도 여러 지역이 있다. 당장 통영만 해도 주위에 거제와 남해가 있고, 그곳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엔 왠지 모르게 통영이 끌렸다. 지난 2018년 삼일절 연휴 때 방문하여 받은 인상이 너무 좋기도 했고, 거제는 너무 큰 데다 남해는 군이라는 점에서, 예전의 충무시였던 뭔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통영의 시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웬만하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걸어서 다니고 싶었다. 한 달 살이에 다른 곳과 중복해서 지원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통영이었다.


공고문을 보고 지원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있었는데, 회사는 쉬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마무리해 줘야 할 일이 며칠 동안 계속 있었던 까닭에 지원서를 쓸 시간을 쉽게 내지 못하고 결국엔 마감날에야 접수할 수 있었다. 그래도 피곤한 와중에도 마감일 이틀 전부터 밤마다 시간을 내서 작성해 둔 덕분에 마감날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 차례 수정하고 바로 지원서를 보냈다. 결과를 보니 그래도 내가 그렇게는 늦지 않게 접수한 편이었다. 대개 다들 마감시간에 임박하여 지원서를 내는가 보다. 막상 지원서를 보내고 나니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어차피 다 비슷한 양식인데 조금만 더 서둘러서 다른 곳도 내어 볼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에 바삐 다른 지역도 찾아보았는데 통영이 가장 마지막날 마감한 곳이었다. 물론 수시로 모집하는 곳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곳은 통영, 거제, 남해 정도였기에.




선정되면 거의 곧바로 출발해야 했기에 미리 조금씩 알아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이유겠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내겐 통영이 좀 더 매력적이었다.


1. 숙박할 곳은 물론이고 머물 장소를 찾는데 제주도는 그 범위가 너무 넓고 좋은 곳이 많았다. 이미 관광으로 워낙에 특화된 곳이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점은 강점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목록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반면 통영은, 내 경우에는 통영에서도 시가지로 범위를 좁힌 상태였기 때문에 검토해야 할 곳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단점도 있었다. 제주도의 경우에는 워낙 범위가 넓어서 (내가 생각했을 때에는) 통영보다 숙박비가 더 저렴했다. 물론 1, 2년을 산다면 통영이 제주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부동산 사이트까지 접속해서 본 결과) 그러나 한 달 살이 같은 것은 제주도가 훨씬 흔한 사례였다. 통영에서 아파트를 한 채 2년 동안 빌려 그걸 24개월로 나누어 한 달을 산다면 거주비가 제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겠지만, 안타깝게도 통영은 생활인과 여행인의 경계가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 편이었다. 제주는 부동산을 통해서도 한 달 살 수 있는 집을 흔하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가격이 더 저렴했다. 그렇지만 아주 부지런하게 알아보지 않는 이상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2.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승마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에는 승마장이 너무 많았다. 이걸 모두 일일이 전화해서 가격을 물어보고 비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꼰대가 되었나 보다.) 반면에 통영에는 승마장이 아예 없었다. (이게 장점이라는 건 아니다.) 주변 지역까지 넓히니 세 곳의 승마장이 보였고, 그 가운데 한 곳은 가격도 나와 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저렴한 가격이었다. (아무래도 부지 임대료가 수도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테니) 이 부분도 무척 컸다. 한 달 살이 동안 승마도 조금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3. 역시 아무래도 금전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가 없다. 비록 나는 통영 한 달 살이 체험에 뽑히지 못했지만, 아예 떨어지지도 않았다. 하루에 5만 원 최대 130만 원 가량의 돈이 그렇게 큰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또 아주 적은 금액도 아니다. 결과 발표가 나기 전에도 사람이다 보니 주로 선정되는 쪽으로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걸 기대하고 지원한 거니) 그동안 세금을 열심히 내기만 했고, 내 경우에는 연말정산에도 게으른 편이라 과다징수된 세금도 많을텐데 이렇게라도 한 번 돌려받아 보고 싶었다. 아마도 이 점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4. 제주도는 섬이다. 물론 통영도 섬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통영의 시가지는 연륙교여서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다. 차로 움직이면 짐을 가져가는데 정말 많이 편리하다. 지난해 지인 몇 사람이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를 했는데 이런 이유로 차를 가져간다고 했다. 짐을 모두 실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제주도 렌트카 대여가 만랩이라(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그동안 한 번도 차를 가져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개 3박 4일에서 4박 5일의 일정에 차를 10만 원이면 주고 빌리고는 했었으니. 그런데 이게 한 달이라니 얘기가 달라졌다. 다행히 지인을 통해 55만 원에까지 차를 빌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빌리고 나면 짐은 어쩌나. 짐을 실어 보내려고 탁송을 하면 왕복 거의 60만 원에 가까운 돈이 들고, 내가 인천에서 배를 싣고 간다면 왕복 20~3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이다.(생각해 보니 이건 그리 안 비싸네.) 짐을 보내는 번거로움은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아프게 했다. 이게 아니어도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말 어제는 하루종일 제주와 통영 중에 고민하느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내가 또 한 달 살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있겠는가. 쉬운 기회가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십수 년간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다.(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제주를 갔어야 했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쪽에 모험을 걸어 보기로 했다. 또 실상 그동안 제주도는 이미 충분히 자주 가기도 했다. 내가 더해 보았더니 코로나19 이후에 제주도에 머문 시간이 무려 21박 28일이었다. 가고 오는 데 든 시간도 적지 않지만 산술적으로는 이미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머물렀던 셈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올해, 내년에도 계속 더해질테고.




이렇게 한 달 간의 통영살이를 결심하게 되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숙소도 정하지 못했고, 일정도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음 주에 바로 출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연휴를 맞으려니 괜한 두려움이 생겨서 연휴가 지나자마자 출발하려고 한다. 지원금도 통영에서 연락이 온 날로부터 받을 수 있는 까닭에 여행 일정을 뒤로 미룰수록 내게 유리하기도 하고. 그러나 더는 늦출 수 없다. 그러면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아진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에 나선다. 그래, 한 번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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