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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Oct 31. 2022

통영일기: 스무 날 전후.

2박 3일 서울 상경기

# 필라테스 이레째


통영에 내려와서 그 어느 날보다도 일찍 기상했다. 아침에 짐을 정리해서 차에 옮겨 놓은 뒤에 운동을 다녀와서는 부산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3주 가까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짐이 많이 줄어서 정리하는데 크게 힘들지 않았다. 이제 큰 짐가방(캐리어) 하나에 거의 모든 짐이 들어간다. 아침 일찍 퇴실해서 근처 공영주차장으로 차를 옮기고 아침 운동을 한 뒤 부산으로 출발했다.




부산으로 가는 길


버스가 가는 길에 깜짝 놀랐다. 당연히 거제도를 거쳐 거가대교를 지나 부산으로 향하는 게 가장 짧은 길이고 빠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버스는 계속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정확히 어떤 경로로 갔는지는 중간에 잠 들어서 확실히 기억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 20분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엄청 가까이에 있었다. 버스도 자주 있었다. 최초에 운동을 끝내고 가야 해서 10시 35분 차를 예매했었는데 준비하다 보니 금방 가게 되어서 10시 20분 차로 바꾸어 탔다. 그 전에 10시 5분 차도 있다. 하긴 이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대도시다.


통영에 내려와서 가장 놀란 것이 우리나라가 작아서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부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꽤 된다. 그래서 라디오를 틀면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꽤 나온다. 하긴 부산, 울산, 경남의 인구 배후권만 해도 거의 1천만에 가깝다. 그 정도면 싱가포르보다도 훨씬 크고 웬만한 작은 나라 이상이 된다. 내가 고향이 지역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나라를 생각해서도 서울 집중을 꼭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는데 부산이 나름대로 지금의 위치만 잘 지켜서 이곳을 또 하나의 중심지로 키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여기에 와서 많이 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치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겠지. 심지어 이쪽을 기반으로 하는 국회의원들은 도리어 규제 타파에 긍정적이어서 서울로의 집중을 더욱 가속화하는 데 일조하는 쪽이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이곳 사람들도 다 생각이 있겠지.


부산 사상터미널에 내려 아는 형이 근무하는 일터 근처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이것도 놀라웠다. 지지난주에 탔던 대구 지하철 요금과 수도권 지하철 요금, 그리고 부산 지하철 요금 세 곳의 기본요금이 모두 다르다! 오오! 나름대로 다들 자신의 재량권을 발휘하고 있구나.


형과 함께 식사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확히는 기억 나지 않지만 아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막 생겼을 때가 마지막이지 않았나 싶다. 그때 부산으로 취업해서 내려간다고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던 것이 기억 난다. 얼마 전 이 형의 동기인 다른 형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빈소에서 만나긴 했지만 오래 이야기를 하진 못했다. 그 동기 형, 누나들이 워낙 오랜만에 모인 까닭이다. 제주보다 이쪽으로 한 달 살이를 하러 내려오게 된 것에는 지인 분포도 한몫했다. 실은 여기 내려와서 대구에서 한 번, 부산에서 한 번밖에는 따로 약속을 잡지 못했지만 부산의 모 대학에도 과 선배들이 많이 재직하고 있어서 부산에서는 꽤 오래 시간을 보낼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가까운 선배가 연락이 되지 않아서 실행하진 못했지만. (아마도 수능 출제에 들어간 모양이다.)


보통 내가 이야기하는 걸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어느 누굴 만나도 내가 대화에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는 하는데 이번은 예외였다. 형님이 오래 말씀하시는 걸 잘 들어드렸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도, 대학원도, 전문대학원도, 직장생활도 서울에서 오래 한 형이다. 원래 부산 사람이긴 하지만 서울에서도 거의 20년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귄 수많은 지인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사회생활 이야기를 할 사람을 만난 게 아닐까, 그냥 그렇게 넘겨 짚고 형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렸다. 헤어지면서는 다음에 서울에 오시거든 꼭 연락 주십사 말씀드렸는데, 서울은 보통 일이 있어야 올라오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 편히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지 않겠냐고 하였다. 내가 또 부산에 내려올 일이 있을까. 나는 언제든 부산에 내려오고 싶다. 그런 마음은 굴뚝이다. 회사에서 나처럼 출장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또 없다. 다만 보내주지 않아서 문제지.


