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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26. 2022

통영일기: 열엿새째.

경남 함안에서 보낸 하루

    # 승마 닷새째


처음 아내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남은 3주가 길게 느껴졌다. 갑자기 느낀 강한 외로움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어느덧 일정의 절반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주가 다음 주로 다가왔다. 2주가 채 남지 않은 것이다. 회사를 쉬는 기간도 불과 3주도 남지 않았다. 이제는 슬슬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특히 운동을 해서 더 그럴 것이다. 운동에 횟수 제한이 있다. 월요일까지로 필라테스와 승마 모두 절반을 소화했다. 승마는 오늘 5회차를 하고 나면 오히려 3회밖에 남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곳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얻었지만 그래도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쉽다.


다섯 번째 승마를 하려고 승마장에 도착해서 말을 타는데 마장의 환경이 예전과는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말도 마찬가지라서 당황한 듯했다. 많은 사람이 말을 타다 보면 운동장의 트랙처럼 말이 다니는 길로 흙이 파인다. 그러면 다시 또 말들은 그 길로 더욱 가게 되고. 어디에나 다 이렇게 좁게 길이 명확하게 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타는 게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나와 같은 초보 기승자에게는 편한 점도 있다. 말의 길이 명확히 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장의 절반엔 길이 아예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주에 세 번을 탔으니 승마가 조금 나아졌어야 하는데 말이 길이 없는 곳에만 가면 속도를 줄였고 나는 이럴 때 박차를 가해서 더 달리게 할 정도의 실력이 못 된다.


승마라는 게 실력이 횟수와 정비례해서 느는 건 아니고 어쩌면 계단식으로 느는지도 모르겠지만 지난주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년 이맘 때 열 몇 번 탔을 때와 비교해도 실력이 크게 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좀 나아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취미를 잘 삼은 건지 싶어서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날은 코치님께 처음으로 채찍을 받았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말이 불쌍하다는 글을 본 적도 있어서 괜시리 좀 찡해지기도 했지만 이 채찍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채찍은 아니다. 사람이 맞아도 아프지 않을 정도다. 단, 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의 경우 말은 채찍을 들기만 해도 효과가 있다. 나도 이 날 채찍을 몇 번 휘둘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채찍을 치는 모습을 몸을 돌려 볼 정도의 실력은 아직 안 되어서) 코치님 말이 아마 말은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났으니 다행이다.


승마장만 생각하면 이곳을 떠난다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서울에서 이 정도의 환경에서 말을 타려면 한 번에 15만 원은 줘야 할 것 같은데. 결국 나는 말을 계속 타더라도 이제는 엄청 열악한 환경에서 탈 수밖에 없다. 그런 야생 승마가 실력을 늘리는 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 실력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승마장이 함안에 있어서 그동안에도 말을 타는 날에는 함안에서 밥을 먹고 고성을 간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일정을 보냈었는데 오늘은 종일 함안 관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라가야의 성지, 함안. 지난주에 연락해 온 선배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부러워해서 괜히 내가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우국밥촌과 그 주위의 민속박물관은 가 보았지만 오늘은 말이산고분군과 함안군박물관을 위주로 한 바퀴를 돌기로 한다. 이왕 그곳까지 나가는 김에 함안 읍내에서 밥을 먹으려고 식당을 정했다. 시골이다 보니 차가 씽씽 달려 아무곳에서나 차를 돌릴 수가 없어 한참을 가서 차를 돌리고 식당에 갔더니, 1인분은 파시지 않는다고 한다. 쩝. 다음으로 간 식당에서는 몇 가지 메뉴는 1인분도 파셨다. (닭)도리탕을 먹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매운 것을 잘 먹는 편이 못 되어서 조금 맵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ㅎㅎ 나와서 지내다 보니 쌀밥 먹는 일이 아무래도 소홀해지는데 오랜만에 포식했다.


혼행객으로서 1인분을 팔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해는 된다. 우리나라 음식 문화가 밑반찬이 많은 상차림 문화여서 1인분을 팔면 채산이 맞지 않을 수 있다. 1인분을 팔아 주시는 분께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만 팔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여행하는 사람은 어쨌든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시간에 쫓기듯 여행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 더 여유를 갖자.




함안 말이산고분군과 함안박물관


함안박물관과 말이산고분군, 말이산고분전시관은 모두 모여 있다. 주차요금도 받지 않고 한 번에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어서 아주 잘 되어 있다. 함안박물관도 주된 테마는 아라가야와 말이산고분군이라고 보면 된다. 바로 읍내에 있다. 말이산고분군을 돌다 보면 바로 아래로 함안군청, 함안읍내, 초등학교, 시장 등등이 보인다. 그 옛날 가야 시절부터 함안의 시내는 같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함안박물관 입구 전경


함안박물관은 고성박물관에 비해서도 훨씬 규모가 큰 것 같았다.(정확히는 몰라서) 건물 외관을 한 바퀴 돌다 보면 행정실과 학예연구실도 따로 있다. 고성박물관에서도 학예연구실을 본 적이 있었던가. 말이산고분군을 돌다 보니 고분을 조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업을 끝내고 다시 성토를 하는 것인지 아무튼 고분군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전히 이곳은 유물도 많고 유적도 더 탐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이 함안박물관과 고성박물관의 차이를 불러 왔을 수 있다.


