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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21. 2022

통영일기: 열이틀째.

체육인의 하루

# 승마 나흘째 # 필라테스도 나흘째


아침엔 일찍 눈이 떠졌다. 세상엔 좋기만한 일이 없다. 전에 머물던 방이 북향이라서 싫었고, 통영에 내려와서는 알람보다는 자연광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어나고 싶었다. 실은 회사를 쉬면서 거의 아침에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는 했다. 그 시간이 늦었을 뿐이지. 커튼을 치고 자지 않았더니 아침에 햇볕이 들어서 일찍 눈이 떠졌다. 푹 자지 못했다는 느낌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람은 생각도, 말도 조심해야 한다. 어제 일기를 적으면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승마를 해서는 실전에서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적었는데, 그래서였나 오늘 승마장에 도착했더니 오늘은 다른 분도 예약이 되어 있어서 같이 타야 한다고 한다. 아뿔싸! 갑자기 엄청 긴장이 되었다. 아직 나도 내 말을 완벽하게 잘 타지 못하는데 한 분이 더 말을 탄다면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추가된다. 마장에 들어오는 새로운 말이라는 변수가 있고, 그걸 타는 다른 기승자 분이라는 변수가 또 있다. 하물며 이것들이 어울려 더 많은 변수를 만들어 냄에야. 역시 주어진 환경에 그냥 고마워하면서 탔어야 했는데.


말도 어제 같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짧은 시간 안에 기승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지만 다른 말의 옆을 지나갈 때면 무척 긴장되었다. 아마 말도 느꼈을 것이다. 내가 탄 말도 다른 분이 탄 말도. 그래도 큰일 없이 무사히 잘 탈 수 있었으니 다행. 아, 사흘째부터는 말들이 먹는 점심의 절반을 내가 주고 있다. 이틀째부터는 점심시간 직전에 말을 타고 있는데 내가 하마하고 나면 코치님이 말들에게 점심을 주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해 보고 싶어 사흘째부터는 내가 나누어 하겠다고 했다. 어쩌면 말이 말을 잘 듣는 것 같은 느낌은 내가 밥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ㅎㅎ 건초와 사료를 함께 주는데 아무래도 말들은 사료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사료를 주고 싶지만 그것까진 욕심이겠지.


오늘은 승마를 마치고는 바로 통영으로 돌아왔다. 화요일에도 목요일에도 함안에서 점심을 먹었고, 이틀 모두 고성에서 시간을 보낸 까닭에 오늘까지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다. 어차피 다음 주에도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또 함안으로 가야 하니깐. 그런데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벌써 이곳에 내려와서 보내기로 한 시간의 절반이 지났다. 승마장에 갈 기회도 네 번밖에는 남지 않았고, 함안에서 점심 먹을 기회 또한 마찬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쉬고 보내는 시간으로는 벌써 2/3가 흘렀다. 이 좋은, 이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니. 갑자기 너무 아쉬워졌다. 생각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구나.


돌아와서는 숙소 근처 수영장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으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뭐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꼭 뭘 해야 하나 싶었다. 아예 아침부터 통영에 있었다면 시내에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승마를 마치고 돌아오니 벌써 2시였다. 내일도 어차피 사량도까지 가야 하고,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카페에서는 수영장 냄새가 엄청 났다. ㅎㅎ 바다가 잘 보여서 오늘 하나 깨달은 것은 이곳에 와서 오늘 처음으로 구름이 많이 낀 하늘을 보았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계속 날이 좋았구나. 이것도 큰 축복이다. 내일도 날이 좋아서 사량도까지 가는 배도 잘 뜨고, 등산하는 데도 아름다운 풍경을 실컷 볼 수 있길. 날씨는 일요일이 더 좋을 거라는 전망이 있던데 그래도 월요일부터는 새로운 주가 시작하는데 일요일에 사량도를 다녀오면 너무 피곤할 듯해서 내일 가는 쪽이 좀 더 나을 듯하다. 그리고 햇볕이 아예 쨍하면 트레킹도 조금 힘들지 않을까. 구름이 하늘을 아예 가리면 안 되고 적당히 있어야 할텐데.(뭐든 적당히가 중요하다. 적당히!!!)


그동안 필라테스도 승마처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고는 했었는데, 운동을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하고 하루 종일 진이 빠지기 때문에 저녁에 가는 쪽이 더 낫다. 그런데 저녁 시간은 거의 예약이 차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오전에 갔던 것이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마침 오늘은 저녁에 예약이 좀 수월했고, 무엇보다 아침에 승마를 가야 해서 저녁에 갈 수밖에 없었다. 승마도 적지 않은 열량이 필요한 운동인데 필라테스를 하고 나서 온 몸이 덜덜 떨리는 채로 말을 탄다면 아마도 탈 수가 없을 거다. 나름대로 고민 끝에 둘이 겹친 오늘은 선 승마, 후 필라테스를 하는 쪽으로 정리를 했다.


저녁은 내려오면서 고향에서 받아온 감자를 삶아 먹는 것으로 정했다. 보름간 냉장고에만 있었다. 삶기는 잘 삶은 것 같은데, 감자 삶는 물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기 때문인가 감자에서 매운맛이 났다. 큰 감자 하나는 칼집을 조금 많이 내서 삶았고 작은 감자 두 개는 그냥 삶았는데 작은 감자는 매운맛이 좀 덜한 것 같아서 큰 감자는 서너 입만 먹고 말았고 작은 감자만 먹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감자에서 매운맛이 나는 건 독 때문이라고 식중독이나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괜히 찜찜하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처음에 매운맛이 느껴졌을 때부터 아예 먹지 말았어야 했나. 그런데 또 식재료를 그냥 버리는 건 너무 아까워서. 내일 트레킹하려면 많이 힘들텐데 만약 밤새 식중독 증상이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이다. 그냥 라면이나 한 봉지 끓여 먹고 말 걸. 처음엔 감자 삶는 물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기 때문인 줄 알았다. 솔직하게는 그래서 칼집을 낸 큰 감자를 안 먹은 것이다. 어쨌든 큰 감자는 먹다 말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상했을지도 모를 떡도 매일 아침 조금씩 먹고 있는데 별 문제 없었으니 제발 감자도 그렇기만을 바랄 뿐이다.




저녁에 운동을 가기 전에 어제 일기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통영에 오래 살았던 친구다. 예전에 2018년에 통영에 여행 올 때도 이 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30분 정도 통화하면서 친구가 셀 수 없이 많은 맛집들을 일러 주었다. 정리해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기억 나는 집들을 대충 떠올리면서 이야기해 준 것이니 머릿속에 기억이 남아 있을 정도로 괜찮은 곳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친구가 말해 준 곳 중에서 지난 2주일 동안 내가 갔던 곳은 두 곳밖에 없었다. ㅋㅋㅋ 친구도 좀 더 일찍 전화해 주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나 또한 그렇다. 아내가 있는 동안 같이 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게다가 남아 있는 시간이 2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아쉽다. 그 시간 동안 친구가 일러준 이 많은 곳들을 다 가 볼 수 있을까. 역시 인터넷과 검색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와 실제 현지인의 경험은 확실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반전이 있다.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친구가 이야기해 준 식당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검색해 보았는데 내가 갈 수 없는 곳도 많이 있었다. 꼭 가라고 추천해 준 식당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인데, 예약이야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1인분에 가장 싼 메뉴가 8만 원이다. ㅋㅋㅋㅋㅋ 1인분은 팔지 않는 곳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빼고 나면 갈 만한 곳은 다 가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주말부터 천천히 다녀봐야지. 우선은 내일 사량도 트레킹부터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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