형님과 이야기하면서도 중간중간 아주 조심스레 시계를 보았다. 열차 시간에 늦으면 안 되므로. 3시 40분 기차를 예매해 두었기에 적당한 시간에 형에게 이제는 올라가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니, 열차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 3시 40분 차라고 했더니, 도리어 형이 엄청 걱정을 했다. 열차에 늦지 않겠냐면서. 자기가 먼저 열차 시간을 챙겨야 했다고. 지난번에 형이 빈소에 오느라 서울에 왔을 때에는 내가 기차역까지 태워다 드렸는데 형은 열차 시간 때문에 엄청 걱정을 했었다. 나는 자신이 있었는데. 형은 대체로 열차 시간에 15분 전에는 미리 가는 스타일이었던 거다. 나도 이제는 조금은 미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지난 두 번의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서.


3년쯤 전, 그러니까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에 부산에 내려왔었다. 출장으로 왔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처가 모임이 있어서 바로 올라가야 했다. 기차를 타러 가면서 전철이 대략 7, 8분쯤 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와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그런 일도 흔하진 않을텐데 그날 따라 지하철이 3, 4분 가량 지연되었다. 제 시간에 딱 도착하는 것을 기준으로 7, 8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급했다. 지하철이 도착하자마자 냅다 뛰었다. 겨우 탑승칸이 아니라 기차에 그냥 먼저 탑승해서는 내가 탈 객차로 이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잘 배웠어야 했는데 이런 일이 지난 봄에도 또 있었다. 대구로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비슷하게 지하철 시간을 계산해서 집에서 나갔다. 처음에는 아주 여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쏟아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우산을 가지고 내려오니 그때부터는 마음이 엄청 급했다. 여기에서부터 틀렸다. 지하철역까지 급하게 뛰어야 했다. 급하게 지하철은 제때 탔는데 문제는 기차역까지 두 번을 환승해야 했던 거다. 두 번의 환승 모두 2, 3분의 여유밖에는 없었는데 문제는 첫 번째 환승 지하철도 3, 4분 늦게 왔다. 내가 빨리 달리란다고 달리는 지하철도 아니지만 마음만 엄청 급했다. 서자마자 두 번째 환승을 하러 급하게 뛰어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 역은 종점이어서 지하철이 대기하고 있어야 했는데 없던 것이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아직 1분이 남아 있었는데. 다음 열차를 타면 기차를 무조건 놓쳤다. 어떻게 해야 하나, 황망한 마음만 가득한 상태였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타야 할 열차는 종점임에도 그날 플랫폼으로 늦게 들어왔다. '휴~'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라고 생각하길 잠시. 이 열차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고속열차 타는 곳으로는 다시 죽어라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아직 그런 경험은 없지만) 지하철 한 대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주말에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나도 열차표를 열흘 정도 전에 예매했는데 이미 퇴근시간 이후의 것은 아예 표가 없었고 내가 탄 오후 시간도 창측 좌석은 열차 전체가 다 매진이었다. 열차 출발 날짜가 다가오면서 혹시나 취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창측으로 옮겨 탈까 싶어 몇 번 다시 검색해 보았는데 도리어 모든 열차가 매진이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열차는 정말 사람을 꽉꽉 태워서 출발했다. 내 옆자리의 창가 자리는 중간에 천안아산역에서 승객이 하차했지만, 바로 새로운 승객이 올라타 나는 서울까지 창가 자리엔 앉아 볼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오랜만에 서울로, 동네로 간다는 생각에 무척 마음이 설레고 반가웠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던 때를 제외하고 서울 가는 길이 이렇게 기대되고 반가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3주만에 다시 찾은 집에는 두 개의 택배상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도 주말에는 거의 일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꼼짝없이 서울에 2박 3일 있는 동안 그 일을 봐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일거리는 숙소의 내 가방 안에 있다. 내일 우체국에 가서 부칠 생각이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막상 서울에 있다 보니 다시 내려오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이었다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주말이 주는 여유로움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내와 같이 있다가 혼자 내려오려니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또 원래는 일요일에 집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정확히 4주의 살이를 끝내고. 그런데 중간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해서 집에는 화요일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이틀이 늦춰졌다. 어떻게 보면 이틀이라는 시간이 별것도 아닌데 괜시리 엄청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려오는 길이 더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지난 다짐(?)처럼 오늘 내려오는 버스는 좀 더 여유 있게 터미널에 도착하도록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참, 삶이란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야 하는데 처음 집에서 버스를 타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나왔는데 이놈의 버스가 오질 않았다. 버스기사님께서 어찌나, 세월아 네월아 운전을 하시는지. 버스가 도착했을 때 따지고 싶은 마음마저 일었다. 기껏 마음 먹고 일찍 나왔는데 버스가 늦게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면 다시 또 시간이 빠듯해진다. 지하철역까지는 불과 4정거장인데 그 거리도 기사님께서는 세월아, 네월아 운전하셨다. '이야, 서울에 이렇게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소용없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손에 잡은 휴대전화의 버스 어플을 계속 보고 있었다. '진짜 이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이 돼?' 아니나 다를까, 버스 어플은 중간중간 도착 예정 시간을 자꾸 늦추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버스에서 내려서 뛰어간 지하철은 아직 출발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각 0초에 바로 출발했다면 타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기관사분께서 30초 이상 더 대기하셨던 덕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간 밤의 사고로 밤새 뉴스를 읽은 탓인지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이동하다가 터미널에서 내려야지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1, 2분이 지연되었다. 그리고 지하철 안내 방송도 다음 정거장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뭐 이런 오류를 워낙 흔하게 겪어서 크게 동요되진 않았다. 아니, 오류가 아니었다. 나는 한 정거장을 지나친 것이었다!!!