혼자서 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면 듣는 편이다. 아무래도 현지인께서 해설해 주시는 것이니.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함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한다. 해설사 분이 잠시 안 계셨지만 굳이 또 불러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해설사 분이 돌아오시는 동안 나는 함안박물관 뒤편 지하의 말이산고분전시관을 먼저 둘러보았다.


말이산고분전시관의 입구


그러고 보니 고성에서는 송학동고분군전시관을 본 기억이 없다. 있었는데 내가 놓쳤던 걸까. 고성박물관에서 이미 송학동고분군을 충분히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에 비해 말이산고분전시관은 순수하게 이 고분에만 중점을 둔 전시관이다. 유물 진품보다는 재현이 이루어진 것이 더 많기는 했지만 위치도 말이산고분군 바로 옆에 있고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관은 무척 깔끔하고 구성도 잘 되어 있다. 여기에서 깔끔하다는 것은 건물이나 환경 자체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우리나라도 이렇게 관광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간다.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바람직한 일이다.


고분전시관을 다 보고 나니 함안박물관의 해설사 분이 돌아와 계셨다. 그분의 안내를 따라 함안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보았고 고분전시관은 이미 보았는데도 굳이 또 안내를 해 주겠다셔서 한 번 더 내려가서 볼 수밖에 없었다. 자녀분도 이런 전통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최근 UAE의 초청으로 두바이에 전시를 하러 떠났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내가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전공했던 때가 20년 전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학교에 서양인 학생을 만나면 도대체 왜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한국을 왔느냐고 물어보고는 했었는데. 같은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 질문이 가장 싫다고 답했던 핀란드 사람이 떠오른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한국이 fancy한 나라가 됐다. 15년 전쯤 군대에 갔을 때는 이제 한국의 성장도 다했지 싶었다. 그러면서 개발도상국이라고 하기에도 열악한 수준이었던 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성장한 것으로도 충분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로도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정말 벽에 부딪쳤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좌우간 놀라운 현대사다.


이 구역의 최고 대장은 역시 말이산고분군이다.


고분군이 길쭉하게 늘어져 있어서 사진으로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현재 발굴 중 혹은 발굴을 끝내고 성토 중인 고분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단일 고분군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송학동고분군은 길을 지나면서 보았을 때는 상당한 규모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방문했더니 보이는 것이 전부여서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말이산고분군은 이것이 끝인가 싶으면 뒤에 또 고분이 보인다. 규모도 무척 크다. 1천 기 이상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덮개석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유물부터 말갑옷이 온전한 형태로 발굴된 고분 등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듯했다. 천천히 고분군을 도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고 운동도 꽤 된다. 곳곳에 멈추면 함안군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함안군 읍내가 한 눈에 보인다. 참고로 함안군에서 가장 큰 읍은 가야읍이다. 함안읍이 아니라 가야읍이 가장 큰 동네라는 게 이상하다는 점은 한우국밥촌을 다녀오면서 이미 썼다. 오른쪽 사진은 고분군에서 본 아름드리 황금들녘. 논이기 때문에 들녘이라고 표기하면 안 되려나.


단일 고분군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물론 경주에서는 드러난 봉분 자체가 수십 기라서 이곳보다 더 크고 넓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말이산고분군이 단일 고분군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는 건 그 봉분이 모여 있는 것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는 뜻이 아닐지. 주 봉분이 이어져 있는 것만 해도 15기가 넘는다. 그 모든 봉분이 한 줄기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이곳도 경주 못지 않게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함안군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엔 고성 탈 박물관을 들렀다. 지나면서 보기는 했지만 뭐 특별할 것이 있겠나 싶었는데 친구가 의외로 너무 괜찮았다며 강력추천한 덕분이다.



놀라웠다. 그래도 명색이 내가 한국문학 전공자인데 이 정도도 몰랐구나. 탈춤은 어떻게 보면 한강 이북에서만 쓰는 명칭이라고 한다. 주로 해서(황해도) 지방에서 쓰는 명칭이고, 현재의 수도권에서는 산대놀이, 낙서 지역에서는 오광대, 낙동 지역에서는 야류라고 한다. 이 명칭이 모두 다르구나. 오광대와 야류라는 명칭이 낙동강을 기준으로 바뀐다는 점도 놀라웠고, 영남에는 판소리가 없고 이렇게 탈놀이가 있는 반면 호남에는 탈놀이가 없고 판소리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서편제, 동편제도 섬진강이 기준이었나.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편제도 호남 지역 안으로 국한된다. 전승되는 전통문화가 아예 달랐던 셈이다.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하루 생활권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지금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오고 세계인이 한 마을처럼 사는 것도 문명의 발전에 도움은 되겠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역시 예전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와 관련한 아쉬움은 나중에 한 달 살이를 출발하는 날의 글에 다시 적겠다.(언제 적을 수 있을지...)


탈 박물관 아래로는 장승학교도 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입구에서부터 괴이한 기분을 자아낸다. 어쩌면 해질녘에 지났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는데 아예 한밤중이었다면 조금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오며 내일은 뭘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대개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이번 주의 경우에만 저녁으로 미루었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운동을 하면 하루종일 피곤하다. 함안박물관과 말이산고분군을 다니면서 계속 힘들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왜 이렇게 피곤하고 힘들지 천천히 생각해 보았더니 아침에 승마를 한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적지 않게 운동이 되고 다른 기승자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집중해서 열심히 했다. 매일 아침마다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하루가 피곤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래도 이렇게 체력을 길러 나가는 것도 또 의미가 있겠지. 내일 뭐할지는 내일 생각하자고 하면서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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