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est Oct 26. 2022

통영일기: 열이레째.

옻칠미술관과 세자트라숲

# 필라테스 엿새째


아침에 일어났더니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선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실은 이번 주말에 부산을 들렀다 서울에 올라간다. 몇 달 전부터 들었던 군대 동기의 결혼식이 오는 토요일에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살이가 그리 길지 않은 일정이기 때문에 중간에 서울을 다녀온다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장례식도 아니고 결혼식인데 빠질 수도 있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ㅈ아, 미안해) 결혼식 날짜를 하루이틀 전에 들은 것도 아니고 몇 달 전에 이미 예고되어 있던 것인데 당연히 가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내일모레면 서울로 올라간다. 물론 일요일이면 다시 내려오지만 금방 떠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틀은 정말 금방 간다. 심지어 금요일에 부산 일정으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함에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오늘은 뭐 하지?' 오늘은 운동을 저녁으로 예약했다. 그렇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뭘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와서 며칠 없는 평화로운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은 봉수길의 [니지텐]에서 먹기로 했다. 지난 일요일에 [백서냉면]을 가기 전에 먼저 들렀던 식당이 [니지텐]이었다. 이곳도 친구가 추천해 준 곳인데 대기가 길어 아침에 문 여는 시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정보가 뒤섞여 있었다. 네이버 지도를 보면 영업시간에는 11시 30분부터 영업을 한다고 되어 있는데, 사진이나 영업 시간 표기에는 또 11시에 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 싶다가, 11시에 점심 먹으러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 11시 30분에 맞추어 갔다. 그런데, 이런! 11시 30분에 도착했더니 이미 식당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식당에 11시부터 영업한다고 쓰여 있었다. 음. 첫 테이블은 거의 돈 셈이니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먼저 대기하고 있던 분이 10분 정도 기다리면 될 거라고 했다.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봉수길은 가깝지는 않은 편이다. 이미 백서냉면까지 모두 다녀온 터라 이번에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먼저 와서 기다리던 사람이 말을 건다. '걸어 오셨나 봐요?' 나는 차를 가져왔는데. '어디에 차 대셨어요?' 이 근처에 공영주차장이 있고 통영은 주차비가 정말 저렴해서 주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놀러 왔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출장으로 통영을 왔다고. 세 번째 온 건데 그동안은 바빠서 맛집을 알아볼 새도 없었는데 이번에 알아보고 처음으로 이 집을 온 것이라고 했다. 친구에게 들은, 그리고 내가 찾아본 몇 군데 맛집을 소개해 주었는데, '근데 말투가 여기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통영에서 한 달 살이를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서울에서는 모르는 사람에 대해 훨씬 적대적이다. 대학생 때였나.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가 귤을 까 드시면서(그때는 코로나가 없던 시절이다.) 나한테도 몇 조각을 나눠 주셨다. 지금은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상대의 위생 관념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정중하게 거절하지 싶은데, 내가 몇 조각 받아 먹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친구들이 아주 절색을 했다. 언제 본 사람인데 뭘 믿고 먹냐는 거다. 너 잘못하면 큰일날 뻔했다고. 지역 생활은 익명성이 서울보다 덜한 대신에 그만큼 사람에 대한 신뢰는 더 높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전반적으로 사람들도 호의적이고 또 호기심도 많다. 서울 사람은 상대에게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곳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맞겠다. 함안이나 고성을 갔을 때도 그렇다. 어제 함안박물관에서는 내가 박물관 도록을 구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제작하고 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서울에서였다면 '없는데요?' 하고 끝났을 일이다. 그동안 익명성의 소중함에 대해 항상 많은 생각을 가지고 살았고, 그래서 소도시도 어느 정도는 규모가 커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니 이렇게 익명성이 없는 사회에서는 대신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세상 모든 것에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오늘의 점심 니지텐동. 나는 텐동을 잘 먹을 줄 몰라서 다른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 대충 흉내 내었다. 밥의 양은 내게는 다소 적은 편. 그러나 다른 손님들 중에는 그 밥도 남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우리가 쌀밥으로 배를 채우는 시대는 아니니까.


점심 예산은 원래 15,000원을 잡고 갔다. 메뉴판을 보았을 때 스페셜동을 먹고, 달걀 하나를 추가하려고 했는데, 점원 분께 물어보니 니지텐동이 오리지널이고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해서 그냥 그걸로 주문했다. 메뉴를 자세히 보니 달걀도 하나는 기본으로 나온다. 덕분에 6천 원이나 아꼈다. 개꿀! 튀김은 넉넉하다. 이런 것이 바로 지역인심이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 집이라면 가격을 더 올려도 될텐데. 아, 이런 자본주의 마인드는 서울에서 가져온 것이다. 쉽게 없어지지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또 친구가 이야기해 준 [내성적싸롱호심]에 도전하려고 갔더니 문을 닫았다. 여긴 뭐 일요일에도 닫고, 수요일에도 닫고. 네이버를 확인해 보니 월화수를 닫는다고 되어 있던데, 아니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닫는다면 아무리 장사가 잘 된다고 해도 이게 운영이 되나. 이렇게 찾아오기 힘들어서야 또 올 수 있을까 싶다. 특히 이 싸롱은 뷰가 특별할 것도 없다. 통영이라면 모름지기 바다뷰 카페여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강력 추천 때문에 가려던 것이었는데 두 번이나 허탕을 쳤다. 대신 다른 추천지, [클라우드힐]로 떠났다.