처음 터미널에 20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나왔는데 정말 천만다행이지 싶었다. 그런데 하필 또 중앙 승강장이 아니라 건너편 승강장에서 바꾸어 타야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바로 건너편 승강장으로 열차가 들어왔다. 터미널에 내린 시간은 버스 출발 14분 전.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여유가 있다. 미리 나오길 정말 잘했고, 버스에서 내려서 무리해서 지하철을 뛰어서 타길 또 잘했다. 휴. 아니 도대체 이런저런 돌발 상황을 감안하면 얼마나 일찍 나와야 하는 것일까. 가슴을 쓸어내린 버스 탑승이었다.


통영으로 오는 버스는 처음 타 보았다. 4년 전에 놀러왔을 때는 아내와 같이 차를 끌고 왔고, 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중간에 진주에서 아내 친구 가족들을 만나 점심을 함께 먹고 시간을 보내고 왔었다. 이번에는 내 경우에는 전주, 광주, 해남, 강진을 거쳐 ㄴ자 형태로 내려왔기 때문에 버스를 탈 기회가 없었다. 그제 올라갈 때는 또 부산에 가서 고속철도를 탔고.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4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정말 지루했다. 버스에서는 대체로 잠을 자게 되지만 4시간이나 걸리니 4시간 모두 잘 수도 없었다. 중간 이후부터는 그저 따분하게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휴게소에서 한 번 쉬었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호두과자를 먹고 싶었지만 출발 전부터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식당을 가려고 마음 먹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자 싶었다. 호두과자야 뭐 또 올라가면서 사 먹어도 되겠지.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서는 친구가 이 동네에서 추천해 준 유일한 한식집, [대월]로 향했다.


혼자서는 고등어구이 정식만 먹을 수 있다. 큼지막한 고등어구이 외에도 밑반찬이 6가지나 되고(나는 3가지는 잘 먹지 않는다고 반납했다.) 된장찌개와 계란찜, 돌솥밥도 기본이다. 내가 폭식을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푸짐한 편이었다. 특히 나는 이 모든 음식을 내가 혼자 먹어야 했으니. 흡족한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풀고 쉬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회사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처음엔 으레 통영에서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씀이었다. 하아. 한 달 살이를 내려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사람들의 조사(弔事)였다. 이번에 서울에 2박 3일 다녀온 것처럼 혼사는 사전에 미리 예측이 가능하지만 조사라는 건 예측할 수가 없는 일 아닌가. 이곳에 내려오기 전에 지난 8월에만도 두 번이나 조사가 있었다. 멀리 다른 나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조사는 가 보는 것이 예의인데 조사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지난 3주간 아무런 부고도 듣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뒤늦게서야 예전 회사 대표의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확인하긴 했는데 갔으면 좋았겠지만 못 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팀장님 댁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다른 때 같았으면 그래도 시간을 내어 하루 다녀왔을텐데 하필 또 방금 서울에서 온 버스에서 내린 상태였다. 너무 안타깝고 송구하지만 회사 선배에게 조의금만 내 달라고 부탁했다. 사모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다.


어제 결혼식에 다른 군대 동기 형이 축의금을 대신 내 달라고 부탁했었다. 내 결혼식 때보다 두 배나 많은 금액에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 뻔했는데 지금 중국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마음을 그렇게 대신했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조사를 겪고 보니 나 또한 그렇게 된다. 사람은 다 이렇게 겪고 나서야 깨닫는다. 역지사지란 정말 대단한 사자성어다.