사진이 더 잘 나왔다. 하늘과 바다는 정말 눈 부시게 예쁘긴 했지만, 구름은 사진으로 보니 더 예쁘다.


뷰가 끝내 주는 곳이었다. 나의 최애 카페 중 하나인 제주도의 [서연의 집]보다 뷰가 훨씬 더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오늘부터는 통영에서도 조금 쌀쌀함을 느꼈다는 것.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밖에서 커피를 마시기에는 조금 추위가 느껴진다. 외투만 준비해 왔어도 괜찮았을텐데. 한국은 영토로 보았을 때 작은 나라이지만 서울에서 통영까지만 와도 날씨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 그 차이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서울은 늦가을에서 봄까지 미세먼저 걱정이 하나 가득인데 이곳도 그럴까. 아닐 것 같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니 이곳에서도 뉴스의 중심은 서울이다. 그러나 수도권에 안개가 많이 끼고 미세먼지가 있고, 가시거리가 짧다고 뉴스가 나오는 날에도 통영의 날씨는 항상 좋았다. 추위도 덜하고 더 따뜻했음은 물론이다. 점점 기침과 콧물이 나온다. 운동을 하면 처음에 살이 조금 빠지면서 이런 증상이 있다던데 건강을 열심히 챙긴 덕분이겠지? 스스로 합리화해 본다.


청명한 하늘을 보며 책을 실컷 읽다가 통영옻칠미술관으로 향했다. 관람료가 3천 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어서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개꿀! 생각지도 않았는데 3천 원을 번 느낌이다. 유후!



태어나서 처음 보는 형태의 예술품이었다. 그리고 동양인,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밖에는 만들 수 없는 예술품이기도 했다. 윤이상, 전혁림, 이런 예술가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옷칠미술관 앞에서 풍경을 보면 바다와 산이 함께 어우러져 보인다. 이런 풍광이 예술가들의 감성을 자극했을 것이다. 윤이상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진 않았지만 오선지 속에서 동양의 음을 재현해 내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것을 서양의 기예를 통해서 재현하려는 노력. 이것이 오늘날 통영을 예향이라 불리게 하고, 통영 출신 예술인들의 이름을 드높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옻칠미술관 앞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풍경


뒤이어 세자트라숲으로 향했다. 옻칠미술관에서는 거의 도보권일 정도로 가깝다. 세자트라숲은 바로 바다에 면해 있는데(하긴 통영에 그렇지 않은 곳이 얼마나 있겠냐만서도) 교과서에서만 보던 신기한 풍경을 접했다.



어민 분들께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저 돌담은 아마도 밀물 때는 수면 아래에 잠길 것이다. 그러면 물고기들은 저 안으로까지 들어와 있다가 이렇게 물이 빠졌을 때는 돌담에 걸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고 그때 저렇게 손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교과서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이 풍광을 실제로 내 눈으로 접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세자트라숲 산책로는 너무 짧아서 등산로를 통해서 크게 한 바퀴 돌았는데 거의 등산을 한 셈이 되었다. 나중에 보니 이순신공원까지 다녀와도 한 시간이면 충분한가 보던데 차라리 그렇게 할 것을. 차를 가지고 다니면 이런 점이 좀 불편하다. 세자트라숲에서 이순신공원까지 산책하고 거기에서 돌아온다면 더욱 좋겠지만 차가 이곳에 세워져 있어서 출발점으로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어렸을 때 문경새재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새재를 다녀오기가 힘들다는 어른들의 말에 한두 번 가 본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나는 학교에서 단체로 간 것이라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한 방향으로만 걸으면 되었다. 버스가 나를 내려 주고 도착점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보니 그게 불가능했다. 내가 단체로 버스를 섭외해서 갈 것이 아니라면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왕복해야 하는데 그럼 20km 이상을 걸어야 한다. 새재는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라 산길보다는 비교적 평탄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고갯길이라 20km를 다니기에는 쉽지 않다. 어렸을 때는 그것을 미처 몰랐다.


가능하면 비슷한 곳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아예 같은 곳에서 찍지는 못했다. 그래도 대충 보아도 아까보다 물이 많이 찬 것을 볼 수 있다. 수면이 돌담 위로 올라오면 다시 물고기가 저 안으로 들어오고 물이 빠지면 다시 갇히고 말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서울에서 가져온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월요일부터 3일 연속 서울에서 가져온 비상식량으로 저녁을 때우고 있다. 왜 그랬냐고? 내일 아침에 길게 설명할 작정이다. 내일의 일기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통영일기: 열엿새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