그래도 이것이 최악은 아니겠지


공영주차장으로 차를 찾으러 갔다. 이미 7시여서 세상 깜깜했다. 하긴 버스에서 내리던 6시에도 이미 어둠이 자욱했다. 그때는 그래도 해가 지는 시간이었고, 7시면 이제 해가 완전히 사라져 인공 조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라?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불안했다. '에이~ 잠깐 그런 거겠지' 사람은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동차키를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일 거라 생각해서 힘들게 여행가방에서 다른 키를 꺼내 다시 시동을 걸어 보았다. 그래도 안 된다. 이건 분명히 배터리가 나간 것이다. 후아. 하필 타지에 와서 이런 일이 터지다니. 바로 보험사에 출동 요청을 했다.


20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배터리만 나간 것이라면 다행일텐데,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통영에 내려와서 소도시의 삶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막상 차가 고장 나고 나자 서울 생활이 주는 엄청난 메리트가 몸소 느껴졌다. 내 차는 수입차다. 그래서 아무 데서나 수리를 할 수 없는데(물론 해도 되는 잔고장도 있긴 하지만) 이곳 근처에 서비스센터를 생각해 보니 아무리 가까워도 창원, 멀면 부산이지 싶었다. 그렇구나. 이게 현실이었다. 서울은 내 고향의 2/3도 안 되는 작은 땅에 서비스센터가 숱하게 널려 있다. 물론 사람도 그만큼 많아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아무 때나 서비스도 받지 못하지만 고장 난 차를 이끌고 수십, 수백 km씩 달릴 필요는 없다는 뜻도 된다. 이런 게 바로 서울의 메리트구나. 물론 내가 서울에 살지 않고 이런 소도시에 살았다면 수입차를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고장이 또 흔한 것도 아니긴 하다. 그러나 언제든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는 점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배터리만 연결했더니 바로 시동이 걸렸다. 차 안의 모든 설정은 초기화된 채로. 화면도 모두 영어로 바뀌었다. 출동하신 기사분의 말씀이 배터리 상태가 좋지 않다고 내일이라도 당장 배터리를 바꾸라고 권하셨다. 서울로 돌아가려면 아직 열흘 정도는 더 버텨야 하는데. 일주일 정도 더 못 버틸까요? 물었더니 그래도 가능하면 빨리 바꾸는 게 좋겠다고 한다. 허허, 이것 참. 그래도 배터리 정도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일 시동이 걸릴까요? 하고 물으니 걸릴 것 같긴 하지만 확실히 장담할 수는 없단다. 그러면 출동을 또 불러야 한다. 하, 정말 걱정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돌발변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한 삶과 일정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조사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삶이란 게 갈수록 그렇게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의외의 변수, 의외의 일이 끝없이 생기는 게 우리 삶이다. 그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 왔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최악의 일은 늘 피해 왔다고. 어쩌면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온실 속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그동안 최악의 일을 늘 피해 왔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최악의 일이 있었음에도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후회도 되었다. '블랙박스만 꺼 두었어도 괜찮았을텐데' 항상 주차할 때는 블랙박스를 꺼두는 편인데 이곳에 와서는 워낙 운전을 많이 해서 하루이틀 정도는 켜 두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괜찮았고. 2박 3일간 운행을 안 했더니 이렇게 되는구나. 그래도 아예 극복하지(이런 표현까지 쓸 일인가) 못할 정도의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역시 내심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고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배터리가 나간 차는 다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기 때문에 거제도까지 잠시 갔다가 돌아왔다. 예전에 신거제대교를 지날 때 숙소에서 꽤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드라이브를 위해 다녀오자니 생각보다 엄청 가까웠다. 조금 돌아서 가야겠다 싶을 정도로. 서울에서는 도로에 야간 조명이 너무 밝아서 전조등이 꺼져 있어도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도로가 너무 어두워 전조등을 켜도 무섭다. 전조등이 비출 수 있는 거리 또한 제한이 있기 때문. 야간 운전은 그래서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오니 거의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내일은 뭘하지. 통영이 정말 좋고 다시 오고 싶은 생각도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도 넓고 가 봐야 할 곳이 널렸다. 여행으로 며칠 짧게 오는 것은 또 모르겠지만 앞으로 혹시 한 달 살이 할 기회가 있다면 다른 곳을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고 나니 앞으로 남은 일주일 동안 후회 없이 가 보고 싶은 곳을 실컷 다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렇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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